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배당도 높고 자사주도 상당한 지주회사 SK㈜가 52주 신저가 행진을 하고 있다. 반도체 주식 SK하이닉스가 적자를 면치 못하기 때문일까. 주가순자산배수(PBR)만 보면 0.5 이하라 무척 싸 보인다.

SK는 2003년 기업지배구조 이슈로 자칭 행동주의펀드(activist hedge fund)라 불린 소버린의 공격을 받았다.

SK 주식을 매집한 소버린은 당시 우수한 기업 지배구조와 국가 번영이 같다는 버젓한 말을 했다. SK 지분 15%를 확보해 최태원 SK 회장 등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했고,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오른 사이 소버린은 2년 만에 약 1조원의 수익을 거둔 뒤 홀연히 떠났다.

행동주의펀드가 겉으로 내세운 명분보다는 ‘기업사냥꾼’, ‘먹튀’에 가깝다는 평이 그래서 나온다. 불합리한 지배구조 개선을 내걸었으나 단기 주가만 높여 수익을 내고 도망치는 건 약탈자나 하는 짓이다. 그 후유증은 주가의 급속한 하락으로 나타나 온전히 개미투자자의 몫으로 남는다.     

◆행동주의펀드의 공(功)과 과(過)

행동주의펀드는 성장 잠재력이나 경쟁력에 비해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이유가 지배구조와 경영진에 있다고 판단할 경우 공격에 나선다.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수한 후 자사주 매입, 배당성향 확대, 인수·합병(M&A),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려 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식시장은 좋지 않은데 행동주의펀드의 대상이 된 기업은 마치 테마주를 형성하듯 주가가 올랐다. 앞서 말한 것처럼 행동주의펀드는 주가 차익에만 관심이 있고 기업 경영에 대한 전문성은 없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행동주의펀드의 근간인 주주행동주의가 처음 등장한 건 1932년이나, 닷컴 버블로 수많은 기업이 무너졌던 2000년대 초 기업의 감시자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주주행동주의가 다시 주목받았다. 이후 여세를 지금까지 몰아가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기에 행동주의펀드가 주식을 사들이는 행위를 벌이기 쉽다. 경기침체와 증시 부진의 영향으로 주가가 떨어지면 헤지펀드들이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기 수월해진다. 주주행동을 추진하면 주가가 상승한다는 걸 알아차린 헤지펀드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국내에 행동주의펀드가 등장한 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다. 자본시장 개방 과정에서 국내 기업을 노린 헤지펀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9년 미국계 헤지펀드 타이거펀드는 SK텔레콤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다.

행동주의펀드는 시장 가격과 기업의 본질 가치 간 괴리를 축소해 목표에 부합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중가격 구조 해소도 도모한다면 행동주의펀드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

게다가 소액주주들도 행동주의펀드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행동주의펀드의 전유물로 알려진 주주제안이 소액주주 사이에서도 활발히 진행된다. 통상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며 규모가 큰 데 비해 행동주의펀드는 체급이 경량급이다. 

◆얼라인파트너스와 JB금융의 만남

SM 인수를 둘러싸고 카카오와 하이브 간 다툼이 벌어졌고 각각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SM 주가가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주주총회에서 이를 둘러싼 경영권 다툼이 볼만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대치가 약 한 달 만에 마무리됐다. 카카오가 SM 경영권을 쥐는 대신 하이브는 플랫폼 관련 협업을 하기로 지난 12일 합의했다. 다만 협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SM 주총에서 경영권을 둘러싸고 SM 현 경영진과 카카오 편에 설 것으로 기대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의 활약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얼라인파트너스의 행동주의는 지난해 2월 SM에 감사 선임을 요구하며 시작됐다. SM이 음반판매업계 1위였으나 주가는 매우 저평가됐다는 분석으로 독립된 전문성을 갖춘 감사 선임을 추진해 저평가 해소에 앞장섰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올해를 국내 상장 금융지주의 변화를 주도하는 해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지난해 금리인상으로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금융지주사들에게 적극적인 주주환원정책도 요구했다. 주가만 올리고 도망치는 먹튀와 다른 양상이다.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JB금융지주, BNK금융지주, DGB금융지주 등 6개사의 의결권을 확보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제안(최소 배당성향 30% 등)을 실행했다.

JB금융지주를 제외한 나머지 5개 금융지주사들은 얼라인파트너스가 요구하는 주주환원 수준을 약속했다. JB금융지주만 유독 정기주총(3월30일)을 통해 별도 주주제안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JB금융지주는 얼라인파트너스가 촉발한 주주환원 강화 캠페인의 한가운데에 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 2일 국내 상장 은행지주 7곳에 최소 배당성향 30% 등을 요구하는 공개주주서한을 보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5월 JB금융 지분 약 14.06%를 앵커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으로부터 인수하며 2대 주주에 올랐다. 2019년 3월 김기홍 JB금융지주 회장 취임 이후 양호한 실적과 주주 우호적 배당 정책을 펼친 게 투자요인으로 작용했다.

JB금융그룹은 전북은행, 광주은행, JB우리캐피탈, 프놈펜상업은행, JB자산운용, JB인베스트먼트등의 계열사를 뒀다. JB금융의 지분은 삼양사(지분율 14.61%), 얼라인파트너스(14.06%), OK금융그룹(10.21%), 국민연금(8.45%), 더캐피탈그룹(5.11%) 순으로 과점주주 체제다. 다른 은행지주는 주인 없는 회사이나 JB금융은 그렇지 않아 경영권 분쟁이 있을 수 있다.

불안을 요하는 문제는 다른 데도 도사리고 있다. JB금융은 몇 년간 은행 자회사에서 불거진 채용 논란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다른 은행이 부정입사자를 전원 채용 취소한 것과 상반된다. 김 회장은 재직 당시 은행 계열사에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며느리를 정규직 전환했다는 논란이 불거졌고 채용비리 사건에 직접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최대주주인 삼양사를 중심으로 한 JB금융 이사회는 그룹 사업구조와 건전성을 고려하면 배당확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삼양사와 가까운 인물이다. 얼라인파트너스 측 인사가 이사로 선임되면 삼양사는 이사회에서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된다.

◆주주환원과 기업성장 논란 속에서

업계에선 OK저축은행과 더캐피탈그룹이 배당확대 관련 승부를 가를 것으로 전망한다. 두 주주가 얼라인파트너스의 손을 들어주면 얼라인파트너스는 찬성표를 30% 넘게 보유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금융당국이 경계하는 배당확대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OK저축은행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 의결권 행사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나 실적이 부진한 게 변수다. JB금융으로부터 배당금을 더 받으면 이득이 된다. 배당 확대로 JB 금융의 주가가 올라가면 평가이익을 거둘 수도 있어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캐피탈그룹도 얼라인파트너스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 배당이 늘면 주가도 상승할 것이기에 운용사 입장에서 얼라인파트너스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시장에서 배당 확대와 기업 성장 간의 논란은 여전하다.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 이사회의 정책이 주주환원에 미흡하다며 문제를 삼는다. JB금융은 그동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중금리 대출 같은 수익성은 높지만 위험이 큰 사업 비중을 늘리면서 성장의 과실을 이뤘다. 경제와 금융 상황이 달라진 지금 과거처럼 높은 이익 성장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배당을 크게 늘리면 자본 여력이 줄어 고위험·고수익사업을 과거처럼 과감하게 벌이기도 무리다. 김 회장은 성장의 지속으로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급변하는 금융시장 환경 속에서 주주환원을 극대화하려는 얼라인파트너스와 그의 대결이 초미의 관심사다. 어쩌면 주총 결과는 그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다른 은행과의 다른 지배구조와 배당성향이 최근 정부가 내세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셀프연임·장기집권’ 체제와 맞물려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금융회사를 포함해 소유권이 분산된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돼야 한다고 했다.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보다 깊이 있게 고민해 달라고도 했다.

주인 없는 그룹에 대해 승계문제나 임원 선임절차가 투명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점은 문제다. 내부통제 제도 개선, 임원 선임절차 투명성 제고와 관련해 선진 외국보다 투명성도 낮은 것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행동주의펀드는 주가만 띄우고 나갈 게 아니라 이런 지배구조의 투명성 유지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 행동주의펀드답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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