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올 한해 주식시장은 비극으로 끝났다. 코인시장 역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 와중에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에 대한 찬반 논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스테이블 코인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페이스북의 힘이 컸다.

스테이블 코인은 코인 상장(ICO; Initial Coin Offering)을 통해 투자금을 담보로 한 일반적인 코인과 다르다. 특정 현물과의 연계로 그 가치를 담보한다. 특정 현물은 달러화·엔화·유로화 같은 통화일 수도, 오일이나 부동산 같은 현물일 수도 있다.

◆스테이블 코인에 쏟아지는 비난을 바라보며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상자산을 해킹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에는 테라·루나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가상자산시장에 대한 신뢰도를 땅바닥에 떨어지게 만든 방아쇠 역할을 했다.

테라·루나 사태가 심각해진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가 달러나 비트코인 같은 실체가 아닌 루나라는 일반 코인으로 설계됐다는 데 있다. 테라는 실물 담보 대신 알고리즘을 이용해 안전성을 높이는 방식을 채택해 문제가 됐다.

테라가 손해나면 루나로 메우고, 루나가 손해나면 테라로 메우는 형태는 카드 돌려막기나 다름없다. 루나는 스테이블 코인이 아닌 일반 코인이라고 하는 게 맞다. 사안은 다르지만 코인시장은 세계 3위 코인 거래소 FTX 사태로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스테이블 코인은 대중이 신뢰를 부여하는 경우 지급수단의 역할을 하고 현물과 연계된다면 마일리지 같은 속성을 지닌다. 주식이 기업 가치에 의해 담보되듯, 스테이블 코인을 담보할 신뢰의 대상이 있다면 존재가치를 부정해선 안 된다.

메타(옛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주커버그는 위안화를 제외한 SDR(IMF 특별인출권)이나 달러를 디엠과 연계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 했다.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중동 국가가 자신들의 통화나 오일과 연동한 가상자산을 구상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를 대체하고 은행 계좌가 없는 수십억명에게 지불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중앙은행 압박에 맞서는 스테이블 코인 운명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다보스포럼에서 자산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스테이블 코인은 그저 곧 무너져 내릴 피라미드일 뿐이라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그녀는 스테이블 코인을 부정하지 않는다. 스테이블 코인이 넥스트 빅띵(Next big thing)의 하나라면 과장될 말일까.

루나 사태로 세계 각국에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규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작동 방식이 투자은행과 다를 게 없는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은행에 준하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미국은 그간 가상자산시장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 패권에 미칠 영향을 주시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일종의 금융 혁신이라고 치켜세웠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CBDC 발행에 무게를 실으면서 민간 스테이블 코인을 누르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하는 이유가 뭘까.

가상자산으로 최대 규모 부실이나 뱅크런 같은 문제가 생길 경우 크립토 영역뿐만 아니라 전체 신용시장의 안전성을 해치고 시스템위기까지 몰고 갈 금융 불안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현재 스테이블 코인 발행 주체는 모두 민간 기업이다. 규제가 없어 발행사들은 고객 요청이 있을 때 스테이블 코인을 달러화로 환매해줄 준비 자산을 충분히 보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스테이블 코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미 연준 이사회 의원인 제프리 장(Jeffery Zhang)과 예일대 교수 게리 고튼(Gary B. Gorton)이 발표한 ‘길고양이 스테이블 코인 길들이기(Taming Wildcat Stablecoins)’라는 논문은 세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⓵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는 은행으로 취급하고 은행과 동일한 규제(예금보험 등)를 적용한다.
⓶스테이블 코인 발행사가 미국 국채나 중앙은행 지급준비금 등을 통해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게 하고 그 액면가를 1:1로 보증하도록 강제시키는 법을 제정한다.
⓷중앙은행이 직접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고 민간 스테이블 코인에는 과세를 해서 시장에서 서서히 배제시킨다.

출처=자본 시장 연구원
출처=자본 시장 연구원

◆여전히 스테이블 코인의 유용성은 무시 못해

파산한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체포된데 이어 스테이블 코인 바이낸스 USD를 발행한 바이낸스까지 기소될 경우 가상자산업계의 겨울이 더욱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신뢰도면에서 중앙은행이 보장하는 CBDC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CBDC의 단점은 법정화폐인 만큼 사용처가 주로 자국 내에 한정된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은 전 세계 어디서든 통용되며 가치도 동일하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이종 가상자산 간 거래 매개체 역할을 할 때 스테이블 코인이 CBDC보다 훨씬 유리하다.

한편 앞으로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이 실생활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스테이블 코인의 실용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 역시 존재한다. 메타버스라는 3D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와 동일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지급결재수단이 필요하다. 메타버스가 구체화·현실화되면 가상자산시장에 엄청난 기회가 열린다. 메타버스에서 암호화폐를 각종 금융거래에 널리 사용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음으로, 달러 패권 후의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 IMF에 따르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103조달러로 미국은 25조달러(약 20%), 중국은 18조달러, 일본은 4조3000억달러 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달러는 전 세계 무역 결제 통화의 44.2%, 전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액의 60%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기축통화다.

실물의 위력보다 훨씬 높은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가운데 스테이블 코인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달러의 위력을 능가한다. 그만큼 많은 달러가 실시간으로 스테이블 코인에 묶여있다는 의미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미국 달러화 중심의 외환보유액에 대한 다각화를 도모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더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CBDC 문제에서 미중 간 경쟁심화가 예상된다.

미 달러의 비중이 하락하는 게 SDR을 구성하는 유로, 파운드, 엔 등의 외환시장 비중이 급증한다는 뜻은 아니다. 위안화가 급성장한 것도 아니다. 위안화가 SDR 구성 통화에 포함된 것은 2016년인데, 달러 비중 감소 중 4분의 1 정도만 위안화로 전환됐다.

나머지 4분의 3은 한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싱가포르 통화로 전환됐다. (43%는 호주 및 캐나다 통화, 23%는 한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통화)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고려하면 원화가 기축통화로 편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제기된다.

◆제대로 된 한국형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어야

문제는 여전히 한국은 금융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전향적이고 열린 자세와 산업을 이해하려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프런티어를 향해 항해하는 젊은 리더들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도록 내몰고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억압해서는 금융 선진화를 실현할 수 없다.

이 가운데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의 가능성에 주목해서 방향성을 논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스테이블 코인이 없기에 수많은 알트코인이 생겼다 사라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전세계 가상자산시장에서 비트코인의 거래량 비중은 30% 정도다.

한국에선 이 비중이 6%에 불과하다. 나머지 94%는 알트코인 투자다. 원화국제화와 연계된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어 한국형 메타버스시장을 확산하고 그 생태계에서 이를 활용하도록 유도해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알고리즘형은 배제하고 법화, 가상자산 등과 연계한 자산준거형 스테이블 코인을 생각해 본다. 통화·예금·국채 등을 준비금(reserve)으로 보유해 가격 안정성을 상대적으로 높이면 원화 국제화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가상자산시장이 세간에서 말하는 규제사각지대란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가상자산에 대한 체계적인 감독과 공시의무를 규정해 소비자보호와 발전전략을 추구하는 법제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출처=자본시장연구원
출처=자본시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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