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미국 재계 주인공 (1)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⑥
“자식에게 경영권 승계 안하겠다”선언 지배구조 개선
삼성은 창립 때부터 전문경영인들이 전면 나서 성장
연매출 315조·영업익 19.5조 거대기업 오너 체제로 안돼
‘중간자’ 역할 자임한 이재용 부회장에게 놓인 과제는
자신의 임무를 이어갈 수 있는 전문경영인 육성 될 듯

지난 2012년 8월 이재용(오른쪽부터) 삼성전자 사장(당시)과 강호문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이건희 회장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2012년 8월 이재용(오른쪽부터) 삼성전자 사장(당시)과 강호문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이건희 회장을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와이어 채명석 기자]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입니다.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주저해왔습니다. 경영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은 데다가 제 자신이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제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6일 오후 서울 삼성서초타운에서 가진 대국민사과 자리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자신을 끝으로 더 이상 삼성은 ‘오너’가 중심이 되는 경영체제는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확고히 했다.

이로써 삼성의 오너경영체제는 3대로 마무리 한다. 1968년생으로 지난 23일 만 52세 생일을 맞이한 이 부회장의 나이로 봤을 때 향후 그가 삼성에서 활약할 시기는 약 20년 정도로 예상된다.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이 있으나 이 사장은 자심이 맡은 부문에 집중하면서 이 부회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 분명하다. 한때 계열분리의 가능성도 점쳐졌으나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사실, 이 부회장의 선언은 상징적인 의미만 있을 뿐 이미 삼성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된 기업이라는 점은 다수의 언론들을 통해 수도 없이 강조되어 왔다.

호암 이병철 창업회장이 회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전문경영인이 경영 실무를 도맡았고, 이건희 선대회장 때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경영 권한을 더 많이 내려줬다.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의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은 800조원을 넘었다. 매출은 315조원, 영업이익은 19조5000억원에 달한다. 연간 평균 근무일수(299일)을 적용하면, 매일 1조원이 넘는 규모의 물건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약 653억원을 이익으로 벌어들인다. 이렇게 거대 조직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이 부회장이 혼자서 관리할 수 없다. 전문 경영인 중심의 시스템 경영이 아니었다면 삼성은 이렇게 큰 조직이 될 수도 없었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는 그동안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ICT 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은 경쟁자들을 추격, 경쟁하거나 따라잡은 기업이다. 미국의 애플과 인텔,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제네럴일렉트로닉스(GE), 일본의 소니, 도시바, 파나소닉, 샤프, 독일의 지멘스, 중국의 화웨이, 샤오미 등. 문득 떠올리는 기업만 해도 너무나 쟁쟁할 뿐만 아니라 나열하기 벅찰 만큼 많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삼성전자는 가전과 TV, 반도체·디스플레이·소자, 휴대전화, 통신장비, 의료기기, 광학장비, 콘텐츠 서비스 등 ICT 전 분야를 영위하면서 해당 사업 모두 글로벌 1위, 최소한 10위권 이내의 시장 점유율을 갖춘 유일한 기업이 됐다. 현재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들 중 대부분은 1969년 설립 당시 이미 ‘퍼스트 무버’들이 개발했거나 상용화한 것들이다. 후발주자로 출발한 삼성전자는 이들에게 도전장을 내 좁게는 제품, 넓게는 사업군에 걸쳐 차례대로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1990년대 들어 저명한 경영학자들은 문어발식 사업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한두 개 전문분야에서 특화된 기업들에게 밀려 날 것이라고 경고했고,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위상을 키우고 있다. 어떤 기업들이건 경쟁자들과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하나의 기업이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과 동시다발적으로 맞붙어 승리하고, 시장을 장기간 리드해 나가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경쟁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은 삼성전자의 또 다른 DNA다. 지금도 새로운 경쟁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자동차 전장업체인 미국 하만과 데이코를 인수해 자동차 부품 업체와 빌트인 가전 업체들을 경쟁자군에 포지셔닝시켰다. 인공지능(AI) 등을 포함한 4차 산업혁명 산업 육성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분야는 다르지만 반도체 생산 공정과 매우 유사한 바이오 사업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통해 외연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성과가 모두 오너일가의 몫이 아니다. 삼성 오너 일가에서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혹독한 내부 경쟁을 통해 임원, 사업부문 책임자를 거쳐 최고경영자(CEO) 오른 최고의 능력을 갖춘 전문경영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나가는 소리로, 이 부회장은 가장 삼성 내부를 모르는 사람으로 불린다고 한다. 한참 법원을 오가며 재판을 받던 이 부회장은 쉬는 시간 신문을 보다가 당시 삼성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을 알았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대기업 야구단 구단주는 오너가 주로 맡는다. 오너들이 야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직속으로 관리한다. 선대회장님과 이 부회장 모두 야구장 자주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교체된 사실을 이 부회장은 몰랐다고 한다..

지난 수년 전 삼성전자 반도체 책임자(부사장급)가 자기 전권으로 결제하는 금액 규모가 한 계약당 최대 3000억원이라고 했다. CEO에게도 보고를 안 하는 책임자가 사장이 알아서 전결하는 규모가 이 정도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게 삼성이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만약 모든 계열사 사장들이 이 회장에게 매일 사업 내용을 보고하면, 이 부회장은 결제만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야 한다. 세세한 일까지 이 부회장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며, 이 부회장도 원하지 않는다. 책임자의 전결 금액인 3000억원은 큰 돈이지만 연간 30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에서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회장의 역할은 이러한 전문경영인들의 역량을 발견하고 키워주고,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측면지원하는 것이다. 또한 전문경영인들간 경쟁 때문에 사업부문별간 발생하는 소통 부재와 사업 중복을 관리한다. 삼성 관계자는 “각 사업부 책임자들은 경주마처럼 서로 경쟁하면 앞만 보며 달린다. 자기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고, 다른 부서 사업이 어떻게 되는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모바일 사업부는 애플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데, 반도체 사업부는 반도체를 공급하는 애플과 싸우면 싫어한다. 이걸 조율하고 조정하는 게 이 부회장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애플과 구글, 퀄컴 등 최고의 파트너이자 경쟁사의 CEO들과 만나 사업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중간자’도 이 부회장의 주요 업무들 가운데 하나다. 과거에 그가 최고소통책임자(CCO)라는 타이틀을 단 이유다.

앞으로 이 부회장에게 남은 중요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도 자신이 맡고 있는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을 키워내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 진다면 이 부회장의 ‘뉴 삼성’은 진정한 의미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실현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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