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지난해 3월 이후 연속된 금리 인상에도 미국 고용시장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미국 일자리가 약 34만개 늘어났다. 고강도 금리 인상에도 일자리 증가 폭은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돌았다. 노동자 임금 상승 속도는 느려지며 통화 긴축 정책을 두고 고민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상반된 신호를 보냈다.

전반적으로 미국 경제의 경기침체 가능성이 낮아지는 느낌이다. 업종별로는 전문사무서비스업(6만4000개), 정부 공공직(5만6000개), 보건의료업(5만2000개), 레저·접객업(4만8000개) 순으로 고용이 큰 폭 증가했다.

실업률은 3.7%로 54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던 4월의 3.4%에서 0.3%포인트 올랐다. 시간당 임금은 전월보다 0.3%, 전년 동월 대비 4.3% 각각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심히 관찰할 사항이 있다. 근로자와 구직자 및 구인자간 힘의 균형이 점점 상실되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 드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도 미국 경제 전반적으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협상력을 쥔 느낌이 상당했다. 상황은 반전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전례 없이 근로자들에게 옮아간 협상의 레버리지(지렛대)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협상력이나 레버리지를 수량화하기는 무척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용주와 근로자간에 권력이 이동하는 정도를 포착하는 유용한 지표가 개발됐다. 노동경제학자 애런 소저너(Aaron Sojourner)가 명명한 ‘노동 레버리지 비율(Labor Leverage Ratio)’이다.

이는 특정 기간 동안 해고된 직원 수 대비 직장을 자진해서 그만둔 직원 수를 비교해 계산한다. 노동조합이 교섭할 때 숨겨둔 카드가 많아야 임금 인상이나 근로조건을 향상 시킬 수 있듯이 이 비율이 높은 것은 그 만큼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의 협상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런 소저너는 노동 분야 전문가로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그동안 시장은 해고되는 사람들과 그만두는 사람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바라봤다. 하지만 근로자가 일을 자진해서 그만두거나 고용주에 의해 해고되는 상황은 다르다. 특히 근로자와 고용주 중 누구에게 더 나은 선택권이 있는 지는 시장을 면밀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더 많은 노동자기 해고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그만두면 노동 레버리지 비율이 올라간다. 이는 노동자들이 우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들의 직장에서 더 높은 임금이나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두는 것보다 해고가 더 많을 때 노동 레버리지 비율은 낮아진다. 이는 고용주들이 더 많은 힘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주가 임금을 동일하게 유지하거나 근로자들에게 더 엄격해질 수 있다.

노동경제학자 애런 소저너. 출처: 애런 소저너 트위터
노동경제학자 애런 소저너. 출처: 애런 소저너 트위터

한마디로 이 비율은 직원들이 협상카드를 쥐고 더 나은 직업으로 쉽게 바꿀 수 있을 때 높아진다. 반대로 실업률이 높고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대체할 수 있을 때는 낮아진다. 올해 3월 이 비율이 2.1이었다. 해고된 근로자에 비해 3월에 직장을 그만둔 근로자가 2.1배란 의미다.

3월의 2.1이란 숫자는 팬데믹 이전의 수치와 상당히 비슷하다. 지난해 4월 이 비율은 사상 최고치인 3.3이었다. 당시 일하려는 사람들은 많은 경쟁적인 제안을 받았다. 고용주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어느 바리스타는 더 많은 급여나 더 나은 시간을 위해 일하던 커피숍을 그만두고 같은 마을의 다른 카페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출처: 애런 소저너 트위터
출처: 애런 소저너 트위터
출처: 애런 소저너 트위터
출처: 애런 소저너 트위터

미국 노동통계국(the Bureau of Labor Statistics)의 최신 자료를 보자. 이 지표에 의해 측정된 미국 근로자의 협상력은 지난 4월 말 정점을 찍은 1년 전보다 28% 감소했다. 

산업에 따라 이 지표의 수치는 들쭉날쭉하다. 정보통신분야(기술과 미디어분야 등) 근로자에게는 숫자가 가히 충격적이다. 그들은 협상력(레버리지)의 68%를 상실했다. 금융과 보험 분야 근로자도 58%를 잃었다. 대조적으로 예술,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와 레크리에이션 분야 종사자는 협상력이 25% 증가했다.

보건의료분야의 예를 보자. 노동 레버리지 비율은 2021년 말과 2022년 초 최고조에 달했다. 이때는 인력 부족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문제였다. 기업들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직원들의 이직률과 퇴사에 한숨만 쉬는 상황이었다.

높은 이직률로 인사담당자와 기업 수장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근로자에 대한  교육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환자진료가 지연되고 생산과 납기 일정 연장, 품질 관리 문제, 고객 불만과 매출 손실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항공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메모리얼데이 기간 연휴에 조종사와 승무원 부족으로 약 1000편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여행대신 집에 머무르는 사람들에게도 불편은 존재했다. 전국 공공 수영장을 찾는 이들은 구조원 부족으로 개장을 연기하거나 시간을 단축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기업들은 좋은 급여와 혜택을 경쟁적으로 제공했고 근무환경도 개선했다. 더 나은 교육과정과 성과보상체계를 부여함으로써 관련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메모리얼데이 항공편 결항률은 1%를 밑돌았다.

인재를 채용하고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인력 부족은 광범위한 이슈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고용주의 노동 수요가 감소하고 노동 공급은 개선됐다. 집리크루터(ZipRecruiter)의 구인공고당 신청 건수는 한 해 동안 40% 이상 증가했다. 집리크루터 구직자 신뢰 지수(The ZipRecruiter Job Seeker Confidence Index)가 1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구직자들은 전반적으로 더 비관적 성향을 나타냈다. 구직자들은 현재의 노동시장 여건, 중기경제 전망, 자신들의 재무상황, 노동시장 환경변화에 따른 대비에 있어 크게 우려한다. 물론 과거 기준으로 볼 때 근로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통계국의 소비자 기대 조사를 살펴보자. 미국인들이 일을 할 경우 받아들일 수 있는 평균 최저 임금 수준은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미국이 경기침체를 피하고, 물가상승률이 계속 둔화되며,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리기보다 그대로 유지한다면 노동자의 협상력은 다시 견고해 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5월 고용통계에 대해 시장의 시각은 어떨까.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기준금리 선물시장의 투자자들이 보는 6월 동결 확률은 70% 안팎으로 고용지표 발표 전과 큰 차이가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래 1300만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었다며 자축했다. 그는 이 숫자가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의 재임 4년간 만든 것보다 많다고 자평했다. 팬데믹 때 잃어버린 일자리를 생각할 때 그의 말은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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