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승 기자
주해승 기자

[서울와이어 주해승 기자] 금리인하요구권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 법제화가 이뤄진 지 3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유명무실'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에 신음하는 차주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하고 있지만 대출금리를 깎아줄수록 손해를 보는 은행들은 요구를 받아들여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금리인하요구권은 금융사로부터 대출을 받은 후 언제라도 취업·승진·재산증가·신용평가점수 상승 등으로 본인의 신용상태가 개선됐다고 생각되는 경우 금융사에 이자를 깎아달라 요구할 수 있는 금융소비자 권리다. 

최근 들어 금융소비자들의 금리인하 요구가 대폭 늘어나고 있지만. 수용률은 매년 뚝뚝 떨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시중은행, 지방은행, 인터넷은행의 지난해 금리인하요구권 접수 건수는 총 88만2047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수용 건수는 23만4652건으로 수용률은 26.6%에 불과했다. 이는 전년(28.2%)보다 1.6%포인트 낮은 수치다. 

지난해 은행권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에 따른 대출액도 8조5466억원으로 전년(10조1598억3600만원)보다 1조6132억3600만원 감소했다.

물론 신청건수 증가에 따른 거절 증가로 수용률이 떨어진 측면도 있다. 특히 비대면화로 신청 절차의 허들이 낮아지면서 자격 요건이 안 되는 대출자까지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자 식'의 무분별한 신청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금융사들은 금리인하 심사에 필요한 서류 제출 등을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금리를 깎아줄지 결정하는데, 신용상태 개선 정도가 금리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라고 판단되면 당연히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이 같은 은행의 판단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 시 적용되는 금리 수준은 소득, 자산, 부채 변동 등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신용평가모델(CSS)이 적용되는데 이 기준은 금융사별로 각각 다르다. 은행 입장에서는 거절 이유를 밝힐 경우 경영 기밀이 밝혀지기도 한다. 

언뜻 보기엔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신용등급도 오르고 월급도 상승한 차주들은 명백한 이유 없이 거절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에 금융당국은 8월부터 금리인하요구권 관련 운영 실적을 비교 공시하도록 했다. 관련 심사 기준 역시 금융사 내규에 명확하게 반영되도록 변경하고, 만약 수용되지 않았을 때는 신청인이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준화된 문구에 따라 안내하도록 조치했다. 

다만 문제는 이 같은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가다. 현재로선 금융사가 신청요건과 심사기준을 소극적으로 운영하거나, 자격이 되는 대출자들의 정당한 인하 요구를 거절해도 명확히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결국 제도가 실효성을 얻으려면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변하는 수밖에 있다.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를 맞아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이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은행들이 소비자를 위한 금융이라는 사회적 책무를 다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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