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9월 연고점 11차례 경신
하락 속도 2008년 이후 두번째로 빨라
"과거 위기와 달라, 건정성 문제 없어"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연고점을 11차례 경신하며 급등을 지속했다. 사진=서울와이어DB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연고점을 11차례 경신하며 급등을 지속했다. 사진=서울와이어DB

[서울와이어 주해승 기자]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금융시장의 불안이 한국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정부와 통화당국은 대외건전성이 양호한 편에 속한다며 연일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도 정부는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했지만 결국 환란 위기를 겪었다. 

◆원/달러 환율 이달에만 11차례 연고점 경신

최근 금융시장 불안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행보와 그에 따른 달러화 강세의 영향이 가장 크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연고점을 11차례 경신하며 급등을 지속했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고가 기준으로 9월 1일(1355.1원), 2일(1363.0원), 5일(1375.0원), 6일(1377.0원), 7일(1388.4원), 14일(1395.5원) 15일(1397.9원) 16일(1399.0원), 22일(1413.4원), 26일(1435.4원), 28일(1442.2원) 등 총 11번 연고점을 갈아치웠다. 

외환당국은 달러 매도와 구두개입,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국채 매입 등 지니고 있는 카드를 총동원하고 있지만 '킹달러'(달러 초강세) 기조를 바꿀만한 효력은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달 들어 원화 가치 하락폭이 다른 아시아 통화보다 두드러진다는 점은 더욱 우려를 키우고 있다.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달 한국·중국·일본 통화의 달러 대비 절하폭은 원화(-7.11%)·위안화(-4.31%)·엔화(-3.64%)로 원화가치 하락세가 눈에 띄게 가파르다. 원화가치 하락 속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번째로 빠른 수준이다.

이와 함께 올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8%에 그칠 것이라는 세계은행(WB)의 전망이 나오면서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위안화는 2년 2개월 만에 심리적 지지선인 '1달러=7위안' 아래로 떨어졌다. 외환시장에서 원화와 위안화는 통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위안화 약세는 원화가치 하락을 더 부추길 수 있다.

한국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대중 수출 전선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지난달 대중 수출은 1년 전보다 5.4% 줄어었고, 6월(-0.8%), 7월(-2.7%)에 이어 3개월 연속 감소했다. 한국의 가장 취약한 고리는 '무역수지 적자'다. 수출보다 수입 물가가 더 큰 폭으로 오른 탓에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고환율은 이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무역수지 적자는 원화 약세로, 이는 물가오름세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DB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DB

◆'제2의 환란' 경고등에도 "건정성 문제없다"

이에 원화 가치 급락세가 멈추지 않으면 달러 자본이 대거 탈출하는 '달러 엑소더스'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던 만큼 원화가 급락하는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제2의 환란' 경고등이 켜졌지만 정부와 통화당국은 여전히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과 관련해 대응능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26일 이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했지만 이는 대외요인에 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과거 위시기와 달리 현재로서는 우리 경제의 대외부문 건전성 문제 때문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에도 불구하고, 물가나 교역비중 등을 고려한 실효환율의 절하 폭은 크지 않았으며, 긴 시계에서 보아도 평균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서 "높은 대외신인도가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외화자금조달여건도 양호한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부와 한은의 입장처럼 당장 외환위기가 발생할 우려는 없어 보인다. 한국의 8월 말 외환보유액은 4364억달러 규모로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외환위기 때 외환보유액이 수십억 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국내시장에서 자본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두고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달러 사재기'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화 폭락을 부추겨 단기 이익을 얻으려는 역외 투기 세력에 대한 꼼꼼한 감시도 필요한 시점이다.  투기적 외환 거래가 원화 투매를 부추기면 원화값이 펀더멘털 이상으로 과도하게 폭락하는 '오버슈팅'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강달러 기조를 바꾸기 힘든 상황에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때 정부가 개입의 강도를 강화하면서 불안심리를 진정시키고 변동성을 잡는 역할이 환율 진정에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