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보증사고로 발생한 전세보증 대위변제액 '1087억원'
깡통전세 우려 심화… 경험 부족한 2030세대 노려 전세사기
정부, '전세사기 전담수사본부' 설치… 소액임차인 범위 확대
원희룡 "전세 사기범 지구 끝까지 쫓아가 처벌, 피해자 지원"

임대차시장에서 전세사기가 확산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이태구 기자
임대차시장에서 전세사기가 확산되면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이태구 기자

문재인정부 시절부터 혼란스러웠던 임대차시장이 윤석열정부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모습이다. 집값이 하락하며 부동산시장 전체가 침체기에 빠지면서 임대차시장의 전망도 어두워졌다. 역전세난도 뚜렷해지고 전세사기 우려도 심화되는 가운데 임차인과 임대인 모든 입장에서 현 상황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 고정빈 기자] 최근 임대차시장에서 가장 수요자들의 눈물을 흘리게하는 것은 ‘전세사기’다. 전세시장 혼란이 가중되면서 집주인이 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랐고 애꿎은 세입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평생을 모아둔 돈은 고통이되어 돌아왔다. 이에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할지 관심이 쏠린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반환 전세보증금'

1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보증사고로 발생한 전세보증 대위변제액은 1087억원이다. 1000억원을 돌파하면서 월별 기준 사상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10월 한 달에만 501가구가 세입자에게 제 때 받아야 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것이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가입하는 보증상품으로 집주인이 계약 기간 만료 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대신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지급(대위변제)하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받아내는 제도다.

HUG의 대위변제액은 2013년 9월 상품 출시 이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1억원에 불과했던 대위변제액은 2016년 26억원, 2017년 34억원, 2018년 583억원, 2019년 2836억원, 2020년 4415억원, 2021년 5040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이미 1∼9월 누적 대위변제액이 5000억원을 넘어서면서 지난해 변제액을 넘어섰다. 지난달 보증사고는 704건, 보증사고 금액은 1526억원(대위변제액 포함)을 기록하며 각각 월별 기준 사상 최다,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은행의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최근 집값이 하락하고 전세시장도 침체기에 빠지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다. 아울러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은 2030세대를 노려 전세사기를 벌이는 사례도 속출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금액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2.4%(1117억원), 2020년 49.6%(2320억원) 지난해 8월 62.8%(2210억원) 등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아울러 전체 건수 중 89%는 ‘3억 원 이하’로 서민과 청년층에 피해가 집중됐다.

전세사기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커진다. 가장 유명한 전세사기는 ‘세 모녀 보증금 편취 사건’이다. 세 모녀는 2017년 4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자신들의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빌라 500채를 구입했고 분양업자와 공모해 임차인을 모집했다. 임차인들에게는 분양대금보다 비싼 전세보증금을 받아 136명에게 298억원을 편취했다.

최근 임차인이 준 보증금으로 집을 구매하는 방법을 활용해 주택 400채를 매입하고 보증금을 반환해주지 않은 50대가 경찰에 구속됐다. 자기 돈 한푼 없이 480억원대 전세 사기 행각으로 HUG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안았다.

위기에 빠진 전세시장의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확률이 높다.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대위변제와 보증사고는 앞으로 늘어나고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를 내주고 잠적하는 전세사기 사례도 속출할 전망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사기자들을 향해 엄중 처벌을 예고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제공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사기자들을 향해 엄중 처벌을 예고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제공

◆정부 엄중조치 예고… "빠른 대책 필요해"

이처럼 임대차시장의 혼란으로 사기가 잇따르자 정부가 직접 해결에 나섰다. 국가수사본부는 올 7월28일 ‘전세사기 전담수사본부’를 설치하고 2023년 1월24일까지 6개월간 집중 단속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 시장의 혼란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행보로 풀이된다.

전담수사본부는 국토교통부를 포함한 관계기관과 공조하고 전세사기 단속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성됐다. 수사본부는 자금 추적부터 온오프라인 전세사기 첩보 수집과 피해 예방법 홍보까지 총괄하는 등 시장 안정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와 법무부는 지난달 21일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올 9월 발표한 전세사기 방지대책 후속 조치로 정부는 내년 1월 2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 초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해 시행할 계획이다.

방안에 따르면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선순위 보증금이나 확정일자 부여일, 임대차 기간 등 임대차 정보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집주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세입자로부터 이 같은 요구를 받으면 동의해야 한다. 기존에는 집주인 거부하면 세입자가 관련 정보를 받을 수 없었다.

현재는 집주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세입자는 세금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체납세금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집주인이 임대차 계약 전 세금을 체납했을 때 집이 경매로 넘어가거나 집이 압류당하면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이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납세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소액임차인’ 범위도 확대한다. 소액임차인으로 인정받으면 은행 등 선순위 보증금이 있어도 일정액을 먼저 돌려받을 수 있다. 서울은 보증금 1억5000만원 이하에서 1억6500만원 이하로 기준이 확대됐다. 우선변제 금액도 서울 기준 5000만원 이하에서 5500만원 이하로 늘었다.

전세사기를 막기 위해 표준임대차계약서도 개정한다. 집주인이 계약 이후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한 다음날까지 저당권 등 담보권을 설정할 수 없다는 특약이 담긴다. 이를 위반하면 세입자에게 계약해제권과 손해배상청구권이 생긴다. 임대차 계약서에 관리비 기재란을 신설해 전월세상한제로 월세 대신 관리비를 높여 받는 일부 집주인들의 편법도 예방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런 방안에도 전세사기를 저지른다면 엄중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올 9월 “서민의 전 재산인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것은 주거 사다리를 무너뜨리는 범죄행위로 정부가 반드시 근절할 것”이라며 “전세 사기범은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벌하고, 피해자들의 회복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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