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금융의 시스템 위기를 막기 위한 미국과 유럽의 노력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와중에, 세계은행이 향후 투자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전 세계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30년까지 세계 평균 성장률이 연 2.2%로 떨어져 30년 만에 최저치가 될 것이라고 한다. 2000~2010년 연평균 3.5%에서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높은 금리로 취약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가 우려되는 가운데, 정책당국의 역할 중 단기적인 최우선 순위는 무엇일까.

인플레이션을 잡아 금융 부문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순위라는 게 세계은행의 입장이다. 부채 수준이 전례 없이 높은 시기에 인플레이션과 싸우려고 신속하게 고금리로 전환했으나 일부 선진국 은행의 최근 상황은 금융시장에 스트레스와 취약성을 발생시켰다.

◆금융 위험 전이와 경기침체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연방준비제도(Fed)가 모든 예금의 지급 보증을 결정했다. 모든 예금의 지급을 보증하는 것은 SVB 예금자뿐 아니라 유사한 상황에 노출된 중소규모 지역은행에도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모든 예금의 지급 보증을 결정하지 않으면 문제 있는 은행과 거래하는 많은 기업이 급여나 거래처 대금을 제때 지급 못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연쇄 효과가 돼 유사 문제에 다른 은행도 직면하게 된다.

급여를 못 받는 직원이나 해고된 직원은 가계를 곤경에 빠뜨릴 소지를 높이게 된다. 미수금이 증가한 거래처가 생기면 기업 간 거래에도 균열음이 생기고 연쇄 도산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금융의 전염효과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즉각적인 실업률 증가, 소비 감소, 실질 국내총생산(GDP) 감소로 경기침체 가능성에 다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역성장했다. 경제의 양대 축인 소비와 수출이 모두 부진한 모습은 올해 1분기에도 이어질 조짐이다. 가계는 물가 상승에 따른 실질 구매력 감소로 고금리에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주머니를 열기 어려워졌다.

자산 가격 하락도 소비 부진을 부치는 요인이다. 가계의 이자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정책은 생계비 위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좋을 듯하다. 금융당국이 국내 5대 은행 중심의 ‘은행권 과점체제’ 해소 방안 마련에 집중하는 것은 그래서 환영할 만하다.

◆5월 대환대출 플랫폼의 실행

여러 금융기관의 금리와 대출 조건을 한눈에 비교하고 유리한 쪽으로 갈아탈 수 있는 대환대출 플랫폼이 이르면 5월에 운영 개시된다. 대환대출은 새로운 금융사에서 대출받아 이전에 빌렸던 금융사의 대출금·연체금을 갚는 제도다.

기존의 대환대출 시장은 온라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직접 영업점을 방문해 기존 대출을 갚아야 했다. 금리나 대출상품 조건을 한눈에 비교하기도 어려웠다.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금융소비자는 대환대출 절차를 온라인으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대환대출 정보도 폭넓게 제공한다.

지금까지는 핀테크사만 대출비교 플랫폼을 운영했다. 핀테크사의 플랫폼은 개별 제휴를 맺은 금융사의 대출상품만 비교·추천해줘 소비자 선택권이 제약됐다. 핀테크사 외의 금융사도 대출 비교 플랫폼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을 추진한다. 은행 전체(19개), 비은행권 주요 금융회사(저축은행 18개, 카드 7개, 캐피탈 9개)의 신용대출(전체 신용대출 시장의 90% 이상)을 다른 대출로 손쉽게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은행과 플랫폼이 함께 경쟁에 참여하면 대출 이자는 물론 플랫폼 수수료 역시 상당 부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 23개 대출비교 플랫폼(대출비교 시장의 95% 이상)은 핀테크, 빅테크, 금융회사 등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해 제휴 범위와 금융서비스 간 연계, 신용평가 모델 등을 통해 이용 편의와 접근성 제고를 위한 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금융회사가 플랫폼 사업자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합리적으로 결정되도록 유도해 금융소비자 부담을 낮출 예정이다. 다수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참여에 따라 비은행권 대상의 중개 수수료가 기존 대비 상당 수준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간 우려와 원활한 제도운영의 핵심 

그간 은행권과 빅테크·핀테크 업계 간 이견이 심화했다. 은행은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면 빅테크·핀테크 업계의 금융산업 장악력이 비대해진다고 우려했다. 대출상품을 운용하는 은행은 사업 주도권을 빅테크·핀테크 업계에 뺏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환대출 때 발생하는 중개수수료 관련 합의도 해결 과제였다. 은행은 수수료 모델이 대환대출 플랫폼을 운영하는 빅테크·핀테크에 유리하게 설계되는 걸 우려했다. 빅테크·핀테크가 받는 중개수수료보다 은행의 대출 중도상환수수료가 더 문제였다. 문제의 본질은 대환대출의 장애가 될 수수료부터 낮춰야 하는 게 핵심이다.

중도상환수수료를 부과하지 않는 카드사들은 대환이 수시로 이뤄지면 빅테크에 내는 수수료가 예상보다 클 것을 우려했다. 저축은행은 고금리 대출을 취급하기에 대환대출 플랫폼이 출시되면 고객들이 금리가 저렴한 제1금융권으로 이탈할 위험을 우려했다.

온라인 대출 플랫폼의 경우 운영자가 중개 수수료 높은 상품을 먼저 배열하는 등 소비자의 이익 침해 가능성이 존재한다. 핀테크 같은 온라인 대출 모집법인에게 이를 막기 위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다음 플랫폼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일반 금융회사에 대해서도 이해 상충 방지를 의무화한다.

온라인 대환대출 이동시스템. 자료=금융위원회
온라인 대환대출 이동시스템. 자료=금융위원회
소비자의 선택과 대환대출 경쟁. 자료=금융위원회
소비자의 선택과 대환대출 경쟁. 자료=금융위원회

자율 협약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가 금융회사를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게 얼마나 유효성 있게 실행될지가 관건이다. 금융업권‧금융상품별 수수료율을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해 금융소비자가 정확히 인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유의미한 공시 결과를 위해 플랫폼 중개 건수가 일정 기간 누적된 이후 공시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금융소비자가 플랫폼에서 중도상환수수료와 상환 가능 여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금융소비자가 플랫폼에서 기존 대출의 원리금 같은 정보만 확인할 수 있으나, 금융권의 정보 제공을 통해 중도상환수수료와 상환 가능 여부까지 미리 파악한다면 어려운 금융 여건 상황에서 단비가 되지 않을까.

특히 대출금의 규모가 크고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주택담보대출의 간편한 대출 이동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대출 금리 경쟁을 지속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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