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런던 올림픽 오심 사건으로 통한의 눈물
이듬해 리우 세계선수권에서 상대선수 만나 승리
2018년 국가대표 내려놓은 후 작년 사펜싱클럽 열어

[서울와이어 글렌다박 기자] 올림픽 규정은 선수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매 올림픽 경기 후엔 공정성과 선수 보호를 위해 종목에 따라 새로운 규정이 도입될 때가 있다. 펜싱의 경우, 2013년부터 경기 종료 10초 이하부터는 기존 1초 단위만 표시되던 것이 0.01초 단위까지 표시되는 것으로 경기 규정이 바뀌었다. 그 뒤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최악의 오심’으로 꼽히는 펜싱 신아람 선수의 ‘1초 사건’ 경기 당시 신아람 선수가 피스트(펜싱 시합장)에 주저앉아 오열하며 흘렸던 눈물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공평하고도 더 나은 경기 운영 환경과 기회를 열어준 신아람 선수가 런던 올림픽에 나섰던 순간도 근 10년이 되어간다. 12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펜싱 에페 종목에서 ‘아시안게임 4회, 올림픽 2회 출전’이라는 큰 획을 그은 그녀는 2018년 세계선수권 대회 단체전 은메달 획득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난해, 본인의 이름을 건 ‘신아람 펜싱클럽’을 열며 지도자로서 새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같은해 국가대표로서의 활동상을 인정받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하고 펜싱이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신아람 선수와 만났다.

2020년 신아람 선수는 그간 국가대표로서의 공을 인정 받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하였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2020년 신아람 선수는 그간 국가대표로서의 공을 인정 받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하였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어린 시절부터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던 ‘날다람쥐’

신아람 선수는 어린 시절 몸이 약했지만, 몸놀림은 남자아이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민첩했고, 별명이 ‘날다람쥐’일 정도로 철봉에 올라가 거꾸로 매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운동을 잘하고 좋아했던 그녀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다. 충남 금산여중에 진학했을 당시, 체육 선생님은 핸드볼 수업 때 공을 던지는 그녀를 보며 펜싱을 해볼 것을 권유했다. 펜싱이라는 종목이 생소했기 때문에 바로 펜싱부에 가입하는 것에 주저했다. 그러나 펜싱부의 선수들이 도복 차림으로 칼을 휘두르며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그 매력에 빠졌다.

펜싱은 세부종목으로 팔과 머리를 제외한 상체만 공격할 수 있는 ‘플뢰레’, 마스크와 장갑을 포함한 전신 공격이 가능한 ‘에페’, 팔과 머리를 포함한 상체를 찌르고 베는 공격이 가능한 ‘사브르’가 있다. 이중, 신아람 선수의 주 종목은 ‘에페’다. 처음 펜싱을 시작한 중학교 1학년, 그녀는 세부종목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녀를 지도한 지도자가 에페 전문 코치였기 때문에 에페를 하고 싶었으나 작은 키 때문에 플뢰레로 입문하여 후에 에페로 전환했다. 참고로 신아람 선수의 키는 168cm까지 자랐다. 에페는 장신일 경우 경기 진행이 유리하기에 장신 선수가 매우 많은 종목이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단체전 후보 선수였던 그녀는 금산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이제껏 해왔듯 ‘즐기기’만 해서는 앞으로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하루도 쉬는 날 없이 훈련에 매진했다. 가장 힘들었던 훈련은 ‘뛰는 것’이었다.

“산과 계단 등 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뛰다 보니 펜싱부인지 육상부인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만들어놓은 체력 덕분에 30대까지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된 것 같습니다.”

고교 2학년 때 유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국제대회에 첫 출전을 했다. 그리고 함께 태극마크를 단 선배들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무대엔 내가 서리라’라고 꿈꿨다. 훈련은 꾸준히 해야 하지만 체력이 가장 좋고 회복이 빠른 시기에 힘을 키워놔야 오래도록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신아람 선수의 지론이다.

국가대표 선수 시절 시합 참가 당시 신아람 선수.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국가대표 선수 시절 시합 참가 당시 신아람 선수.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유망주에게 찾아온 슬럼프

펜싱은 블레이드, 가드, 쿠션, 손잡이, 전기연결부품 등으로 구성된 검, 마스크, 도복, 보호대, 금속 재킷, 양말, 펜싱화, 장갑, 가방 등 풀세트를 갖추는 데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신아람 선수는 중·고교 시절 선배들의 장비를 물려받아 썼다. 펜싱 장비를 개인이 구매하는 개념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가격조차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칼은 자주 부러지는 소모품이기에 구매하는 때도 있었지만 흔하지 않았기에 장비 때문에 돈이 많이 쓰진 않았다.

신아람 선수의 어머니 윤지희(57) 씨는 새 장비를 쓸 여력이 되지 않는 신아람 선수를 위해 애틋한 마음으로 틈날 때마다 땀이 많이 흘리는 부분에 곰팡이가 생기는 도복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도복도 수선해주는 등 장비 손질을 해주었고, 경기장과 전지 훈련장에도 자주 찾아와 격려했다. 아버지는 대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 효녀이자 집안의 든든한 가장이기도 한 신아람 선수는 런던 올림픽 당시 인터뷰 때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정도로 어머니를 향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2005년 한국체육대에서 뽑는 단 한 명의 에페 장학생으로 선발된 신아람 선수는 그동안 아쉬웠단 장비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이 이루어지자 성적도 더욱 빠르게 향상되었다. 1학년부터 4학년 기간 중 한 명만 출전이 가능했던 전국체전에 1학년이었던 그녀가 출전했다. 이미 대학교 1학년 때 여느 실업팀의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고 이길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단숨에 유망주로 떠오른 그녀는 2006년 시드니 펜싱 월드컵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하고 같은 해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동메달,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라는 비참함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으로 이어졌다.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2013년 카잔 유니버시아드 선수촌에서. 신아람 선수는 이 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2013년 카잔 유니버시아드 선수촌에서. 신아람 선수는 이 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님이셨던 김창곤 선생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시고 마음을 보듬어 주셨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이고 앞으로 가능성이 더 크니 자신을 믿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저를 못 믿겠다’라고 하니 ‘그럼 나를 믿어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참 힘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버텼지만, 주변에서 용기를 주는 응원이 신아람 선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다가왔다. 슬럼프를 극복한 그녀는 2009년~2011년 사이 선전 유니버시아드 대회 동메달, 광저우 아시안 대회 동메달, 세계선수권 대회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꾸준히 국제대회에서 경력을 쌓으며 세계랭킹 63위에서 16위, 12위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그녀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심재성 코치는 신아람 선수와 국가대표 시절 가장 오래 생활했던 지도자이다.

”코치님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기본적인 스텝부터 바꿔주셨고, 저도 믿고 따라서 펜싱을 세분화하는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훈련을 이어간 신아람 선수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다. 하지만 개인전 준결승에서 독일 하이데만 선수와의 경기에서 희대의 오심 사건을 겪었다.

이후 그녀는 한층 더 성장했다. 신아람 선수에게 오랜 선수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런던 올림픽이 있던 다음 해인 2013년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 경기이다. 이 경기에서 런던 올림픽 4강 오심의 상대 선수였던 하이데만 선수와 재대결을 했고,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이 재구성되듯 또다시 연장전까지 갔으나, 신아람 선수는 통쾌하게 6대 5로 역전하며 첫 국제대회 개인전 우승을 이뤄냈다.

그녀는 한때 동갑내기 친구를 ‘라이벌’이라고 의식한 적이 있었다. 국가대표가 된 이후에는 국제대회에서 수많은 선수를 만나며 ‘라이벌’이라는 존재를 두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누구에게도 질 수 있고, 누구에게도 이길 수 있는 환경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도쿄 올림픽이 이제 3달도 채 남지 않았다. 어딘가에는 슬럼프를 겪고 있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신아람 선수는 그들에게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스스로 긍정적인 메시지를 되뇌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최인정(오른쪽. 2012년 런던 올림픽메달리스트,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선수와 함께.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최인정(오른쪽. 2012년 런던 올림픽메달리스트,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선수와 함께.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신아람 선수는 스스로를 ‘대기만성형’ 선수라고 말한다. 스무 살 나이에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단체전 은메달, 개인전 동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단체전 동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단체전, 개인전 은메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단체전 은메달)까지 4번의 아시안게임 출전, 2012년 런던 올림픽(단체전 은메달),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2번의 올림픽 출전을 비롯해 2013년 카잔 유니버시아드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 2015년 부다페스트 그랑프리 개인전 금메달 등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펜싱 월드컵, 그랑프리 등의 무대를 섭렵하며 12년간 정말 힘들게 국가대표 자리를 유지했다. 매 시즌 그녀는 국가대표 여자선수들의 ‘맏언니’이자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처음으로 홈그라운드에서 국제대회 종합경기를 치렀는데 경기장에서 한국 관중이 우리나라 선수의 승패를 떠나 변함없이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국가대표로서 정말 감동이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2020년 10월, 신아람 선수는 체육의 날을 맞아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2020년 10월, 신아람 선수는 체육의 날을 맞아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에서 시구를 했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지도자’로서의 걸음을 시작하는 위에서

신아람 선수는 2018년 국가대표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현재 세종시체육회와 계약이 끝나지 않아 선수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하는 것이 좋다’는 그녀는 최대한 기량이 허락하는 날까지 선수로서 활약할 예정이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되어 있지 않지만, 전국체전이 치러진다면 출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선수 생활을 병행하면서 신아람 선수는 학업을 이어가거나 학교, 실업팀 등의 전문지도자 등의 진로를 택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7월, 본인의 이름을 딴 ‘신아람 펜싱클럽’을 열었다. 사설 펜싱장을 운영하며 20년의 선수 경력을 살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펜싱을 지도하고 있다.

선수 시절부터 동호인 펜싱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은퇴  지도자가 된다면 엘리트 선수를 지도하는 것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도를 하고 싶었어요.”

남현희 선수, 최병철 선수 등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이 운영하는 펜싱 클럽이 여럿 있지만 ‘신아람 펜싱클럽’만의 특별함과 전문성은 과연 ‘에페’라는 것에 있다. 앞서 설명한 세부종목에서 남현희 펜싱클럽, 최병철 펜싱클럽 등은 본인의 전문 분야인 ‘플뢰레’ 전문클럽이며, ‘신아람 펜싱클럽’은 신아람 선수의 주 종목인 ‘에페’ 전문클럽이다.

신아람 선수는 코로나19가 가장 극심하던 지난여름에 펜싱 클럽을 개업했고 예상치 못한 집합금지가 공표되며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다. 첫 집합금지 기간이 있었을 때는 ‘휴가’를 받은 느낌이었지만, 두 번째 집합금지 기간이 연장되며 불안한 마음도 커졌다. 지금은 체육관 운영에 대한 집합금지의 규제가 완화된 만큼 꼼꼼한 방역과 거리두기 지침을 지키며 운영하고 있다.

신아람 선수는 작년 7월, '신아람 펜싱클럽'을 열고 지도자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신아람 선수는 작년 7월, '신아람 펜싱클럽'을 열고 지도자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사진=신아람 선수 제공

신아람 선수가 세운 지도자로서의 철학이자 지도자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틀을 만들되 틀을 깰 수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아람 펜싱클럽’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펜싱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녀는 유에서 무를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기초를 탄탄히 세우고 다듬어 주는 것을 중시한다.

신아람 선수의 목표는 현재 서울 서초구에 있는 펜싱클럽의 기반을 튼튼히 한 뒤, 다른 지역에 2호점, 3호점 등 분점을 열어 그 안에서 모래 속의 진주 같은 선수들을 만나 올림픽에도 나가고 메달까지 획득할 수 있는 선수를 양성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선수로서, 그리고 그중 12년간 국가대표로서 성실히 달려온 신아람 선수가 앞으로 걸어갈 지도자로서의 길에 행복과 웃음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인터뷰/글: 글렌다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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