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인구는 현재 약 30억 명 이상이다.

페이스북은 그중 절반인 15억 명의 사람들을 웹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촘촘히 연결해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가총액이 약 3000억 달러에 육박하며 수많은 혁신 기술을 자체 개발해 이를 과감한 인수·합볍(M&A)으로 보강하면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 시작은 하버드대 기숙사의 조그마한 방구석이었다.

마크 저커버그라는 이름을 지닌 19세 청년의 다소 무모한 공상에서 시작됐다.

2004년 2월 저커버그는 학교 기숙사에서 여학생의 사진을 올리고 외모를 평가하는 '페이스매시닷컴'이란 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이트 주소를 몇몇 친구에게 e메일로 보내고 저커버그는 강의실로 갔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기숙사로 돌아온 저커버그는 자신의 사이트가 접속 폭주로 먹통이 돼버린 걸 확인했다.

그는 이 사이트를 '페이스북'이라고 이름 짓고 하버드대를 넘어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대인 프린스턴대·예일대·브라운대·컬럼비아대·펜실베이니아대·코넬대 등은 물론이고 매사추세츠공과대(MIT)·뉴욕대까지 그 영역을 확대했다.

곧이어 서부의 명문 대학인 스탠펀드대·버클리대가 페이스북의 인적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고등학교까지 확장됐다.

페이스북은 일약 두 달만에 3만 명이 가입했고 불과 6개월이 지난 후 2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하는 사이트가 됐다.

하버드대생에서 기업의 창업자로 역할이 바뀐 저커버그는 본격적으로 페이스북을 키우기 위한 전력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가 페이스북에 호기심을 부치기는 소통의 공간을 세밀하게 만들자 그해 11월 페이스북을 회원 수 100만 명을 돌파한다.

2005년 페이스북은 포토 서비스를 선보이며 공식적인 기업으로 출범한다.

다음 해 페이스북은 e메일 계정만으로도 가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 다시 한번 도약한다.

그리고 2008년 드디어 회원 수가 1억 명을 돌파, 저커버그는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뽑힌다.

2009년 드디어 페이스북은 마이스페이스를 추월하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이트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한다.

2011년 회원 수는 8억 명을 넘겼고 2012년 5월 17일 페이스북은 뉴욕증권거래소에 화려하고 등장한다.

당시 페이스북이 확보한 자본은 무려 160억 달러. 미국 역사상 기업공개 순위에서 제너럴모터스(GM)와 비자에 이어 3위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해 9월 드디어 페이스북은 회원 수 10억 명을 넘어섰고 현재는 약 15억 명에 이르렀다.


[서울와이어 김지원기자 jiwon@seoulwi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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