쇼트트랙 편파  판정에 들고 일어선 시민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쇼트트랙 편파  판정에 들고 일어선 시민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최근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중국 텃새’로 대한민국의 금메달이 날아가자 국민의 반중(反中) 감정이 폭발했다. 페어플레이와 공정이 가치인 올림픽에서 승복하기 어려운 편파 판정은 그 자체로 선수들이 흘린 땀과 노력의 부정이자, 메달과 순위를 강탈하는 비열한 행위다.

국민의 격앙에 편승해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거센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여·야·정, 남녀, 계층, 세대, 지역이 이렇게 일치단결 한목소리를 낸 게 얼마 만인가.

이런 모습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데 마음 한편에서는 좀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이런 행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여론은 늘 냄비처럼 달아올랐다가 금방 식는다. 그러다가 또 뭔가 터지면 끓어올랐다가 거품처럼 가라앉는다. 교훈 대신 망각을 택하기 일쑤다.

중국은 스포츠뿐 아니라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등 전방위에 걸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아주 집요하고 거칠게 내로남불의 ‘배타적 중화주의’를 실천해왔다. 우리나라는 늘 먹잇감이었다.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동북공정, 한복과 김치에서 한류에 이르기까지의 문화공정, 우리 산업을 위협하는 기술 탈취, 사드 보복에서 봤듯 툭하면 꺼내 드는 경제보복, 중국어선의 불법조업, 자원 무기화 등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중국의 갑질에 끽소리도 못한 채 알아서 기기에 바쁘다. 대중국 외교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대 악수는 지난 2017년 중국과의 사드 갈등을 풀기 위해 내세운 이른바 ‘3不 정책’이 아닐까 싶다. 이는 ‘사드 추가배치 불허,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체계(MD)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참’ 약속을 일컫는다. 이를 두고 당시 한 외국 언론은 “상대방이 맘에 안 들면 괴롭히다가 조금씩 잘해주는 식으로 길들이는 중국 전략에 굴복했다”고 평했다.

3不 정책의 하나하나는 우리나라가 중국, 미국, 일본을 상대로 외교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이자 북한이나 중국의 군사적 위협으로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사용해야 할 안보 자산이기도 하다. 이를 호박씨 까서 한입에 털어넣듯 중국에 한꺼번에 통째로 내준 것은 창자를 꺼내준 꼴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래놓고 아무리 자주국방이니 독립외교니 떠들어봤자 말짱 말장난일 뿐이다.

물론 경제는 중요하다. 우리 무역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는 것은 현실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스타일을 좀 구기고 배알이 꼴려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참고, 사이좋게 지내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그렇더라도 과도한 굴종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외교적 양보는 피해야 한다. 더 큰 굴종과 양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주변국을 대하는 태도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다. 배려가 없다. 이 정부가 중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로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대선후보들의 외교·안보 관련 발언을 보면 바닥이 훤히 보여 천박하기 짝이 없다. 3不 정책을 옹호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자칫 ‘친중’으로 몰려 표를 잃을 것을 염려했음인지 언론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우리 영해를 침범해 불법조업 하는 중국어선을 “격침해버려야 한다"고 했다. 듣기엔 사이다처럼 시원하지만, 국제법적으로 민간 어선이 영해를 침범해 조업한다고 격침하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사드 추가배치를 공약했는데 이의 필요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국내 여론이 양분되고, 후보지로 거론되는 지역의 반발이 극심한 상황에서 언제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 건지 구체적 방법이 있는지 의문이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백수의 제왕인 사자가 아주 꺼리는 동물이 있다. 벌꿀오소리다. 성체의 몸무게가 8~10kg에 불과하다. ‘세상에서 가장 겁 없는 동물’로 통하는 벌꿀오소리는 아무리 강한 상대를 만나도 꼬리를 말거나 등을 보이는 법 없이 상대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악악댄다. 사자 처지에선 한 발톱 거리도 안 되지만 피하는 건 싸워봤자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자칫 잡아먹으려다 코나 입이라도 뜯기는 날엔 손해가 너무 크다는 걸 사자는 안다.

명분과 원칙, 이치가 명명백백한 사안은 어느 정권에서도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일관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여기서 대의를 포기하거나 저자세를 보이면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이를 일본이나 대만, 동남아시아, 인도 등 중국 주변의 동서남북 국가나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들은 다 알고 중국에 먹히지 않기 위한 대책에 골몰하는데 우리만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제발 정신 좀 차리자.

김종현 본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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