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재인 정부 규제강화로 대기업 해외러시 이어져
새 정부, 민간주도 경제성장 추진 등 친기업 정책 예고
삼성·현대차·롯데·한화, '588조원' 투자 발표로 호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공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친기업 정책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에 삼성과 현대자동차, 롯데, 한화그룹 등이 대규모 투자계획 발표로 화답했다. 

미래 먹거리 육성과 국내 일자리 창출 등에 무려 600조원 규모에 달하는 투자를 결정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투자 발표를 낸 기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450조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두번째로 많은 63조원 등 통 큰 투자 결단을 내렸다.     

◆문재인 정권 5년, 국내보다 해외투자에 집중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국내 경제인들과 스킨십을 늘리며 과감한 규제개혁을 약속했다. 취임식에는 대기업 경영자들을 대거 초청해 친기업 '브로맨스'를 예고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과정에서 경제 안보를 비롯해 기술적 협력을 함께하기로 하면서 기업이 국내외에 투자할 수 있는 판이 조성됐다.

정부가 본격적인 민간 주도의 경제성장과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삼성 450조원, 현대차 63조원, 롯데와 한화가 각각 37조원 등 약 588조원 가량의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춘 대기업의 중장기 투자계획 발표는 낯설지 않지만, 투자액 가운데 480조원가량이 국내에 집중됐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그간 문재인 정부도 기업 규제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기업의 투자를 유도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집권 후 경제정책의 3가지 축으로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추진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임기 5년 기업들의 투자는 대부분 해외로 쏠렸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해외투자 규모는 200억달러 수준이다. 

반면 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662억2000만달러(약 83조5700억원)로 이전 정권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오히려 기업의 규제가 강화돼 한국의 투자 매력도가 급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벤처기업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지난해 1월 공동 실시한 ‘기업규제 관련 기업인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응답에 참여한 기업 230개사 중 69.5%인 160개사는 정부 규제 강화에 불만을 나타냈다.

기업의 77.3%는 우리나라 규제 강도가 외국에 비해 강하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투자의 중심축을 해외로 옮겼다. 또한 공정경제 3법도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킨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해당 법안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 근절 ▲금융그룹의 재무 건전성 확보 등의 목적으로 입법됐다. 재계는 경영권 침해와 규제 강화 등의 이유를 들며 입법을 반대했지만, 결국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새 정부 정책기조 호응, 민간주도 성장 가속
문제는 기업 세금 부담도 높아졌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첫해인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1990년 이후 27년 만에 22%에서 25%로 올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법인세 최고세율 평균(21.5%)보다 높은 수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으로 최대 11.9%의 설비투자 감소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세금 부담과 함께 강성 노조, 정부 규제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의 해외 탈출 러시가 이어졌다.

기업의 국내 투자 여건은 지속적으로 악화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비현실적인 제도는 다 철폐하겠다”고 했다.

재계의 기대감도 높아졌고, 기업들은 새 정부 정책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통 큰 투자로 호응했다. 기업들은 국내 투자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인프라 시설 확충, 미래산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방침이다.

우선 삼성그룹은 반도체분야 초격차 유지와 바이오를 제2 반도체로 육성한다는 목표다. 동시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인공지능(AI)과 차세대 이동통신인 6G 기술 확보에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

현대차그룹은 다가오는 전기차시대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전동화·친환경, 신기술·신사업 등 사업 경쟁력 확보에 역점을 뒀다. 대규모 투자를 국내에 집중해 한국을 현대차그룹 미래 사업 허브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롯데그룹은 주력 분야인 화학은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축된 유통과 관광사업 회복과 헬스케어, 모빌리티 등 신사업에 자금을 쏟아붓는다. 한화그룹 역시 투자로 친환경에너지, 탄소중립사업 추진을 가속한다.

업계는 이들 기업의 투자로 일자리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은 5년간 8만명을, 한화는 기계·항공·방산, 화학·에너지, 건설·서비스, 금융 등 전 사업 부문에 걸쳐 연평균 4000여명의 신규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대차와 롯데는 채용 관련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지만, 투자 계획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SK와 LG그룹도 조만간 투자 계획을 공개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전체 투자 규모와 신규 채용인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문재인 정권의 규제 강화 속에서 국내투자를 줄이는 대신 해외투자를 늘려왔다. 해외로 진출하는 것은 시장 선점을 위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일자리 해외 유출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의 이번 투자를 통해 일자리 문제 해결을 비롯한 국내 경제의 역동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국내외 환경이 어려운 만큼 기업들이 전면에 나서 정부 경제정책을 뒷받침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정부와 기업 간 공조도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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