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브릭스(BRICS)가 몸집을 불렸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으로 구성된 브릭스 정상들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연례 회의에서 6개국의 가입을 승인했다. 여섯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다. 브릭스는 내년부터 11개국 연합체로 거듭난다.

브릭스의 외형 확대는 중국의 승리로 분석된다. 중국은 미국과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중이다. 자기 편은 많을수록 좋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도출할 수 있게 노력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 정부에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제재에 직면했다. 회원 확충은 고립에서 벗어날 기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화상 연설에서 “내년에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될 새 회원국에 축하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푸틴은 이번 회의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대신 보냈다. 지난 3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쟁범죄 혐의로 푸틴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남아공은 ICC 회원국이다. 따라서 푸틴이 영토 내로 들어오면 체포 영장 집행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6개국 추가 가입은 세계 경제 질서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달러 패권이 도마에 올랐다. 출범 14년째인 브릭스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엔 어떤 변화가 생길지 등을 짚어보자.

브릭스 5개국 정상들. 자료사진: AFP=연합뉴스
브릭스 5개국 정상들. 자료사진: AFP=연합뉴스

◆브릭스 GDP가 G7을 앞선다

브릭스의 기원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이코노미스트 짐 오닐이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4개국을 BRICs로 불렀다. 장기 해외투자 전략 차원에서 네 나라를 주목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다. 국제 금융계는 물론 정치인들도 오닐이 낸 보고서에 주목했다.

2009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첫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렸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맘모한 싱 인도 총리,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만났다.

2011년부터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남아공이 중국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때부터 BRICs는 BRICS로 표기가 바뀌었다. 

브릭스 5개국이 세계 인구,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다만 초창기 경제 규모는 미국이 주도하는 주요 7개국(G7)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 브라질의 빠른 성장세에 힘입어 브릭스 경제는 2020년 구매력을 고려한 GDP 규모에서 G7을 따라 잡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브릭스 5개국 GDP 합계가 글로벌 총액의 32.1%에 이를 것으로 본다. 반면 G7 합계는 29.9%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바야흐로 브릭스는 인구와 면적을 넘어 경제 규모에서도 서방 부자클럽인 G7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사우디까지 동참

새로 가입한 6개국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나라는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다.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가깝게 지냈다. 그러나 두 나라는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카말 카슈끄지의 살해(2018년)를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원유 감산을 두고도 양국은 입씨름을 벌였다.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12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우디를 국빈 방문했다. 시 주석은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비전 2030 프로젝트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올 봄엔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이 외교관계를 재개하는 데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했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2위 수출국이다. 이란과 UAE도 대형 산유국이다. 중국은 세계 1위 원유 수입국이다. 향후 국제 원유시장에는 전례없는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과 앙숙인 이란이 브릭스 멤버가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이 핵협정에서 탈퇴한 뒤 이란은 강력에 제재에 직면했다. 브릭스에 가입하면 이란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우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료사진: 픽사베이
자료사진: 픽사베이

◆달러 패권에도 변화가 올까

브릭스는 출범 당시부터 미국 달러화 패권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가장 목청을 높이는 이는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다. 룰라는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매일 밤, 왜 모든 나라가 달러로 무역을 결제해야 하는지 자문한다”고 말했다. 브라질은 중국과 상호 자국통화 결제(헤알과 위안)를 늘려가고 있다.

달러 패권에 대한 불만은 러시아도 다르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은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결제망(SWIFT)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달러 결제망에서 러시아를 축출한 셈이다. 그러자 러시아는 중국과 루블·위안 결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 달러를 기축통화에서 몰아내는 일은 중국의 숙원사업이다. 그 일환으로 브라질·러시아 등 여러 나라와 위안화 결제를 늘려가는 중이다. 다만 대안으로 브릭스 공동통화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는 부정적이다.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브릭스 달러’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달러 대신 위안을 새로운 기축통화로 만들고 싶은 게 중국의 속셈이다.

공동통화 도입은 쉬운 일이 아니다. 회원국 간 경제 시스템이 비교적 균일한 유럽연합(EU)도 통합의 마지막 단계에서 유로화를 도입했다. 그래도 통화주권 상실에 대한 불만이 속출한다.

브릭스 11개국은 경제 규모도 천차만별이고 경제 체질도 다르다. 섣불리 공동통화를 도입했다간 회원국 간 결속만 해치기 십상이다.

◆장애물도 있다

중국과 인도의 갈등은 브릭스 세력 확충에 큰 걸림돌이다. 2020년 두 나라는 국경분쟁 지역인 라다크에서 무력 충돌로 인도군 20명과 중국군 4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회원국을 늘리는 문제를 놓고도 중국과 달리 인도는 소극적이다. 브릭스 5개국의 정체성이 희석되고, 자칫 반미연합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브릭스가 덩치를 키우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것도 인도로선 달갑잖은 일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으로 구성된 G7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한다. 반면 브릭스 11개국은 회원국 간 체제가 워낙 판이해 언제든 내홍이 불거질 수 있다.

달러를 왕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미국은 전후 70여년에 걸쳐 달러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지금도 국제 외환거래는 달러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유로-엔(일본)-파운드(영국) 순으로 이뤄진다. 중국 위안은 그 다음이다. 이게 현실이다.

브릭스의 세 불리기는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중국이 주도하는 브릭스가 미국이 주도하는 G7에 맞설 대항마로 자리매김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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