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광장 고문 / 전 금감원 부원장 조영제
법무법인 광장 고문 / 전 금감원 부원장 조영제

문재인 대통령은 5년 전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 우리 사회의 많은 모순들을 들춰내며 대대적인 적폐청산을 했다. 그 덕분에 특권과 반칙이 성행했던 우리 사회는 많이 맑아졌다. 적폐청산의 소임을 맡았던 검사는 초고속 승진을 하며 검찰총장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 뒤에 뜻밖의 정치적 풍파를 겪으며 대통령까지 됐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어느 기념식 자리에서 한 여당 진영의 국회의원을 만났다. 그는 문 대통령이 한 말을 꺼내며 “어디서 그렇게 좋은 말을 구했는지 모르겠다”고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그 이후에 그 말씀처럼 정말로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로 나갔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공정과 상식,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 그 바람에 각 후보가 저마다 국리민복을 위해 제시했던 갖가지 공약들은 관심의 뒷전으로 밀렸고 공정하고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이 크게 부각됐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후진적 그늘에서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각종 부조리, 불공정의 찌꺼기들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현역 시절 고아원을 종종 찾았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는 가족적 분위기에서 밝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그러나 방문을 마치고 나올 때면 이 힘없고 빽 없는 아이들이 성년이 돼 사회로 내보내졌을 때 혹여 반칙과 특권이 성행하고 불평등과 부조리가 판치는 세상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그 험난한 삶을 헤쳐 나갈까 걱정이 앞섰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한다. 반칙과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가 정의로워야 한다. 그래야 모두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것이고 누구든 억울해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의 가치관에 소중함을 느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기회의 균등과 과정의 공정은 강조했지만 결과의 정의로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평가에 인색했다.

결과가 정의로운 사회는 각자가 노력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는 사회일 것이다. 각자의 노력과 성과가 다른데 무조건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정의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집단을 이용한 떼법이나 막무가내식 요구들이 난무하는 세상은 결코 정의사회라고 할 수 없다. 자기 직분에 따라 성실히 산 삶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진정한 정의사회가 구현될 것이다.

우리는 새 대통령을 맞는다. 대선과정에서 그는 공정과 상식,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더 이상의 특권과 반칙은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국민들은 정치경험 없는 검사를 국가의 지도자로 뽑았다. 그는 당선 후 나눠먹기 인사는 안하고 오직 실력 위주로 사람을 뽑아 국민을 제대로 모시겠다고 했다. 분명 국민 앞에 한 약속이기에 우리는 그의 말에서 정의사회의 희망을 본다.

우리는 유능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우대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생전에 직원들에게 “바뀔 사람은 바뀌어라. 많이 바뀔 사람은 많이 바뀌고 많이 기여해라. 적게 바뀔 사람은 적게 바뀌고 적게 기여해라. 그러나 남의 뒷다리는 잡지마라”고 했다. 정당한 노력 대신 투서가 난무하고 음해나 중상모략으로 발목잡는 추악한 행태는 죄악시되고 사라져야 한다.

법치주의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요건이다. 무질서한 동물사회와 달리 인간사회는 자율과 책임이라는 공동체 윤리가 있기에 이를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법치주의는 이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며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철학의 기본원리이자 사회의 원초적 규범이다.

그러나 법치주의는 선진사회로 가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는 법치를 넘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법치가 지나치게 강조되면 사회는 공포감에 휩싸이고 국민들은 옴츠려든다. 단지 법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시민정신을 갖고 자발적으로 사회적 질서 형성에 동참할 줄 아는 자율규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양극화로 인해 분열과 갈등이 증폭된 우리 사회는 차가운 법치 대신 따뜻한 법치가 요구된다. 열심히 일하다 저지른 실수는 관대히 용서하고 같은 반열에서 경쟁할 수 없는 취약자이나 약소기업은 그만큼 배려하며 모두가 정부를 믿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소명을 안고 탄생한 윤석열 정부에게 그런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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