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 미국 IRA 발효 이슈 공동대응 나서
EU판 보호무역규제 'CBAM' 공략법 모색
올 5월 산업판 '민관 어벤저스' 출범 예정

한국 기업이 해외 각국의 규제로 발목이 잡혔다. 미국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등이 제동을 걸었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벅차다.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2023년 계묘년을 맞아 해외 진출 제조업의 돌파구와 정부의 역할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철강·알루미늄 고율관세 면제 하루 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5개국에 탄소·합금강 선재 반덤핑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시장에서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 국장 재중용 후 제기됐던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업계 피해를 우려했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국내 철강 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서울와이어 최석범 기자] 올해 한국 제조업 전망은 밝지 않다. 세계 경제 하강으로 수출 수요 감소가 시작됐고, 내수 경기마저 얼어붙는 복합위기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미·중 패권경쟁이 쏘아올린 보호무역 기조는 자유무역을 기반에 둔 한국 산업의 핵심 리스크로 떠올랐다. 대내외 상황이 좋지 않지만 돌파구는 있다. 답은 민관 공동대응이다. 민관이 합심하면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위기의식 공감… 공동전략 위해 민관 합심

올해도 제조업 보호를 위한 민관 공동대응이 계속될 전망이다. 민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이슈에 함께 대응한다. 미 IRA 이슈는 국내 자동차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풀어야 할 과제다.

IRA는 북미에서 조립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한국 등 외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돼 피해가 예상된다.

민관은 IRA 법 개정을 계속해 피력하는 한편, 보조금 하위 규정에 예외 요건을 마련해 해법을 강구하는 방식으로 미국을 설득한다. 일단 미 재무부는 하위 규정을 만든 뒤 3월부터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달부터 제118대 의회가 구성돼 활동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IRA 법 개정을 요구할 전망이다. 올 3월 IRA 시행 전까지 미 의회를 어떻게 설득하냐가 관건이다.

민관은 미국 IRA 외에 유럽연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새 통상 규범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도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는다.

CBAM이란 EU가 탄소배출 규제가 약한 국가가 생산한 제품에만 부과하는 일종의 추가 관세다. 수입된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EU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연동해 세금을 부과한다. 일종의 탄소 관세로 유럽판 IRA로 불린다.

민관은 CBAM 도입 때 철강 산업의 피해를 예상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큰 틀에서 철강산업을 저탄소 생산구조로 전환한다. 이르면 올해부터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법을 활용하고, 전기 고로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철강업 저탄소 생산구조를 모색한다.

CBAM은 미 IRA와 달리 시행 시점이 촉박하지 않아 대응할 시간이 길다. EU는 올 10월부터 2025년까지 2년3개월을 '보고 의무 부과 기간'(전환기간)으로 정하고 2026년부터 CBAM을 본격 시행한다.

◆”이대로는 안돼”… 민관 산업구조 혁신

민관은 주력 산업 보호에 공동대응하는 한편, 미중 패권경쟁으로 부상한 국제 분업 붕괴 리스크에도 머리를 맞댄다.

지난해 9월 출범한 민관 '산업 대전환 태스크포스(이하 협의체)'가 대표적이다. 협의체는 산업 민관 전문가 포진했다. 참여한 인사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김현석 전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사장, 박일평 LG사이언스파크 대표,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다. 산업계 어벤저스가 모였다는 평가다.

민관은 올해 초 협의체를 정식 발족하고 수립한 정책을 정부에 공식 건의할 계획이다. 예상되는 시점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이 되는 올 5월이다. 큰 틀은 1960년대 만든 산업정책 모델을 탈피한 새 국가비전이다.

협의체는 투자분과와 인력분과, 생산성분과, 신비즈니스분과, 글로벌 비즈니스분과, 기업성장분과 총 6개 분과로 구성된다. 분과별로 구상하는 구체적인 정책이나 방향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협의체는 '반관반민' 성격의 국부펀드인 국가전략투자공사(가칭) 설립, 외국인 인력을 활용하는 이민청 설립 등이 논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솔선수범… G2G로 주력 산업 성장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세일즈 외교에 힘을 주고 주력 산업 보호에 나설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23일 미국 전기차기업 테슬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화상 면담을 하고, 기가팩토리 건설 등 한국 투자를 요청했다.

이에 머스크 CEO는 한국을 최우선 투자 후보지 중 하나로 언급하면서 "아시아 후보 국가들의 인력 및 기술 수준, 생산 환경 등 투자 여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가팩토리 유치가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테슬라가 그동안 중국 투자를 집중해 왔지만, 미·중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데다 세계적인 배터리 3사와 반도체 기업이 포진한 한국은 부품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강점을 가졌다.

올해 가장 기대되는 대통령의 세일즈 품목은 '방산'이다. 지난해 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당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정상회담을 갖고 방산 수출에 관한 협의를 진행했다.

지난해 한국은 폴란드와 30억달러(약 4조2000억원) 규모의 무기 수출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윤 대통령의 대표적인 세일즈 성과로 평가된다. 이후 폴란드와 방산 계약이 확대돼 120억달러(15조6000억원)가 됐다. 탄약과 군수자원 물량을 합치면 400억달러(52조원) 규모로 예상된다.

주현 산업연구원장은 “과거와 달리 자국 산업 보호가 강화되는 통상 환경에서는 개별 기업 단위로 글로벌 규제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새로운 통상 환경에서는 국가와 기업의 이익이 맞닿은 지점이 많은 만큼 민관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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