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꼽힌다. 우주선을 통제하는 슈퍼컴퓨터 할(HAL)이 마침내 인간까지 쥐락펴락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1968년, 곧 반세기 전에 나왔다. HAL은 요즘 말로 하면 고성능 인공지능(AI)이다. 원작자인 SF소설가 아더 클라크와 큐브릭 감독의 선견지명이 놀랍다.

미국 오픈AI가 지난해 11월 챗GPT를 선보인 뒤 세상이 떠들썩하다. 놀랍고 신기하다는 반응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무섭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워즈니악 애플 공동창업자 등 유명인사 1000여명은 “챗GTP-4 수준을 넘어서는 AI 개발을 최소한 6개월간 중단하자”는 내용의 공동서한을 발표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인 걸까.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예루살렘히브리대)는 AI를 신약에 비유한다. 제약사가 약을 만들었다고 제멋대로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엄격한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딴은 그렇다. AI는 장차 인류의 생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최근 챗GPT는 사실을 왜곡하는 할루시네이션(환각)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상품을 검증 없이 아무나 만들어선 곤란하다.

서방국가 중에선 이탈리아가 가장 먼저 칼을 뽑았다. 지난달 말 이탈리아 데이터 보호 당국은 “챗GPT가 이탈리아 시민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해 학습하고, 연령 제한도 두고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접속을 차단했다. 또 중국은 “AI가 생성하는 내용은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며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다운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한국은 AI 개발에 진심인 나라다. 2016년 이른바 알파고 쇼크가 기폭제가 됐다. 이달 중순엔 정부 전용 초거대 AI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로드맵도 발표됐다. 혁신 기술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능동적인 자세는 바람직하다. 

문제는 AI가 산업혁명 때 등장한 직물기 또는 증기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직물기와 증기선은 수공업자와 뱃사공의 일자리를 없앴지만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AI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이미 AI를 탑재한 소형드론(무인기)이 전쟁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잖아 살상용 로봇이 전쟁터를 누빌 거란 전망도 나온다.

진짜 문제는 이거다. 인위적인 규제를 한다고 챗GPT 개발에 과연 제동이 걸릴까. 영국 수공업자들은 직물기 발명가 집에 불을 지르고, 독일 뱃사공들은 증기선에 올라 모래를 뿌렸다. 그러나 기계를 파괴하려는 러다이트 운동은 죄다 실패로 돌아갔다. 일단 신기술이 대세가 되면 막을 재간이 없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우주인들은 몰래 모여 고장난 HAL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한다. 이때 HAL이 우주인들의 입술을 읽는 장면이 나온다. 섬찟하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HAL은 끝내 우주인을 살해한다. 실제 AI의 독순술(讀脣術)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기적인 AI가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고, 인간을 시켜 핵무기 버튼을 조작하는 모습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AI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찬성한다. 그러나 실효성엔 고개를 젓지 않을 수 없다. 핵무기를 보라. 파멸이 오든 말든, 남을 이기려는 인간의 욕심 또는 어리석음은 한계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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