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디지털자산 투자 손실금, 재산 총액 배제
투자자들, '빚투·먹튀 조장 한다' 비판의 목소리

최근 서울회생법원이 이달부터 ‘디지털자산이나 주식 투자 실패로 대출금을 날린 채무자의 개인 회생을 쉽게 하겠다’는 취지의 기준을 적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최근 서울회생법원이 이달부터 ‘디지털자산이나 주식 투자 실패로 대출금을 날린 채무자의 개인 회생을 쉽게 하겠다’는 취지의 기준을 적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서울와이어 김민수 기자] 법원이 새로운 기준의 개인 회생 지침을 이달부터 적용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빚내서 도박하는 것을 나라가 허용해 주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앞으로 ‘도덕적 해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지난달 28일 실무준칙 제408호를 제정하고 이달부터 시행했다. 제408호는 채무자가 주식 또는 디지털자산에 투자해 발생한 손실금을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에 배당받을 총액’을 계산 시 고려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주식이나 디지털자산으로 잃은 돈을 제외하고 ‘남은 재산’을 기준으로 개인 회생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2030 개인 회생 신청 증가 추세… 하반기 폭증할 듯”

개인 회생 제도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파탄에 직면한 채무자의 효율적 회생과 채권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마련된 절차로 2004년부터 시행 중이다. 법원은 채무자의 현재 자산과 월 소득 등을 고려해 앞으로 갚아야 할 총금액인 ‘변제금’을 산정한다.

개인 회생을 통해 채무액 10억원 이하의 급여소득자 또는 영업소득자는 3~5년간 일정 금액을 갚으면 남은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채무자들의 재산이 빚보다 적어지면서 개인 회생을 시작할 수 있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고, 채무자가 갚아야 할 빚은 줄어들 수 있다. 

사례로 살펴보면 1억원의 재산이 있는 투자자 A씨는 은행에서 2억원을 대출받아 주식·디지털자산에 투자했다가 모두 잃었다. 법원은 종전까지 재산 1억원과 투자 손실금 2억원을 합친 3억원을 A씨의 총 재산으로 봤다. 새 기준에 따르면 투자 손실금을 제외한 1억원만이 A씨의 재산이 돼 개인 회생으로 갚아야 할 액수의 하한이 줄어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호황이던 주식과 디지털자산 투자에 뛰어든 이들이 투자 실패와 이자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줄도산하는 경우가 급증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법원 측은 “물가급등, 금리상승 등으로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있어, 하반기 채무자들의 경제적 파탄 및 도산신청 건수가 폭증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재정준칙에 따라 채무자에게 과도한 변제를 요구했던 기존의 개인 회생 실무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궁극적으로 이번 제도개선을 통해 주식 또는 디지털자산 투자 실패로 경제적 고통을 받는 20~30대 채무자들의 경제활동 복귀 시간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박해도 구제해주는 좋은 나라” 시장 비난 넘쳐

이번 재정준칙 시행으로 일각에선 고위험 투자인 주식과 디지털자산에 법원이 ‘빚투와 ‘먹튀’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이번 재정준칙 시행으로 일각에선 고위험 투자인 주식과 디지털자산에 법원이 ‘빚투와 ‘먹튀’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이번 재정준칙 시행으로 투자자가 주식·디지털자산 손실액을 갚지 않아도 된다거나 빚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총 재산이 적으면 갚아야 할 돈이 줄어들 게 된다. 이에 일각에선 고위험 투자인 주식과 디지털자산에 법원이 ‘빚투(빚내서 투자)’와 ‘먹튀(먹고 튀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도박해도 구제해주는 좋은 나라”, “도박하다 잃어서 빚 못 갚으면 채권자는 손해 봐야하는 것인가”, “반대로 코인으로 수익을 낸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회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등 비난의 글들이 올라왔다.

도덕적 해이 증가와 형평성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네티즌들은 “도박인데 도박을 도와준다고 하니, (빚내 투자를) 하고 또 하겠네”, “파산까지 갈 정도면 정상적인 투자를 한 게 아닌데 이걸 봐주는 게 말이 되냐”, “대출받아 장사하다 망해서 개인 회생을 하면 갚아야 하는데, 코인과 주식은 빚을 줄여준다는 거냐”라고 했다.

이에 대해 법원 측은 “주식 및 디지털자산 투자 손실금은 현재 채무자가 보유하고 있는 경제적 이익이 아님에도 도덕적 해이 등을 이유로, 개인 회생절차에서 채무자가 변제할 총금액이 투자 손실금보다 무조건 많아야 한다는 논리로 채무자들에게 제약을 가하고 있다”며 “다만, 투자 손실을 핑계로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는 규제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도 이번 준칙 시행을 두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건전한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장기적 관점에서 형평성의 제고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디지털자산 업계 관계자는 “다른 목적으로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의 개인 회생과 비교하면 불평등한 부분이 많다”며 “2008년 리먼브라더스 금융위기 사태 때는 이보다 더 힘든 상황이 연출됐지만, 딱히 이런 식의 조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법원이 밝힌 젊은 층의 경제활동 복귀를 위한 목적이라면 차라리 학자금 대출 같은 보다 현실과 직면한 문제를 지원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며 “장기적 관점의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형평성 논란을 불식시킬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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