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지난달 24일 정부는 노인연령 기준을 단계적으로 65세에서 70세로 높이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인복지법의 노인연령은 만 65세며 대부분 노인 복지 혜택도 이를 기준으로 적용되지만 오는 2025년쯤으로 예상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단계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사안이라 논의는 불가피하다 할 수 있다. 쉽게 설명해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데 노인연령 기준을 그대로 두면 생산가능 인구는 줄고, 부양 대상 노인 비율은 높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인 복지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을 중, 장년층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그 재정을 줄이지 않으면 중, 장년층이 세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질 수 밖에 없고, 또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년까지 눈치 보지 않고 현직에 머물렀다가 명예로운 퇴직을 하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대로라면 노인연령 향상의 당위성은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를 풀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노인 연령을 향상하면 가장 억울한 세대는 1957년 베이비부머 세대이다. 국민 연금도 1957년생은 만 62세로 늦춰 힘들게 하더니 노인 연령까지 70세로 늦추면 결국 죽을 때까지 일만 해야 하는 억지스런 현상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단계적인 조정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찾아내기란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인생은 80부터이고, 골~골 이든, 쌩~쌩 이든 『100세 시대』라고 떠들면서 평균 기대수명을 82.6세로 늘려놨으면 현실에 맞게 퇴직 연령도 향상되어야 하고, 적어도 명예롭고 당당한 정년 퇴직은 보장해 줘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줌마 머리로도 뭔가 앞 뒤가 맞지 않고, 순서도 엉망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등이 휘게 자식 뒷바라지하고 부모 부양했는데 어느 순간 사회에서 퇴출 당하면서 육신은 멀쩡하나 일자리가 없어 몸보다 정신이 먼저 노인이 되어버리고 청년 일자리도 부족한 이 나라에서 노인 일자리를 달라고 소리 높여 외칠 수도 없는 지독히 열심히 산 자의 안타까운 상황이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올해 작년 대비 10만개 늘렸다는 노인일자리 소식에 잠시 희망적이었지만 막상 실체를 보니 실망감이 너무 컸다. 지난번에 ‘아! 드디어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노인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고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구나 …’ 하는 마음에 왠지 모를 고마움과 기특함으로 신나게 기사를 썼었는데 주변 어르신들의 현실을 보니 너무너무 화가 날 정도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0만개 일자리 확대? 좋다! 노인 공공형 일자리 예산 1686억 증액? 그것도 다 좋다!

확대 했다는 정부지원 일자리는 낮은 수당을 지불하는 공익 활동이 대부분인 용돈벌이가 대부분이라 만성적 저임금으로 인한 노인 빈곤율은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선발기준도 아무런 조사 없이 탄력적이며 집행처마다 다르고 분명하지 않아 고용불안이 계속되고 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피와 땀이 어린 세금을 집행하기 전에, 이 나라의 녹을 잡수시는 분들이 세운 기준이 정확한 조사를 거쳐 정말 일자리가 필요한 생계형 노인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주민등록상 혼자라면 거주지가 고래등 같은 저택일지라도 “독거 노인”이 되어 벌이가 빠듯한 아들 내외와 손바닥 만한 집에서 옹기 종기 같이 사는 노인들은 등본1장으로 대신한 1차 서류 전형에서 낙오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너무나 아름답게도 경제적 빈곤보다는 정신적 외로움이 취약 계층의 기준이 되나 보다. 이런 경우 말고도 본인 재산은 다 자식 명의로, 지인 명의로 돌려 놓고 매월 월세를 꼬박꼬박 받으면서도 저소득층 대상이 되어 온갖 지자체의 혜택을 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나라의 맹점이 노인의 얕은 꾀로 이용당하는 것을 보면 그 어르신이 너무 얄밉다.)
노인 연령 향상보다 일자리가 먼저다. 일자리도 이렇듯 줏대 없이 퍼주는 것도 아니면서 인심은 다 잃고 있는 상황인데 무엇이 먼저인지, 어디가 목적지인지는 알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근로도 아니고 복지도 아닌 이런 정부 지원 대책도 그렇지만 노인 일자리 중 100만원이 넘는 소득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전혀 늘어나지 않았고 철밥통처럼 혜택자의 변동도 없다는 얘기다. 

홍익인간 정신의 후예들이라 해도 널리 인간을 다 이롭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을 세우기 전에 동네 통, 반장의 발품 도움이라도 받고, 딱딱한 책상 머리에 표정 없이 앉아 계시지만 말고 실사를 진행하고 지역 수준과 특성에 맞는 형평성 있는 기준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급마저 올라간 오늘날 노인에게 열정페이를 바랄 수는 없지 않을까? 

누구나 늙는다. 너도 나도 쉽게 노인이 될 수는 있어도 이 나라에서 대우받는 노인으로 살기는 아직까지는 어려울 것 같아 안타깝다.

 

home@seoulwire.com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