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음]

 

[서울와이어] 19세기 중엽 음악계는 미래의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한쪽은 독일음악을 중심으로 한 진보그룹으로 ‘신독일악파’ 이었고, 다른 한쪽은 빈 고전주의의 양식을 계승하는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베토벤 교향곡을 시작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갈라졌다.

하나는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 중 제목이 없는 고전적인 전통을 순수 음악만으로 생각하는 ‘절대교향곡’과 다른 하나는 ‘표제교향곡’이다. 베토벤은 3번(영웅), 5번(운명), 6번(전원), 9번(합창)처럼 제목이 있는 교향곡을 시발점으로 ‘신독일악파’는 ‘표제교향곡’을 완성한다. 물론 제목의 유무에 따라 ‘표제교향곡’이라고 칭하는 것은 아니다. ‘표제교향곡’은 음악외적 아이디어인 문학, 회화, 자신의 경험 등을 접목하고 표제가 포함되어 있다. ‘신독일악파’는 베를리오즈의 표제와 부제가 있는 《환상교향곡》과 리스트가 창작한 ‘교향시’, 바그너의‘음악극’을 내세웠다.

‘신독일악파’의 음악으로 교향곡은 잠시 주춤하였으나 브람스와 브루크너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세기말에는 말러에 의해 다시 한번 융성된다. 

 

브람스는 오페라를 제외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그는 네 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첫 교향곡을 구상하여 발표까지는 21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1855년 스케치를 시작한 후 1862년 1악장을 완성했고 그 후 15년 후 1876년 43살에 《교향곡 1번 Op.68》을 최종 발표했다. 이후 이듬해 1887년에 《교향곡 2번 OP.73》을, 1883년에는 《교향곡 3번 Op.90》을 완성하고 1885년에 《교향곡 4번 Op.98》을 작곡했다.

 

사실 브람스는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베토벤이 출발점인 만큼 교향곡을 섣불리 내놓을  수 없었다. 게다가 브람스가 1860년대 빈에서 정착하면서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베토벤 계승자’로 인식되면서 브람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브람스는 《교향곡 1번》을 발표한 후 ‘베토벤의 아류’라는 ‘신독일악파’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 이유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의 4악장》이 베토벤 《교향곡 9번의 ‘환희의 주제’》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의 4악장》)

 

하지만 동시에 ‘보수주의자’는 ‘베토벤의 교향곡 10번으로 베토벤의 후계자’임를 인정하기도 했다. 브람스는 베토벤의 교향곡의 유산을 계승, 발전시킨 음악가임은 분명하다. 그의 교향곡 네 곡은 전통적인 악장인 4악장으로 구성되었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원작으로 만든 흑백 영화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1번의 4악장》과 《교향곡 3번의 3악장》이 나온다. 실내 장식가 폴라(잉그리드 버그만 분)과 실내장식을 의뢰한 고객의 아들 시몽(안소니 파킨스 분)의 우연한 만남과 데이트가 흑백 영화지만 재미있게 느껴진다. 15살 차이가 마치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를 연상케 하기 때문에 브람스의 교향곡이 영화에 삽입된 듯하다. 

《교향곡 3번의 3악장》은 브람스를 몰라도 이 곡은 알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로 유명한 작품이다.

 

(브람스 《교향곡 3번의 3악장》)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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