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법학자 캐서린 매키넌 제자가 되기 위해 미 로스쿨 유학
티베트인 무국적자 난민이자 MIT 출신 박사와 결혼
미국 변호사로 다양한 여성단체 지원하며 사회인식 키워
코로나로 인해 귀국, 여성운동하며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 집필 계획

[서울와이어 글렌다박 기자] 김나영 변호사는 예기치 않았던 사건으로 인해 휴학한 후, 복학해 문화인류학을 복수로 전공하며 여러 교수님과 관련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다. 학문이 재미나고 활동도 보람찼기에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인류학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세계여성인권운동사와 반성폭력이론에 대해 공부하며 페미니스트 법학자 캐서린 매키넌 교수에 대해 접하게 된 후, 김나영 변호사는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 사상·실천의 정의 세워준 매키넌 교수와 미국 유학

매키넌 교수는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경험하는 성폭력이 시민법에 위배된 성차별이라는 권리를 고안하고 전시성폭력을 국제법상 제노사이드로 인정받게 한 법률가이며 포르노그래피와 상업적 성착취의 피해자들을 위한 법적 옹호 활동을 수십 년간 이어온 여성 운동가이기도 하다. 매키넌 교수의 저작과 활동 이력을 읽은 ‘학생’ 김나영 변호사는 여성폭력 피해자, 특히 아동기에 성폭력을 경험한 본인과 같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정의를 찾아 나서는 ‘사상’이자 ‘실천’이라고 생각이 들었기에 매키넌 교수 밑에서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차올랐다.

“꼭 매키넌 교수에게 배우고 싶었습니다. 결국, 미시간대학에서 만나 수업도 듣고, 개인 조교가 되어 연구도 도왔으며 졸업 후에도 사제관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의 학업을 계기로 온 가족이 미국 버지니아에서 1년간 거주한 시절이 있었다. 김나영 변호사는 그 당시 익힌 영어와 방대한 독서량 덕에 미국 로스쿨 입시를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어 장벽뿐 아니라 문화와 정서의 장벽이 두꺼운 터라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힘들어 미국에 정착한 첫 1년 동안 굉장히 고생을 했다.

“미국 미시간 앤아버시에 있는 로스쿨 재학 당시,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자 지원 센터와 무료법률사무소에서 상담업무와 사무를 돕는 대민업무에 빠르게 투입된 것이 언어 장벽을 극복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유학생이 학업 중 캠퍼스 밖에서 취업하여 일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캠퍼스 내부, 혹은 미리 이민국의 승인을 받은 일만 할 수 있다. 김나영 변호사는 엄청난 로스쿨 학비와 유학 중 체류비를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일했다. 평일 야간 그리고 주말에 캠퍼스 내 법학전문도서관 사서로 일했고, 캐서린 매키넌 교수의 연구조교로 일도 하고, 미시간대의 외국인 학생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는 강사직도 했다. 공익인권과 여성 관련 장학금도 일부 수혜 받기도 했으며 이는 비영리법률단체 쪽으로 진로를 고려하던 그녀에게 토양이 되주었다.

“미국 유학 경험을 통해 저는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세상이 정말 넓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졸업 후 시카고 지역의 아시아계 여성들을 돕는 단체에서 활동했고 지구 각지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세계관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사법연수원 초청으로 매키넌 교수가 방한했을 당시, 가족과 휴가차 한국에 있던 김나영 변호사는 일주일간 매키넌 교수를 도와 여성단체 방문과 언론 인터뷰, 대중강연 등의 일정을 추친하였다. (사진제공=김나영)
2019년, 사법연수원 초청으로 매키넌 교수가 방한했을 당시, 가족과 휴가차 한국에 있던 김나영 변호사는 일주일간 매키넌 교수를 도와 여성단체 방문과 언론 인터뷰, 대중강연 등의 일정을 추친하였다. (사진제공=김나영)

◆ 활동의 뒷받침이 되어주는 변호사 부모님과 무국적자 남편

김나영 변호사의 부모님은 김박 법률사무소를 함께 설립한 김관기 변호사(서울대 81학번, 사법연수원 20기)와 박찬희 변호사(서울대 81학번, 사법연수원 21기)다. 서울대학교 동기로 산악부 동아리에서 만난 부모님은 1988년 결혼하여 신림동에서 부부가 함께 고시 공부를 하였고, 김관기 변호사가 1년 먼저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판사였던 김관기 변호사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로 국가 부도가 난 이후 매우 많은 사람이 경제적 고난을 겪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보며 미국으로 떠나 대학에서 파산법을 공부하여 법학전문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지난 20년간 파산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인 박찬희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하는 여학생이 10명도 안 되던 시절 법조인 진로를 지원해 수년간의 도전 끝에 김나영 변호사가 배 속에 있던 1990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나영 변호사도 첫 아이를 임신, 만삭에 가까운 상태로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시험을 치렀다.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여성 변호사 수가 적은 시대에 박찬희 변호사 역시 딸과 마찬가지로 가정폭력 피해를 본 여성들에게 법률상담을 제공하는 활동을 하였다. 오랫동안 사용한 이메일 아이디가 ‘womanlaws’였으니 페미니즘 성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유학 시절 부모님이 제 학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지 않았다면 결코 공부를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페미니즘 법학을 공부하고 여성운동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지지기반이 어머니이시며 아버지도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이 제 활동을 지지해주십니다.”

반면, 김나영 변호사의 남편인 랍가 톈진(Tenzin Rabga) 박사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의 티베트 난민 공동체에서 태어난 티베트인 무국적자이다. 남편의 조부모 세대가 정치적, 종교적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인도에 정착한 난민이었고 이후 대대로 인도에 살았지만, 남편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국적을 가지지 못한 채 지냈다. 어린 시절부터 매우 명석했던 그는 ‘물리학자’라는 꿈을 가지고 공부에 매진한 결과 메사추세추 공과대학교(MIT)에서 장학생으로 진학할 기회를 얻어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갔다.

MIT에서 학위를 마친 후 미시간주립대학(MSU)에서 박사과정에서 수학하던 중, 미시간대학(U of M)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김나영 변호사를 만나게 되었다. 당시 국제난민법을 수강 중이던 김나영 변호사에겐 ‘무국적자’라는 개념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학부 시절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며 이주민과 다문화주의에 대해 익히 배웠던지라 자연스럽게 친밀해졌다.

결혼 후, 두 아이의 부모가 된 그들은 일리노이주 시카고 지역으로 옮겨 정착을 준비하고 있던 차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이 창궐하며 현실적 어려움에 처해 유학 7년 만에 귀국했다. 랍가 박사는 그녀와 결혼한 지 5년이 되었고 자녀가 있었기 때문에 결혼이민비자를 받아 네 식구가 무사히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현재 랍가 박사는 서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Institute for Basic Science) 강상관계 물질 기능성 계면 연구단(Center for Correlated Electron System)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2018년 가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페미니즘 컨퍼런스에서. 당시 안희정 사건을 언급하며 한국의 미투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사진제공=김나영)
2018년 가을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페미니즘 컨퍼런스에서. 당시 안희정 사건을 언급하며 한국의 미투운동에 대해 발표했다. (사진제공=김나영)

◆ 차별과 수직적 위계질서 당연시하는 한국 문화 없어져야

김나영 변호사는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경험한 페미니즘의 차이에 대해 평등과 차별, 불평등, 그리고 수직적 위계질서에 대한 ‘감수성’을 꼽았다. 한국이 유교문화권이라는 점, 일상 속 군사주의가 심하고 입시와 취업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사회라는 점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미국 사회를 경험하며 미국도 살인적인 인종차별주의와 온갖 폭력이 횡행하는 나라이지만,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성과가 남아 있기에 ‘평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기본적인 교양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알면서도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경우가 많으니 절대평가로 치자면 미국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만,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차별과 수직적 위계질서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지난 5년여간의 기간 동안 메갈리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82년생 김지영', #미투운동, 4B(비혼, 비 연애, 비출산, 비섹스) 운동,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N번방 성착취 사건 등을 거치며 한국 페미니즘은 세계여성인권운동의 선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 대중 여성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공감을 얻었다. 미국과 여타 서구 국가 여성 중에도 페미니스트가 많고 저마다의 자리에서 여성인권운동을 해나가고 있지만 김나영 변호사는 한국여성들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대규모 여성 의식 고양(consciousness raising) 과정을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1970년대에 크게 거친 이후, 2010년대 와서 #미투운동을 통해 또 한 번 짧게 거치면서도 동시대 한국의 대중 여성운동만큼 결집력과 무한한 분노, 전투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새삼 느낀다.

◆ SNS 통한 활발한 페미니즘과 여성인권 활동

앞에서 언급한대로 그녀는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정신적 충격을 받고 도서관을 헤매던 중 페미니즘 서적을 찾아 읽으며 우울증을 벗어났다.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보급되기 전이기에 요즘처럼 SNS를 통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그녀는 유학 시절인 2015년경 인터넷과 SNS의 힘을 빌려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퍼트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내었다.

SNS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포스팅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찾아 그들의 글을 읽고 ‘친구요청’을 보내어 교류를 시작했다. 김나영 변호사는 문화인류학과 학부시절 조한혜정 교수의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기획'이라는 강의를 들었던 것에 기반해 같은 신념을 지닌 인원이 모여 대중운동에 관한 전략을 세우고 합심하여 ‘페미디아’를 만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적고 다른 여성과 고립된 채로 죽음만을 생각하던 과거의 저와 같은 여성을 돕기 위해 시작한 것이 ‘페미디아’였습니다.”

이후 한국사회의 ‘여성해방’이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 SNS 유료 광고 홍보 기능을 사용하면 한국에 거주 중인 만 13세부터 65세 여성 이용자의 뉴스피드에 광고를 띄우고 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대중의 집단의식 속에 심을 수 있는 ‘여성해방전선’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야만 선전문을 뿌릴 수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21세기에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SNS를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화기획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신기술 발달이 초래한 양날의 검이다. 장점이 많은 만큼 위험요소도 크다는 의미이다. 초국가적(트랜스내셔널) 여성운동의 방법론을 고민하는 이들에겐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초록 유아차 좌측에 앉아있는 김나영 변호사. 대학원 졸업 후 이주한 시카고의 한인여성단체 KANWIN 활동을 통해 열정적이고 진보적인 여성들을 많이 만나 뜻깊은 기회였던 2019년 여름 미국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 당시. (사진제공=김나영)
초록 유아차 좌측에 앉아있는 김나영 변호사. 대학원 졸업 후 이주한 시카고의 한인여성단체 KANWIN 활동을 통해 열정적이고 진보적인 여성들을 많이 만나 뜻깊은 기회였던 2019년 여름 미국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 당시. (사진제공=김나영)

◆ 성평등, 여성인권 실현 장애물은 불평등한 ‘젠더 이데올로기’와 ‘경제체제’

“성평등과 여성인권 실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여성을 남성과 평등한 인간이 아닌 성적 노리개로 인식하는 불평등한 젠더 이데올로기와 실제로 남성의 성적 노리개 취급을 받는 상황으로 여성들을 몰아넣는 불평등한 경제체제입니다.”

김나영 변호사가 주장하는 성폭력, 성착취산업, 포르노그래피, 직장 내 성추행, 여성의 빈곤, 성별임금격차, 리얼돌, 스토킹, 가정폭력, 여성살해 등 여성이 경험하는 성차별적 억압의 핵심이 성폭력과 성착취를 통한 여성의 ‘성노리개화(비인간화)’이다.

“국내에서는 #미투운동의 파도를 이끈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소위 ‘생매장’ 시키고 오히려 가해자를 감싸려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고, 지금도 큽니다”

언론에 공개적으로 나와 가해자를 지목한 미투운동가 중 고학력자이면서도 인정받는 직업을 가졌으며 말도 당당하고 조리 있게 잘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라 할 수 있는 여성들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여성단체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해자들의 성폭력을 폭로했지만 되려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쏟아지니 그만한 지지기반도 가지지 못한 일반 여성들은 더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진 탓에 #미투운동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특히,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보궐선거 이후 소위 ‘이대남’ 담론이 대두되며 한국의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을 겨냥한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김나영 변호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때를 틈타 여성혐오, 안티페미니즘 콘텐츠를 만들어 돈과 인기, 정치적 지지층을 확보하려는 남성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시점에 페미니즘이 어떤 개입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투운동과 한국 여성인권, 나아가 세계 여성인권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 페미니즘이란 ‘인간은 모두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사상과 실천

2018년 미국 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 취득 후, 캐나다 아시아계 여성단체 ‘Asian Women for Equality’ 자원 활동을 펼치고 2017년부터 올해까지 미국 트랜스내셔널 유색인여성단체 ‘Af3irm’ 시카고 지부장으로 활동한 김나영 변호사는 올해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국제반성취연구 단체 ‘Prostitution Research & Education’에서 연구이사직을 맡아 연구와 교육, 피해자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국내에서는 직접 법정에 서거나 소송 대리를 할 수 없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법을 전공한 배경과 우리말과 영어 모두 능통한 장점을 살려 법률번역을 제공하고 있으며 최근엔 브런치에 글쓰기도 시작해 매주 새 쪽글을 올린다.

그녀는 현재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삿짐도 다 풀지 못했지만, 차차 정리되고 나면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강연과 여성운동, 특별히 아동, 청소년을 비롯해 아이를 양육 중인 어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고 기획 중이다. 또한, 어린이가 재미있게 읽고 영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동화책을 쓸 계획이다.

‘여성도 인간이며 인간은 모두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사상과 실천이 이상적인 페미니즘의 정의라 말하는 김나영 변호사는 그녀가 꿈꾸는 ‘서로를 해치거나, 지배, 착취하지 않고 서로의 안녕을 도모하며 수명대로 살다가 자연사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달린다.

인터뷰/글 글렌다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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