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영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전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신민영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전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국내외 금융시장이 심하게 덜컹거린다. 나스닥,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미국 주가지수가 개도국의 개별 주가처럼 움직인다. 지난 반년 사이의 하락장 속에서 뉴욕증시는 하루에 5% 가까이 빠지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채권수익률 역시 연일 상승하고 있다.

물가급등이 금융시장 불안의 배경

주지하다시피 주가가 출렁이고 채권금리가 치솟는 건 3월 미국 소비자물가가 8.4%에 이르는 등 주요국 물가의 급격한 상승 때문이다. 물가가 급등하니 이를 조절하기 위해 금리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금리가 오르고 향후의 정책 불확실성으로 인해 주가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주요국 금리인하와 더불어 양적완화라는 특단의 수단이 더해지며 통화가 급팽창해 불안정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인플레이션(inflation) 대처가 적기에 이뤄졌다면 이러한 혼란은 일정 정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일찍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에 나서는 게 필요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FRB·연준) 의장은 지난해 11월 말에야 상원 청문회에서 이번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판단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 안 가 물가가 다시 안정세를 찾을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인플레이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해석됐다.

구조변화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응 늦어졌을 수도

FRB의 대응이 왜 그리 미온적이었을까? 먼저, 물가상승의 원인과 관련 지어 설명할 수 있다. 이번의 물가상승이 주로 공급측 요인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이다. 코로나로 인한 차량용반도체 부족 으로 신차생산이 지연되면서 중고차 가격이 급등한 것이나 전통 에너지 부문 투자가 부진해 원유 등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한 것이 그 예에 해당한다.

공급측 요인이 지배적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금리인상 등 수요관리정책은 경기를 급락시킬 위험성이 커 금리인상이 적절한 정책수단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물가가 가라앉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노동시장이 타이트해짐에 따라 임금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인플레이션의 지속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FRB의 늑장대응과 경제주체들의 신뢰 하락에는 장기적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둔감 내지는 거부감이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물가는 성장과 더불어 거시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인플레이션율이 빠르게 낮아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 나타났다. FRB의 경제전문가들 역시 지난 30~40년간 세계경제를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을 거의 마음 속에서 지웠는지도 모른다.

2000년대 들어서도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 등 일부 개도국에서는 물가가 수백만%까지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선진국에서 물가는 안정세를 보였고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오히려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 문제시됐다. 따라서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물가 상승이 일어났지만 이것이 병목현상에 따른 일시적인 것으로 보고 인플레이션을 인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화 등 디스인플레이션 이끈 세계경제 구조변화 반전 가능성

지난 30~40년의 세계경제를 되돌아보면 몇 가지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물가가 하향 안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화의 빠른 진전으로 세계 전체의 관점에서 가장 값싸게 생산이 이뤄질 수 있었다. 여기에 자유무역협정 확산 등 무역자유화가 이어지면서 값싼 상품의 수입이 가능했다. 상품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중남미 개도국으로부터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으로 저임 노동자의 이동이 늘어 임금상승을 억제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을 중심으로 신흥개도국이 저가의 상품을 끝없이 제공함으로써 물가상승을 막는 효과를 발했다. IT 산업의 발달은 이른바 아마존 효과를 불러왔다. 가격경쟁력이 최고인 기업들만이 생존할 수 있었고 빠른 정보이동을 통해 재고를 감소시킴으로써 가격을 최대한 낮출 수가 있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16년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으로 세계화의 후퇴가 표면화되고 바이든정부 들어서도 방식은 달라졌을 뿐 기조는 이어져 왔다. 올 들어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역간 혹은 진영간 갈등이 굳어지고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90년대, 2000년대 세계화에 힘입어 세계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하고 물가가 안정되는 골디락스 경제에서 그 누가 세계화가 후퇴하리라 생각이나 했을까? 아울러 중국이 빠르게 성장했고, 그 결과로 물가와 임금이 크게 올랐다. 이에 따라 지난 날과 같은 중국의 저가수출에 의한 물가하락효과도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 대체로의 평가다.

아마존효과도 마냥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 상품 제조 기업들의 원가가 급등하면서 아마존효과는 이전보다 크게 약화되고 있다. 오히려 전통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주가가 훨씬 선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변화는 예기치 못하게 닥쳤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인플레이션이 이 정도로 세계경제를 휘저을 줄은 미처 몰랐다. 30여년간 경제현상을 관찰하고 전망하면서 당연히 물가안정은 영속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율 하락이 노멀이고 인구고령화에 따른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을 막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고의 틀 속에서 파월 의장처럼 이번 인플레이션 역시 일시적인 것이고 금리정책은 미조정이면 충분할 것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올해 연초 열린 경제전망 세미나에서 연말로 갈수록 국제뉴스에서 인플레이션이란 단어는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 적도 있다.

따지고 보면 1870대년부터 1차세계대전 사이에도 세계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증기선 발명과 수에즈운하 건설 등 운송비 절감요인을 배경으로 영역에 따라서는 현재 수준보다 훨씬 더 국가간 상품 이동이 자유로웠다. 그렇지만 이후에 전쟁과 대공황 등으로 흐름이 단절되고 세계화가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역사가 말해주는 바와 같다.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이 이어지면서 세계화가 더욱 후퇴하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이어지는 세상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정확한 관측과 유연한 사고로 경제학 신뢰 회복해야

물론 현 상황에서 전쟁과 대공황으로 100년 전과 같은 퇴행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각국 정부의 관리능력이 향상된데다 정보화기술의 발달로 수요와 공급의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어 장기적으로 물가가 빠르게 오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의 실패를 계기로 경제학자들이 사고를 유연히 할 필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현재 연구소나 대학의 영향력 있는 50, 60대 경제학자들이 보아 온 세상은 지난 30~40년간의 디스인플레이션 시대였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은 진리다. 10여년 전 유행했던 유머가 떠오른다. “기상학자나 경제학자 모두 틀린 전망을 한다. 그렇지만 기상학자는 적어도 현재 날씨와 변화방향에 대해서는 옳은 이야기를 하는데 경제학자들은 현재 경기가 좋은지 나쁜지, 좋아지는 건지 나빠지는 건지 방향조차 알지 못한다.”

경제학과 경제학자들에 대한 신뢰가 또다시 떨어지고 있다. 경제전망을 정확히 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변화방향에 대해서는 객관적 판단을 바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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