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인재 배분을 왜곡하는 의사 쏠림을 개혁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린다 (일러스트=픽사베이)
국가 인재 배분을 왜곡하는 의사 쏠림을 개혁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열린다 (일러스트=픽사베이)

대한민국에서 지금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칫 국가 경쟁력 상실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일이지만 정부나 국민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재의 의사 쏠림이다. 강남 부유층을 비롯해 이 땅의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식들 '의사 만들기'에 혈안이다. 의사면허증은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고속열차다. 미혼 남녀가 의사 면허만 갖고 있으면 뚜쟁이들이 몰려들고 한재산(강남 아파트에 병원개업비) 넉넉하게 잡는다는 얘기는 식상하다.

과거엔 사법고시, 행정고시 패스가 가문의 영광이었지만 오래전 스토리다. 이제는 의사다. 

얼마전 속초의료원은 연봉 4억원을 제시하고 응급의학 전문의 2명 모집에 나섰지만 3차례나 채용공고를 하고도 겨우 한 명 확보하는데 그쳤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는 속초의료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국공립병원의 공통적 현상이라고 한다.

의사를 대한민국 넘버원 '귀족'으로 만들어준 건 정부다. 의료 수요는 갈수록 증가하는데 18년간 의대 정원을 꽁꽁 묶어 의사면허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했다. 의사집단은 때로는 환자들을 볼모로, 때로는 정치권이나 권력층을 상대로 온갖 영향력을 동원해 의사 수 증가를 결사적으로 저지하며 이 철밥통 카르텔을 '특권 계급화'했다.

그렇다보니 의대 들어가는 건 '바늘구멍'이 됐다. 올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정시합격자의 약 29%인 134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다른 대학의 의약학 계열로 간 것으로 추정된다. 수능 고득점자들은 가장 먼저 의대진학을 타진한다고 한다. 의대진학을 내건 초등학생 대상 학원들이 성업중이라는 뉴스도 있었다.

지금 세계는 기술 패권 전쟁이 가열하고 있다. 반도체, AI, 배터리, 바이오 등 국가의 명운이 걸린 첨단 기술과 인재 확보를 위해 선진국들은 총력전을 펴고 있다. 10만명의 범용 인재보다, 2~3명의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인재가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다. 이런 디지털 혁명의 물결 속에 인재의 의대 쏠림은 국가의 미래에 짙은 어둠을 드리운다.  

의사집단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된 나라라면 다 하는 원격의료도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부족한 필수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공공의대 신설을 추진했으나 의사단체의 집단 파업으로 백지화됐다. 민주화 이후 좌우 정권을 넘나들며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가 개혁됐으나 의사단체의 집단이기주의는 '성역'으로 남아있다.  

올해 서울 주요 5개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시모집에서 최초 합격자 전원이 등록을 포기한 곳이 속출했다. 대부분 지방대 의대에 가기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반도체학과 정원을 채우느라 4~6차례 추가모집까지 한 대학도 있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있을때마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은 곧 '국가안보'라고 강조하지만 이런 입시파행과 무대책 교육을 놔두고 어떻게 나라의 산업 안보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건가. 최고 엘리트 학생들이 첨단 기술 관련 학과 대신 피부과나 성형외과로 몰리는 현상은 비정상을 넘어 '병적'이다. 

의사라는 직종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인력의 질이 확보돼야하고, 충분한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는 데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정도의 문제다. 의사가 돈다발이 쏟아지는 직종이어서 우수인재의 블랙홀이라면 국가의 미래는 없다. 인재들이 이공계나 인문계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자리하는 사회가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제도를 바꾸고 재원을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인재 확보다. 윤석열 정부는 기득권 노조의 카르텔을 '망국병'으로 보고 노조 개혁에  행정적, 법적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런 열정과 돌파력으로 산업 인재 배분의 왜곡도 바로잡길 바란다. 그 출발점은  의사집단의 '철밥통 카르텔'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변호사의 철밥통 카르텔을 깬 사법개혁의 경험도 있지 않은가.

김종현 본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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