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석 증권부장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어쩌면 고양이도 억울할지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어쩌면 고양이도 억울할지 모른다. 사진=픽사베이

출근길 시장을 지나칠때, 간혹 고양이가 눈에 띈다.

흔히 보이는 주황색 줄무늬의 코리안 쇼트헤어(코숏)다. 애묘인들 사이에서는 치즈 코숏이라 부른다던가. 이름 모를 고양이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매 번 ‘생선가게’ 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항상 그랬다. 녀석은 조심스레 생선 진열대 사이에서 움직인다.

한갓 고양이조차 생선과 진열대에 함부로 발을 들이대서는 안되는 걸 알고 있다.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오래 생존하는 미덕이리라.

요즘 시장을 보면 고양이도 지키는 금도(禁盜)를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은 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새해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에 연이어 횡령 사건이 터졌다. 오스템임플란트 소속의 직원은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려 주식투자, 금, 부동산 구매에 나섰고, 계양전기에서는 245억원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기업 투자자들은 아닌 밤중의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돈’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부실한 내부감시를 이용해 자금을 빼돌려 주식 등 자산시장에 투자했다는 점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시스템이 문제라 지적한다. 인터넷을 돌아보면 자주 회자되는 말이 ‘처벌이 약해서’다. 우리나라 형법상 양형기준은 횡령액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까지는 기본 징역 4~7년(가중시 5~8년), 횡령액 300억원 이상일 경우 기본 5~8년(가중시 7~11년)이다. 수백억원을 횡령한 다음, 몇 년 살고 와서 숨겨놓은 돈으로 잘 먹고살면 되지 않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처벌만 강화하면 당장 범죄가 사라질까. 기업 내부 통제 시스템도 부족하다. 삼정KPMG에 따르면 내부회계관리제도 부적정 감사 의견 중 자금통제 미비로 인한 비율이 2019년 14.4%, 2020년 12.4%로 집계됐다. 이는 자금 횡령이나 유용 등을 막을 기업의 내부 장치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당장 2020년에 미국에서는 관련 문제가 고작 1건(0.3%) 발생했다.

잇따른 횡령 사태는 오랜 기간 쌓인 사회 전반의 문제다. 지속적으로 터지는 문제에도 정치권은 조용하다. 당장의 해결 방법은 나오질 않는다. 금융당국도 최근의 횡령 사건과 관련, 제도와 처벌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회계인의 전문가적 소명의식이라고 호소했다. 단박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니 그저 개인의 ‘도덕성’에 맡긴 셈이다.

세상은 누군가의 선의와 도덕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법, 시스템, 사람까지 모두 바닥부터 점검하고 고쳐야 하지 않을까. 만물의 영장 인간이, 생선가게 고양이만도 못하다는 비웃음을 사지 않으려면 말이다.

유호석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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