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미국 Purdue대학교 경제학 박사/전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신민영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미국 Purdue대학교 경제학 박사/전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일본이 주요 7개국(G7) 회원국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에 한국이 들어가도 할 말이 없다.”

올해 초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출신 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가 경제전문지 ‘다이아몬드’에 기고한 글의 주요 내용이다. 노학자의 주장에 설마 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숨길 수 없다. 상대가 다름아닌 ‘숙적’ 일본 아니던가.

구매력 감안한 1인당 소득은 2018년부터 한국이 앞서

무엇보다 국내총생산(GDP) 수치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일본의 1인당 GDP는 한국보다 15.6% 높지만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일본경제연구소는 일본의 1인당 GDP가 한국에 2027년, 대만에는 2028년에 추월당할 것으로 추산한다.

일본의 IMF의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 1인당 GDP는 2018년 이미 한국에게 추월당했다. 지난해는 한국이 일본에 비해 7.5%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PPP 환산 소득은 식비, 교통·통신비, 이·미용비 등을 반영해 구매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을 나타낸다. 따라서 국가간 생활수준 비교에 자주 쓰이는 지표다.

평균 임금 역시 2020년 일본 3만8515달러(약 4600만원), 한국 4만1960달러(약 5000만원)로 한국이 앞선 상태다. 기업 가치에서 한국의 삼성전자가 세계 14위에 올라있는데 비해 일본에서 가장 큰 도요타자동차는 36위에 불과하다.

양국간 격차축소 혹은 한국의 부분적 추월은 1960년대 초중반부터 50여년간 한국이 연평균 7%의 높은 GDP 성장률을 기록한 결과다. 수출지향형 개발정책이 주효한 가운데 외국기업의 직접투자가 큰 역할을 했다. 반면 패전 이후 1970년대까지 호황을 이어가던 일본경제는 1980년대 들어 대미통상마찰과 플라자합의에 따른 엔화강세로 덜컹거렸다.

1990년대 초에는 버블붕괴가, 2000년대 들어 인구감소가 더해지면서 장기불황이 이어졌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여기에 일본 정부 및 민간부문의 디지털화 지체를 지적한다. 이에 따라 2020년 한국의 단위노동생산성은 2000년의 2배로 늘어났지만 일본의 증가율은 25%에도 못 미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0년, 20년 후 인구·성장문제 활발한 논의 아쉬워

일본의 쇠락과 한국의 상대적 선전은 구조적이고 추세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노구치교수의 예언이 현실화할 개연성을 인정할 이유다.

일본경제와 한국경제가 역전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한국의 정책당국과 기업들에게는 어떤 시사점을 줄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성도 느낀다. 그렇지만 위에서 양국간 경제력 격차 축소의 배경으로 언급한 몇 가지 요인 가운데 버블붕괴나 엔화강세는 30~40년 전의 일로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지속적으로 일본경제를 짓누르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역시 인구감소를 들어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일본경제의 쇠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서 한국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상황은 우리가 더 심각하다. 한국이 세계최저의 출생률과 빠른 고령화 속도를 보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이미 2020년부터 한국은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 인구의 자연 감소가 진행중이다. 아직은 30~40대 진입인구가 이어지는데다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50~60대의 경제활동이 더해져 전반적인 활력이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당장 10년 후, 20년 후의 인구와 성장세를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가에 대해 그 누구도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이 높다는 점도 불안요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향후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대응과 관련해 정부가 2050년까지 넷제로, 2030년까지 40% 탄소 절감 등을 발표했지만 기업들은 명확한 계획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향후 한국이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을 본격화한다면 1970년대 경공업으로부터 중공업으로의 전환 이래 한국의 제조업에서 가장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다.

자본이득보다 근로·사업소득에 관심 모아지게 만들어야

일본 경제도 아직 만만치 않다. 인구는 한국의 2.4배이고, 경제규모는 한국의 2.8배에 달하는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특히 산업 관점에서 볼 때 기계와 화학, 소재와 부품을 중심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대외건전성을 기반으로 한 거시경제의 안정성도 일본경제의 커다란 자산이다. GDP의 260%에 가까운 국가부채를 지고 있으면서도 경제위기로 몰리지 않는다.

2010년대 아베노믹스라 불리웠던 강력한 통화완화를 통해 엔화약세를 유도하고 디플레이션 방어에 나섰어도 일본경제에 대한 신뢰는 유지됐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국제통화를 보유하고 있고 3조1000억달러에 달하는 대외순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본경제의 안정성을 지탱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를 장기적으로 전망할 때 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20대, 30대 자식들이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한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10~20년 후인 2030년대, 2040년대를 대비하는 본격적인 논의는 잘 들리지 않는다.

부모 세대인 50대, 60대는 자신의 성과와 현재에 취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우리 역사에서 바른 사회를 만들고 부모보다 잘 살겠다는 의지로 진취성을 보여온 젊은층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듯하다. 한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부모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은 현재의 20대, 30대가 부모의 울타리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부유한 부모를 가지지 못한 많은 젊은 세대가 좌절한 결과가 아닌지 또한 우려된다.

때마침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당장은 인플레이션 대응을 통한 민생안정이 중요 현안이다. 그러나 10년 후, 2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미래 대책은 그다지 거창할 것도 아니고 출산지원금과 같은 단기적 처방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일례로서 부동산·주식 등의 자본이득보다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을 올리는데 관심이 모아지는 경제를 만드는 일이다. 기성 세대의 자산 보호보다는 젊은 세대의 창업의욕, 근로의욕을 북돋우는 정책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두고 싶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를 젊어지게 하는 그 어떤 것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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