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러시아 제재 본격화, 글로벌기업 '엑소더스'
삼성전자, "러시아 선적 중단"… 현지 부품공급 차질
러시아행 물류 사실상 봉쇄, 기업들 대안 마련 고심

우크라이나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업계별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 제재를 본격화하면서 국내 산업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종별 대응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 시장 보이콧을 선언했다. 러시아 제재가 본격화하면서다. 애플과 인텔, 나이키, 이케아 등 상당수 기업이 탈러시아 행렬에 동참했다.

러시아에 생산공장을 두고 사업을 펼치는 국내 기업들도 고심에 빠졌다.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 제재로 현지 사업에 제약이 걸릴 것을 우려했다. 강도높은 제재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부담은 한층 가중됐다.

러시아로 향하는 물류길이 막혔고, 금융제재로 인한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대안 마련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촉발한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뿐 아니라 수출통제가 본격화됐다. 국내 기업의 피해도 속출한다. 현대자동차는 현지 생산공장 가동을 멈췄고, 삼성전자도 러시아로 향하는 제품 선적을 중단했다. 사진=HMM 제공
우크라이나 사태를 촉발한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뿐 아니라 수출통제가 본격화됐다. 국내 기업의 피해도 속출한다. 현대자동차는 현지 생산공장 가동을 멈췄고, 삼성전자도 러시아로 향하는 제품 선적을 중단했다. 사진=HMM 제공

◆국내 기업에 불똥 튄 러시아 제재 후폭풍
우크라이나 사태를 촉발한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뿐 아니라 수출통제가 본격화됐다.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강도높은 제재에 나서면서 해외 기업들은 잇따라 현지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국내 기업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운영을 멈췄다. 현대차는 지난 5일 가동을 재개한다고 밝혔지만, 9일까지 중단 기간을 늘렸다. 업계는 가동 중단이 길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도체 수급난과 이번 러시아 제재가 겹치면서 생산 물량을 절반으로 축소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운영 중인 현지 생산공장도 부품 수급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러시아 TV 공장은 정상 가동 중이지만, 제재가 장기화할 경우 부품 수급과 동시에 생산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글로벌 해운사들은 잇따라 러시아 노선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은 러시아 화물 서비스 예약을 중단했다. 설상가상 하늘길도 막혔다. 대한항공도 러시아 모스크바행 항공편 운항 중단 결정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일단 러시아로 향하는 수출 물품의 출하를 중단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삼성전자에 러시아 제품 판매·서비스 중단을 요청했다. 제재에 동참해달라는 압박인 셈이다. 삼성전자 측은 이와 관련 지정학적 이슈로 러시아 선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 요구와 선적 중단이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현재의 복잡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 다음 단계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고심이 깊다는 얘기다. 현 상황 속에서 현지 사업을 유지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류난으로 핵심 부품 공급이 막힐 경우 현지 공장들의 생산 차질과 최악의 경우 판매도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러시아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연간 1000만대 이상 판매하는 등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주요 시장 중 하나다.

삼성전자가 해외 기업과 달리 사업 철수를 결정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LG전자도 러시아 입항 문제로 부품 선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노심초사한다.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 제재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됨에 따라 딜레마에 빠졌다. 당장 현지 사업 철수를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 제재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됨에 따라 딜레마에 빠졌다. 당장 현지 사업 철수를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지사업 철수 vs 유지, 기업 고심 가득 
문제는 러시아 제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LG전자, 현대차 등이 현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섣불리 사업 철수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러 수출 규모는 99억8000만달러(약 12조2400억원)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5%(12위)였다. 수출 비중은 적지만 기업들이 현지에 구축해놓은 입지가 공고해 ‘딜레마‘에 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기업들은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아 철수 시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며 “당장 사업 철수를 결정하면 현지에서 쌓은 이미지 추락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이후 시장 진출도 어렵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재에 동참할 경우 러시아의 보복 가능성도 걱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서방의 대러 제재는 선전포고에 가깝다”며 맞대응을 시사했다. 국내 기업들이 철수와 잔류 사이에서 머리를 싸매야 하는 이유다.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와 별개로 금융제재로 인한 국내 기업 피해는 현실화했다. 루블화 가치 폭락으로 현지 소비시장이 극도로 위축됐고, 제품 판매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이 러시아 사업을 중단하면 피해 규모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러시아는 제재로 고립된 환경 속에서 중국 등과 유대관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중국기업의 러시아 진출이 가속화돼 국내 기업이 빠진 빈자리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제재가 언제 끝날지 몰라 현지 사업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추가적인 러시아 제재 방향성 예측과 현지 생산공장 모니터링 강화 외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 지난 4일 ‘제8차 경제안보 핵심품목 태스크포스(TF) 회의’ 겸 ‘제11차 우크라이나 사태 비상대응 TF 회의’에서 피해기업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러시아 제재로 피해기업이 증가하는 데 따른 것이다.

회의에서는 기업 피해지원을 위한 2조원 규모의 긴급 금융지원 프로그램과 15조원의 정책금융 지원방안이 확정됐다. 지원대상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진출 기업과 수출·수입 기업, 협력·납품업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긴급 금융지원 결정으로 수출기업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금융지원 이외 기업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눈에 띄지 않는다. 기업 상황에 맞는 지원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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