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생산성 향상과 소비수요가 급격히 변치 않는다면, 물가는 시차를 두고 유동성 크기와 돈이 도는 속도에 따라 직간접 영향을 받는다. 시중 유동성이 많이 풀릴수록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데다, 돈이 돌 때마다 이윤이나 이자가 불어나기 때문에 돈이 빨리 돌수록 물가 상승 압력이 거세진다.

생산성이 저하되면 생산비가 늘어나 돈을 풀지 않아도 물가는 오른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가 일반화되며 돈이 도는 속도가 느려졌지만, 유동성이 전례 없이 팽창된 데다 미·중 경제패권 경쟁에 따른 생산성 침체로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끈적거릴 가능성이 높다.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2%)를 크게 웃돌아도 금리를 단숨에 올리지 않고 차츰차츰 올리는 까닭은 급격한 금리인상 충격으로 돈이 갑자기 돌지 않는 금융경색을 우려하는 까닭이다. 물가동향을 가늠하게 하는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지난 8월 전년 대비 한국 3.5%, 미국 3.7%로 경제성장률보다 크게 높다. (실질) 경제성장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열심히 일해도 일할 보람이 없어져 성실히 사는 사람들을 맥 빠지게 만든다. 다시 말해, 경제활력을 돋우려면 물가상승률이 최소한 경제성장률보다는 낮아야 하는 까닭이다.

인플레이션 기세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작지 않은 까닭은 세계금융위기와 코로나 사태로 유동성을 분별없이 팽창시켰기 때문이다. 생산성이 향상되고 유동성이 축소돼야 꿈틀거리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뿌리칠 수 있는데 대부분 국가의 경제상황이 생산성 향상과 동시에 유동성 축소를 가까운 시일 내에 단행하기 어렵다.

저성장 상황에서 유동성을 급격히 축소하다가 자칫 경기후퇴를 가속시키고 나아가 위기로 진전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생각건대, 세계 경제 패권 다툼이 진정되고 대체에너지 개발 이전에는 물가불안이 언제 다시 고개를 들지 모른다.

시장은 2023년 상반기 중 전 세계를 괴롭히던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금리도 내릴 것이라 속단했지만 정책당국은 상당 기간 물가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인플레이션 조기 종식을 속단하고 2023년 3월 이후 시장금리인 국고채 금리가 정책금리인 기준금리보다도 낮아지는 ‘금리 수수께끼’가 상당 기간 이어졌다.

물가가 안정되고 금리도 내릴 것이라 예상하여 지불불능위험이 없는 국고채를 선매수한 채권투자자들은 낭패당하기도 했다. 시장이 성급하게 서둘렀던 장면인가? 정책이 선제적 조치를 하지 않고 우물쭈물한 걸까? 아마도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상당 기간 이어졌던 저금리 타성에 젖었던 반사작용도 크다 하겠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2023년 현재 1.3~1.4%로 추락한 한국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유동성 팽창 유혹을 받기가 쉽다. 이를 뿌리치려면 커다란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성장동력이 기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움츠러들고 있어서 환율상승(평가절하) 위험이 잠재돼 물가를 부추길지 모른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정부부채 모두 태산처럼 늘어나고 있어 모두가 각오해야 하는 국면이다.

(본란, 근원인플레이션을 주시해야(2023.5.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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