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높고 낮음을 떠나 성장률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가계와 기업의 고통을 크게 하고 나아가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가 불안은 현재보다 미래의 화폐가치를 보장하지 못하기에 땀 흘려 일해 저축하는 사람들의 생활 안정에서 나아가 신분 상승 사다리를 흔든다.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돈의 가치가 녹아내리는 인플레이션은 경제 질서를 흐트러트려 무기력한 사회를 만들다가 자칫 체제까지 무너트린다. 개인의 근검절약 노력이 사회안전망과 성장동력으로 연결되기 위한 제1의 필요조건은 화폐가치 안정이다.

1차 대전 후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바이마르공화국에서 있었던 형제의 에피소드를 되새겨보자. 형은 열심히 일하며 푼푼이 저축을 하고, 술꾼인 동생은 술을 마시고 빈 맥주병을 뒤뜰에 쌓아놓았다. 밤낮으로 돈을 찍어내니 물가가 폭등해 형이 저축한 돈은 휴지조각이 돼 불쏘시개로 변하고, 생산시설 부족으로 귀해진 빈병 값은 크게 올라 동생은 부자가 됐다.

부지런한 형보다 게으른 동생이 더 잘 살 수 있다는 악성 인플레이션이 낳은 아이러니다. 돈의 가치를 바닥으로 만들면서 바이마르공화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제3제국이 등장해 2차 대전 비극의 씨앗이 됐다. 그 소용돌이에서 권력을 잡은 히틀러를 ‘인플레이션의 양자’라 불렀던 까닭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풀린 유동성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하이퍼인플레이션은 4·19의거와 10·26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자유당정부 때는 별다른 정책 수단 없이 돈 찍어내는 일에 치우치다 보니 “일자리는 없고 물가는 다락 같이 오른다”는 푸념이 나돌았다.

당시 유행했던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는 물가 불안에 시달리는 민심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다고 판단된다. ‘유신시대 종말’도 물가 불안으로 민심이 이반되자 불안해진 권력 내부 암투에서 비롯됐다. 석유파동도 있었지만, 줄기찬 경기부양으로 통화량이 팽창해 1970년대 말에는 경제성장률 10% 정도, 물가상승률은 20% 후반에 다다랐으니 시민들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일시적 물가 불안은 기상이변, 전쟁 같은 공급충격이 원인이지만, 만성 인플레이션은 방만한 재정 운용에 따른 유동성 팽창이 가져온 화폐적 현상이다.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 상황에서 양적완화는 곧장 물가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라 전체의 GDP 증가분보다 통화량이 더 많이 풀리면 그만큼 물가가 오르고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고개를 드는 후진국 증상이 나타난다.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리는 만성인플레이션(chronic inflation)은 오랫동안 쌓아온 경제적 성과는 물론 사회적 신뢰까지 무너트려 무기력한 사회가 된다.

인플레이션이 수그러들지 않고 끈적거리다 보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만성화돼 다시 물가 불안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원가 변동과 상관없이 생산자들이 상품가격을 올려도 그러려니 하는 소비자들은 저항하지 못한다. 경쟁적 식품값 무더기 인상을 예로 들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걸리고 실패할 수도 있는 생산성 향상 노력보다 당장 손쉬운 화폐 발행을 통해 경기회복을 이끌려는 욕심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그들 자신을 옭아매는 줄도 모르고 선심성 퍼주기를 기다리고…. 저성장시대에 양적완화가 반복되면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없어지다가 포퓰리즘 풍조가 깊어질 위험까지 도사린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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