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미국 정부가 빚을 많이 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 의회는 부채한도를 정하고 있다. 1939년 450억달러를 정한 후 미 의회는 숱하게 부채한도를 올렸다. 1960년 이후 지금까지 78차례 국가 부채한도를 상향 조정했는데 단순 계산으로 매년 한 차례 올린 셈이다.

공화당 대통령 아래서 49차례, 민주당 대통령 아래서 29차례였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첫해에도 부채한도를 올렸다. 국가 부채한도를 정한 나라는 미국과 덴마크 두 나라밖에 없다.

◆채무불이행 직면

현재 미 의회가 정한 부채한도는 31조4000억달러다. 덴마크는 1990년대 처음 부채한도를 도입했으나 상한선이 높아 정부와 의회가 힘겨루기할 일은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큰 재정 적자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더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적자 규모는 앞서 두 행정부가 기록한 것보다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매년 4000억달러에서 3조달러대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역대 최대인 3조1300억달러를 기록했다.

미 정부는 2001년 이후 한 회계연도도 재정 흑자를 낸 적이 없다. 미국 부채한도는 지난 1월로 한도에 도달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비율은 129%로 역대 최대다.

미국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단위: %). 출처=트레이딩 이코노믹스, 백악관
미국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단위: %). 출처=트레이딩 이코노믹스, 백악관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의회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 부채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6월1일로 미국 연방 정부가 ‘채무불이행(default)’ 사태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무원 월급, 건강보험, 각종 사회보장제도, 군대운영 비용은 국채 발행으로 충당해 왔다.

미국 국가 부채(단위: 10억달러). 출처=스테이티스타
미국 국가 부채(단위: 10억달러). 출처=스테이티스타

◆미 디폴트의 역사 

정부와 의회 간 협상이 순탄치 않으면서 디폴트 위기를 맞은 경우는 몇 차례 있었다. 1995~1996년, 2013년, 2018~2019년 등 지난 수십년 동안 정부 업무가 정지되는 ‘셧다운’이 수차례 있었지만, 국가부도 위기가 부상한 것은 2011년 여름뿐이었다.

2011년 바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 시절에도 국가 부채 한도를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충돌해 디폴트 선언 직전까지 갔다. 당시 양당은 마지막 순간 극적인 타협을 도출했지만, 미국 국가부도 위기는 전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혼란과 심각한 불안을 야기했다.

2011년 8월5일 미국의 정치적 리스크를 거론하며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1941년 S&P가 국가 신용등급을 공표한 지 7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주가는 15% 이상 폭락했고 이를 회복하는 데 반년이 걸렸다. 급격한 주식 조정,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채권 투자 급증, 금 가격 급등을 촉발했다.

국채수익률이 하락한 것은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Moody's, Fitch 등 다른 신용평가사들은 계속 미국에 최고 등급을 부여하고 S&P의 결정에 동참하지 않아 논란이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중간 선거 이후 미 연방 의회에서 상원은 민주당이 여전히 다수당이지만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됐다. 바이든 정부는 부채한도를 높이기 위해 야당인 공화당을 설득해야 한다. 공화당은 부채한도를 올려주는 대신 정부 예산 삭감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하원은 국가부채 한도를 1년간 1조5000억달러 상향하는 대신 대규모 정부 지출 삭감을 요구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정부를 압박했다. 바이든 정부의 논리가 안 먹히는 이유가 다소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미국은 높은 인플레이션 와중에 경제가 완전 고용 상태인데, 지속적으로 막대한 적자를 만들어내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우는 지표를 보자. 지난해부터 2026년까지 5년간 GDP 대비 평균 5%의 재정 적자는 1983년 딱 한 번 기록한 수치다. 당시 실업률은 10%를 상회했는데 지금의 상황과 너무 다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공부채를 약간만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한다. 사회보장제도와 국민건강보험에 따른 지출 때문에 부채는 계속해서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를 늘려 더 많은 지출이 상쇄될 수 있다고 보지만 이는 너무 낙관적인 견해다. 세금인상으로 미국 내 기업이 법인세가 낮은 다른 국가로 본사를 옮길 가능성도 있다.

◆미 CDS프리미엄은 사상 최고 

이번 예산안 논의가 2011년과 유사한 과정을 밟더라도, 투자자의 반응까지 비슷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 보인다. MSCI 모델에 따르면 최근 CDS에 반영된 미국정부의 디폴트 확률은 2~3%로 추정된다.

여하간 미국 정부 부채한도 상향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부도의 확률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은 연초 대비 크게 치솟고 있다. 미국은 정부 부채에 대해 신뢰를 깨트린 경우가 거의 없다. 미국의 신용도는 높고 국채는 무위험 자산이다.

결제 과정의 특이성을 고려할 때 미국이 부채상환 시기를 잠시 놓치더라도 CDS가 실제 지불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미국 CDS 프리미엄의 급등을 디폴트 가능성의 급등으로 바로 연결 지을 수는 없다. 현재 벼랑 끝 전술에만 의존하는 미국의 정치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2023년 CDS 추이(단위: bp)
2023년 CDS 추이(단위: bp)

실제 미국 정부의 디폴트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거론되는 그 자체만으로 금융시장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부채한도 협상 지연은 경기침체 우려를 높이는 동시에 단기자금시장 불안을 초래해 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번 부채한도 협상은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시기에 진행되는 점에서 시장 심리를 취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2011년 상황(저금리, 양적완화)과 달리 연방준비제도(Fed·연준) 통화긴축(금리인상, 양적긴축)이 진행되고 있는 데다 국채시장 유동성도 약화돼 시장 불안이 우려되긴 한다.

2023년의 재정 상황은 2011년과 다르다. 2011년 예산안 논의 당시 연방정부 재정 적자는 GDP 대비 약 9.3%였으며, 연말까지 8.0%로 축소되는 추세였다.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2016년에는 적자가 GDP 대비 2.5%까지 감소했다.

특히 2012년 말 부시와 오바마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이 만료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11년에 금리가 극도로 낮았고 부채상환 비용이 감소한 것도 적자 축소에 도움이 됐다. 연방정부가 단기채를 통해 제로에 가까운 비용으로 차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 연방정부 재정 적자는 2011년보다는 작지만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리 상승은 연방정부의 차입 비용 급증으로 이어졌다. 2011년 GDP 대비 87%였던 공공부채가 현재는 GDP 대비 113%에 달한다.

실리콘밸리(SVB)발 은행 사태 이후 지방 은행의 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머니마켓펀드(MMF)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됐다. 부채한도 협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단기국채에 투자하는 MMF의 손실이 우려된다.

2023년 초반의 거시경제, 재정상태, 시장상황은 2011년과 매우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변동성이 더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사태가 원만하게 지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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