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실 고양이 래리, 캐머런 이후 네 번째 총리 맞게 돼

[서울와이어 장경순 기자] 영국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영국 총리 관저는 2011년 이후 네 번째 주인을 맞게 됐다. 보리스 존슨 영국총리가 7일(영국시간) 사임을 발표해 조만간 이 곳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설 예정이다.

11년 동안 총리가 네 번이나 바뀌지만 다우닝가 10번지에는 여전히 2011년 이후 같은 직함을 유지하게 될 ‘철밥통’ 관계자가 있다. 직무 수행능력에 대한 논란이 있는 공직자지만 어떻든 그는 차기정부에서도 현직을 유지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 관계자는 총리실의 ‘수석 쥐잡이’ 래리 더 캣이다. 그의 성처럼 래리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다. ‘수석 쥐잡이(Chief Mouser)’는 총리 가족의 반려고양이에 익살스런 별명으로 붙여준 것이 아니라 총리실이 정식으로 부여한 직위다.

영국총리실 '수석 쥐잡이' 래리. 사진=영국정부 홈페이지
영국총리실 '수석 쥐잡이' 래리. 사진=영국정부 홈페이지

 

2007년생인 래리는 떠돌이 고양이였으나 동물보호기관에 의해 구조된 후 2011년 총리실에 영입됐다. 당시 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이었다.

영국 정부청사는 지은 지 수 백 년이 지나 쥐들의 출몰이 큰 골칫거리다. 쥐들을 쫓아내기 위해 이전에도 영국 정부기관들은 고양이를 정부업무의 일환으로 기르는 전통이 있다.

위키피디어에 따르면 래리는 취임한 지 두 달쯤 뒤에 자기가 잡은 쥐를 총리관저 대문 앞에 내놓아 실적을 과시했다. 2013년에는 2주 동안 네 마리 쥐를 잡기도 했다고 위키피디어는 전하고 있다.

하지만 래리의 쥐잡이 실력은 갈수록 혹평을 받기 시작했다. 평온한 총리실 생활에 적응하면서 사냥본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2020년 포착된 래리의 비둘기 기습 장면은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이날 래리는 총리관저 앞 도로에서 평온하게 먹이를 찾던 비둘기를 웅크린 사냥자세로 한참 노려보다 느닷없이 공격했다. 매일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래리가 비둘기를 덮치자 취재진들 사이에서 가벼운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래리의 공격본능은 거기까지였다. 비둘기는 날개짓 몇 번으로 래리의 공격을 일축하더니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취재진들은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비둘기에게 만만한 래리도 외무부의 ‘쥐잡이’ 고양이 팔머스톤에게는 인정사정없는 상위서열자의 모습을 보였다. 래리가 팔머스톤을 제압할 때만큼은 마치 우두머리 사자가 영역을 침범한 다른 수컷을 쫓아낼 때와 같은 고양이과의 용맹함을 떨쳤다. 팔머스톤은 많은 쥐를 잡아 칭송이 자자했지만 다우닝가 영역다툼에서 이겨보지 못한 채 2020년 7월 공직은퇴를 선언하고 낙향했다.

다우닝가 10번지 앞에는 늘 수많은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들고 총리와 고위당국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포착하기 위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텅 빈 도로를 보면서 대기한다. 이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건 10번지 대문이 빼꼼히 열리면서 등장하는 래리다.

2011년 래리를 영입한 캐머런 총리는 2016년 퇴임에 앞서 의회에서 래리가 자신의 반려고양이가 아닌 총리실관계자임을 확인했다. 그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를 반대했지만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총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테레사 메이 총리와 보리스 존슨 총리가 각각 3년씩의 재임기간을 가진 뒤 이제 다우닝가 10번지에 새로운 주인이 조만간 나타나게 됐다.

래리의 트위터계정을 자처하는 @Number10cat은 트윗을 통해 “몇 가지 분명히 할 게 있다”며 “1. 나는 보리스 존슨의 고양이가 아니다. 2. 다른 모든 총리들처럼 존슨도 다우닝가에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다. 3. 여기 계속 사는 건 나다. 그가 가도 나는 남는다. 4. 잘 알겠지만, 이렇게 당혹스런 일도 조금 있으면 다 잠잠해진다”고 현재 상황을 풍자했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