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배럴당 110달러 넘어서…11년만 최고
원자재 가격 상승, 임금인상으로 이어진 악순환
인플레 잡기 위해 금리 인상 속도 더 빨라진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 중이다. 유가가 110달러를 돌파하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데다 임금 상승까지 더해졌다. 사진=픽사베이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 중이다. 유가가 110달러를 돌파하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데다 임금 상승까지 더해졌다. 각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대책으로 금리 인상을 가속화할 움직임을 보인다. 사진=픽사베이

[서울와이어 김민수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공포가 확산 중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일 오후9시(현지시간)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실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대응이 올해의 최우선 과제이며,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 명시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훌쩍 넘어서고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공급망 교란까지 일어나며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거세다.

유가와 상품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큰 문제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지난 40년간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 떨고 있는 이유다. 인플레이션이 급격히 일어날 경우 현금의 가치가 떨어지고, 그만큼 소비자의 구매력은 하락한다. 금 등 안전자산의 수요가 급증하고 돈 가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 초인플레이션(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진화한다. 과거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짐바브웨의 사례를 보면 2006~2008년에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해 돈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100조 짐바브웨 달러(Z$)라는 초고액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해당 지폐를 가지고도 일주일간 버스를 탈 수 없을 정도로 값어치가 낮다.

베네수엘라도 초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 종잇조각이 된 사례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6년 국민에 자급자족을 권하기도 했다.

◆폭등하는 국제유가, 200달러 급등 전망까지 나와

최근 러시아-우크라나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110달러를 돌파하는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최근 러시아-우크라나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110달러를 돌파하는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 사진=서울와이어 DB 

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전장 대비 7.19달러(6.95%) 상승한 110.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이날 WTI 종가는 2011년 5월 이후 거의 11년 만에 최고가 마감이다.

런던 국제선물거래소(ICE)에서 북해산 기준 브렌트유 5월 인도분도 전일보다 7.96달러(7.58%) 뛴 112.93달러로 마감했다. 이 역시 2014년 6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요동친다. 지난달 25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국제유가는 2거래일 만인 1일(현지시간) 100달러를 넘어섰고, 다음 날 110달러까지 돌파했다.

유가 급등 이유는 러시아가 세계 3위의 산유국이라서다. 러시아는 유럽이 사용하는 가스의 41%, 원유 27%를 공급한다. 이 중 30%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운송된다.

국제유가 상승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유가는 러시아 원유, 가스 수출 제재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선반영 중”이라며 “투기적 매수 포지션, 매크로(거시적) 환경에 따라 최대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단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아예 현 수준의 두 배로 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러시아는 하루 500만배럴(전 세계 원유의 12%) 원유를 수출 중”이라며 “만약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석유 수출까지 제재하면 공급이 100만배럴 감소할 때마다 유가가 20달러씩 올라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유가가 110달러를 웃돌면서 국내 물가상승 압력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15일 발간한 에너지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한국의 원유·LNG·석탄 등 에너지 자원 수입 의존도는 93.4%다. 수력·신재생 등 국내에서 생산된 6.6%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특히 국제유가 상승은 국내총생산(GDP) 감소와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연평균 기준)가 120달러에 도달했을 때 성장률은 0.4%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1.4%포인트 더 오를 것으로 봤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오일쇼크 충격을 극복하고 안정적 경제성장 및 국제유가 변동에 민감한 경제 구조를 벗어나기 위해 원유와 원자재의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이용 효율성 제고를 위한 경제·산업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의 수익성 악화를 대비한 비상 경영 체제 구축과 원자재 가격변동 리스크 축소를 위한 원자재 구매의 효율성 확보 노력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고물가 한국 경제 직격 우려…대응도 쉽지 않을 듯

원유뿐만 아니라 곡물 등 원자재 가격도 급등해 물가상승 우려를 키우는 모습이다. 결국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대책을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픽사베이
원유뿐만 아니라 곡물 등 원자재 가격도 급등해 물가상승 우려를 키우는 모습이다. 결국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대책을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픽사베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곡물가도 움직인다. 이들 두 국가는 전 세계 밀 수출의 약 30%를 차지한다. 곡물 수출 분야에서는 세계 수위권의 강국이다. 전쟁으로 이들의 수출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는 밀 가격을 끌어올린다. 2일(현지시간)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에서 ‘시카고 SRW 밀’ 선물은 전일 대비 7.01% 오른 1133.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가별 밀 수출 점유율은 러시아 17.7%, 미국 14.1%, 캐나다 14.1%, 프랑스 10.1%, 우크라이나 8.0%순으로 나타났다. 옥수수 수출 점유율은 우크라이나가 13.3%로 4위, 러시아는 1.1%로 11위를 차지했다. 

전경연은 보고서에서 국내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10월부터 3%를 웃도는 등 고물가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에너지 및 곡물 가격 폭등이 추가적인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파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원자재 가격 랠리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가스, 알루미늄, 팔라듐, 니켈, 밀, 옥수수 등 러시아가 주요 공급처인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와 임금 상승을 이끌고 추가적인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우려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한국 전체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372만9000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2% 올랐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로 따지면 지난해 1분기 후 최고 수준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물가상승에 따른 임금인상 요구가 한층 더 거세질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상승을 부추기면서 근로자들이 느끼는 실질임금은 떨어지게 돼 결국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제품가격에 전가하면 물가상승과 임금인상의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것”이라며 “결국 인플레이션의 대책으로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통상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여나간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기준금리를 총 세 차례 인상했다. 올해 1월 기준금리를 연 1.25%로 0.25%포인트 올렸고, 연말까지 1~2회 추가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황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인상을 더 빠르게 시행할 수 있다”면서 “오는 4월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변수는 이주열 한은 총재의 임기다. 이 총재는 이달 31일까지로 임기를 마친다. 차기 수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새 총재가 취임 직후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움직일지조차 확언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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