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성경은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으로 의로운 길을 가야만 얻어진다(잠언, 16장 31)’며 향기롭게 살아가는 노년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여겼다. 불멸의 가르침 황금률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 누가복음 6장 31)’도 마찬가지다.

동양에서도 이를 소극적으로 표현해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도록 하라(己所不欲 勿施於人, 논어 위령공 23)’고 했다. 삼강오륜의 한 가닥인 장유유서(長幼有序)는 ‘누구나 늙기 마련이니 부모나 나이 먹은 이웃들에게 잘해야 자신도 이다음 늙어서 잘 대접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가르친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이 진전되면서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65세 인구비율이 20%를 넘어가는 본격적 ‘노인시대’가 예정됐다. 문제는 (상대적)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는 점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40.4%(OECD 13,5%)가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최빈곤층이다.

우리나라 노인자살률은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성장과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축복 속에서 상당수 노인이 양극화 그늘에서 허덕이는 셈이다. 물론 빈곤의 책임은 게으르거나 낭비한 개인에게 있지만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나라에서 낙오자의 최저생계 보장은 공동체의 책임이다. 하물며 황혼기 노인들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노인은 아침 러시아워가 지나고 나서 한적한 1호선 전철을 타고 차창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다가 온양온천역에서 내린다. 읍내 장터를 기웃거리다 자선단체가 베푸는 점심을 먹고 돌아오면 하루가 지루하지 않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는 최근 노인의 지하철 무임승차 폐지론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자 유일한 낙인 ‘점심여행’을 접어야 할지 몰라 걱정이다.

‘노인 학대 예방의 날’을 제정할 정도로 노인들이 천대받은 이 무서운 나라에서, 노인 무료승차는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빈곤노인들에게 인간의 기본권인 ‘이동의 자유를 다소나마 보장하는 기능을 해왔다.

전철 노인무임승차 문제는 우리나라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뒤에 논의돼야 마땅하다. 갈수록 좁아지는 세상에서 삶에 지친 노인들을 이동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이들을 더 갑갑하고 우울하게 만들어 ‘비극적 선택’이 지금보다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

더욱이 오늘날 세계경제 향방이 불확실한데다 한국경제가 (저성장) 전환기와 마주한 상황임을 인식해야 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까지도 오매불망 기다렸던 ‘노인시대’를 기뻐하기는커녕 소외돼가는 노인문제를 외면하다가는 희망 없는 사회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 모두의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나라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현재의 노인은 과거의 청년이었으며, 지금의 청년은 미래의 노인이다. 어느 누구라도 노인시대를 거쳐서 죽음으로 이르는 길을 가야 한다. 다시 말해 세상 어느 누가 미래의 꼰대가 되길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노인들의 삶이 계속 척박해지면 언젠가 노인이 될 젊은이들이 앞날을 비관하게 돼 삶의 활력이 꺾이고 미래가 희미해져 갈 수밖에 없다.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미래가 흔들리거나 그리 불안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가 보다 건강해지기 마련이다.

노인시대를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젊은세대에게 당당한 길을 가게 할 수 있다. 노인들이 자기보존과 안정을 위한 하위욕구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젊은이들과 그들의 자녀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인빈곤과 출산율 저하는 커다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짐작된다.

사회안전망 제공은 미래를 향한 진화와 번성의 디딤돌로 작용할 것이다. 한마디 덧붙이자.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청년기부터 소득의 상당 부분을 사정없이 저축하는 습관을 가져야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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