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 34년 근무… IB 경력만 27년 '베테랑'
"최고 성과는 아직… 안주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어"
"변하는 세상 생존법, 스스로가 끝없이 고민하는 것"

30년 이상을 한국투자증권에서만 근무한 정일문 사장은 정통 증권맨이다. IB 경력만 27년인 그는 IB베테랑이기도 하다. 사진=한국투자증권 제공
30년 이상을 한국투자증권에서만 근무한 정일문 사장은 정통 증권맨이다. IB 경력만 27년인 그는 IB베테랑이기도 하다. 사진=한국투자증권 제공

[서울와이어 김민수 기자] “우리가 낼 수 있는 최고 성과는 아직 못 이뤘다. 지금의 결과에 안주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으며, 모든 분야에서 경쟁사가 넘보지 못하는 압도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 ‘용기’와 ‘열정’으로 무장하고 시장과 고객을 맞이해야 한다.”

정일문 사장은 30년 이상을 오직 한국투자증권에서만 근무한 ‘의리의 증권맨’이다. 이직이 잦은 증권업계에서 이례적인 사례다. 1988년 동원증권의 전신인 한신증권 공채로 입사했다. 정 사장은 한국투자증권에서 공채 사원 출신이 사장으로 취임한 첫 인물이다. 

정 사장은 2004년 동원증권 주식발행시장(ECM)부 상무보에 올랐다. 이듬해 6월 한국투자신탁증권과 합병을 통해 한국투자증권이 탄생한 뒤 2006년부터 기업금융(IB)2본부 상무, 기업금융본부장 겸 퇴직연금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9년 1월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그동안 국내외 영업 현장을 찾아 누적 거리 300만㎞를 달려왔다”며 “앞으로 100만㎞를 더 달려 400만㎞를 채워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선 정 사장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평가한다. 단순히 목소리가 크고 나서길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2019년 정부의 발행어음 부당대출 제재(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자금 가운데 부동산에 투자한 비중이 10%를 초과하면 레버리지비율에 반영)에 따른 운용수익률 감소 우려에도 발행어음사업 1위 입지를 굳히기 위해 적극 나섰다.

그는 발행어음을 통해 부동산투자 대신 중견기업 자금지원을 확대해 기업금융투자 비중을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앞서 한국투자증권은 2017년 11월 국내 첫 발행어음사업 인가를 받았다. 덕분에 다음 사업자가 나오기 전까지 발행어음 시장을 독점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정 사장의 계획은 적중했다. 이후 발행어음 사업에 진출하는 증권사가 늘어났지만 한국투자증권은 여전히 1위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발행어음 사업자별 발행 잔고는 한투 약 8조2600억원으로 2위 KB증권(약 4조4700억원)을 2배에 가까운 규모로 앞섰다.

그는 한국투자증권의 첫 외화채권 발행도 성공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7월 3년, 5년 만기로 각각 3억달러씩 총 6억달러 규모를 유치했다. 글로벌 기관의 적극적 참여를 이끈 덕에 29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몰리기도 했다. 

사장 취임 후 연이은 도전적 경영이 성공으로 이어진 데는 사실 그가 IB 베테랑이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재직 기간 중 27년을 IB본부에서 근무한 그는 2004년 LG필립스LCD의 한국·미국 증권거래소 동시 상장과 2007년 삼성카드 상장, 2010년 당시 역대 최고 규모(4조8000억원)였던 삼성생명 상장 등을 성공시킨 저력이 있다. 

물론 그에게도 어려운 고비는 있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옵티머스펀드, 팝펀딩펀드, 디스커퍼리펀드, 젠투펀드, 라임펀드 등 연이어 발생한 펀드 환매중단 사태에 대부분 연관됐다. 특히 2020년 6월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펀드는 판매 잔액이 577억원에 달했다. 피해자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자칫 회사에 큰 타격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이에 정 사장은 신속한 상황 파악 지시와 함께 곧바로 소비자보호위원회를 열어 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의 70% 선지급을 결정했다. 이후 추가 보상을 통해 투자금 100%를 지급했다. 당시 정 사장은 “향후 분쟁조정 결과나 손실률이 확정되더라도 지급한 보상금은 회수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 전향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정 사장은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고객신뢰가 회복되면 영업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당장은 비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투자”라고 말했다. 그의 결단으로 인해 타사에서 보상을 받은 피해자들은 이 회사의 사례를 들며 100% 지급을 외치게 됐다. 그만큼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고객의 신뢰는 높아져만 갔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순이익과 영업이익 모두 1조원을 돌파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은 1조4502억원으로 전년 대비 104.9% 증가해 업계 1위였다. 영업이익도 1년 만에 70.1% 증가한 1조2940억원을 기록했다.

정 사장은 역대 최고 실적에도 자만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낼 수 있는 최고 성과는 아니었다”며 “모든 분야에서 경쟁사가 넘보지 못하는 압도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올해 전 부문에 걸쳐 시스템 재정비에 나섰다. 그는 “재정비는 부족한 부분을 제대로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낡은 굴레를 버리고 업무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처음부터 살펴 개선·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새롭게 생각하고 과감히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각보다 빠르게, 때로는 우리 생각과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생존하는 방법은 우리 스스로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하는 것”이라며 “임직원 각각의 ‘열정’이 모여 창의력이 발현될 때 조직이 변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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