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나스닥과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 상승이 심상치 않다. 연말까지 주식시장은 좋을 전망이다. 지난 14일 정보기술(IT) 분야 세계 최고 컨설팅 기관인 국제데이터코퍼레이션(IDC)이 반도체 시장 바닥론을 펼쳤다. 동사의 9월 기존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반도체 시장 매출이 점진적 회복을 보이다가 성장세가 내년부터는 가속화할 것이라 전망했다.

수출에서 20% 이상을 차지하던 반도체 비중이 올 2월 12%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IDC의 예측이 맞아 반도체 시장이 다시 회복한다면 수렁에 빠진 우리 경제에 그나마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물량이 10% 줄어들면 국내총생산(GDP)이 0.78% 감소한다. 반도체 가격이 20% 하락하면 GDP는 0.93% 낮아진다.

◆2026년까지 관통하는 반도체 빅사이클

10월 반도체 수출은 89억4000만달러였다. 호황기의 70%를 하회하는 수치이나 전년 동기 대비 감소폭이 3.1%로 여전히 나쁜 상황이다. 9월 초 이후 D램 범용 제품(DDR4 기준) 현물 가격도 오름세다. DDR4 평균 고정 거래가격도 2021년 7월 이후 2년 3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전반의 감산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D램이나 낸드 플래시의 감산에도 8월 이후 반도체 생산이 증가한 것은 고대역폭메모리(HBM), DDR5 같은 고성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간 인공지능(AI)과 전장(차량용 전자장비) 수요에 힘입어 이러한 분야의 수요는 늘었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효과로 이어질 전망이다. 반도체 분야 주식 투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두 회사가 여전히 반도체 부문이 적자인 것은 반도체 수요의 약 60%를 차지하는 컴퓨터, 모바일 기기 수요와 함께 서버(20%)의 회복이 더뎠기 때문이다. IDC는 이 분야의 재고조정 완료로 반도체 재고수준이 내년 2분기에는 정상 수준으로 회귀할 것으로 본다.

반도체의 어두운 터널이 지났고 컴퓨터와 모바일 부문의 내년 2분기 업황 개선과 2026년을 관통하는 반도체 빅사이클을 예상하는 IDC 보고서는 반도체 주식 투자가에게는 반길만하다.

IDC는 2023년 매출 전망을 기존 5188억달러에서 5265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2022년 5980억 달러에서 줄어든 수치다.

향후 전망을 좋게 보는 IDC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미국 시장이 AI의 신 수요와 전통적 수요 관점에서 여전히 우호적이란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부진했던 중국 시장이 2024년 2분기까지 회복할 것이란 점이다. IDC는 2024년 매출을 기존 6259억달러에서 6328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이 중 우리가 주력하는 메모리(23.88%)는 비메모리(76.12%)에 비해 비중이 크게 낮다.

메모리 반도체는 비메모리보다 더 경기순환적이다. 그 결과 공급 과잉 해소에 어려움을 겪으며 비메모리보다 큰 폭의 감소세를 시현했다. 비메모리에 주력하는 대만에 비해 부가가치 창출과 경쟁력 차원에서 우리 반도체 기업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메모리반도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처럼 자체적으로 설계와 생산을 겸하는 종합반도체기업이 주축이다. 비메모리반도체는 '팹리스(설계)+파운드리(위탁생산)' 분업화 모델이 대세다.

대만이 TSMC, UMC(파운드리)와 미디어텍(설계)의 성장으로 1인당 GDP가 우리나라보다 높게 된 것은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다. 반도체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로 이미 돌아섰다는 IDC의 새 전망을 보며 우리경제와 반도체 산업에 시사점을 생각해 본다.

◆고사양 HBM 마이크론 추격 따돌려야

고대역폭 메모리(HBM, High Bandwidth Memory)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4세대 제품(HBM3) 상용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지원에 따른 후발주자 마이크론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AI 열풍에 따라 각광받는 AI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연평균 23.2% 성장이 예상된다. 이에 탑재되는 HBM 수요도 동반해서 크게 증가한다. 마이크론이 대만과 일본을 HBM 메모리반도체 중심 생산기지로 운영하며 AI 분야에서 발생하는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나아가 마이크론은 내년부터 5세대 제품(HBM3E)을 양산하겠다고 선언했다. HBM은 D램과 달리 주문·수주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진다. 그만큼 고객사와의 호흡이 중요하기에 마이크론은 미국 빅테크 기업을 위시한 주요 AI 수요처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초기 단계인 만큼 새로운 표준기술의 등장이 산업 판도를 흔들 수도 있다. 마이크론이 HBM3E 이후의 다음 세대 HBM에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두고 새겨야 한다.

국내 기업의 초격차 유지를 위해 산학연 협력을 통해 경쟁사가 앞서 가려는 길목을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HBM 기술은 자체 공정 고도화로 기술우위를 확보했던 D램 산업과 다르다. 한 기업이 모든 걸 다 할 수 없기에 생태계 차원의 기술협력으로 기술격차를 확실히 벌여야 한다. 

고사양 HBM. 자료=AMD
고사양 HBM. 자료=AMD

◆파운드리 사이클에 대비해 투자 늘려야

다음으로, 경기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늘려 반도체 경기변동에 대응해야 한다. IDC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파운드리 가동률이 완만한 회복세를 기록하고 내년은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8인치, 12인치 파운드리 시장은 반도체 및 IT 시장이 활황을 띠던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모두 90~100% 수준의 가동률을 기록한 바 있다.

업계 선두인 대만의 TSMC를 뒤쫓기 위해 삼성전자의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미국 인텔이 파운드리 확장 전략을 펼치며 경쟁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2022년 TSMC에 앞서 3나노미터(㎚) 선단공정 양산에 진입했고 세계 최초로 차세대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적용했다. 기술력만 본다면 TSMC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파운드리 생태계다. TSMC는 개방형협력플랫폼 생태계를 기반으로 애플 같은 우량 고객을 두고 있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조로 지난해 말까지 IP 포트폴리오를 5만5000개 확보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IP 규모는 4500만개 수준이다. 파운드리 사업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이 분업화하는 과정에서 팹리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협력사를 키워서 상생하겠다는 의지로 설계 부담을 줄이는 IP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 이유이다. 팹리스 입장에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설계 기술을 전달하는 것은 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호적인 부문도 있다.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 양상을 띠면 TSMC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고 있던 고객사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우려해 다른 공급처로도 눈을 돌릴 수 있다. 늘어나는 파운드리 물량을 TSMC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이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입장에선 좋은 기회다. 삼성전자는 개방형 생태계로 밸류체인 기업들과 적극 협력해 파운드리 물량 확보와 지배력 강화를 도모할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AI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이어야

셋째, AI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 블룸버그는 생성형 AI 시장이 2022년에 400억달러(약 52조4600억원) 규모에서 10년 후에는 1조3000억달러(약 1704조원) 규모로 성장할 거라고 예상했다. AI 반도체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폭증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에 생성형 AI를 탑재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애플, 구글, 샤오미 같은 주요 스마트폰 제조 기업들이 일제히 생성형 AI 제품을 내놓거나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온 디바이스(On-device) AI는 클라우드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기기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연산할 수 있다. 칩체한 클라우드 업체들이 생성형 AI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추세는 반도체 수요를 강화한다고 IDC는 전망한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 사피온이 AI 추론에 특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를 내놓았다. NPU는 가격이 비싼 엔비디아의 GPU 대안으로 떠오르는 칩이다. 사피온은 내년 상반기 신제품 양산에 돌입해 챗GPT 같은 대규모언어모델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AI 반도체 개발 스타트업 리벨리온이 삼성전자와 손잡고 차세대 AI 반도체를 공동개발 한다. AI 반도체는 일반 반도체와 달리 빠른 연산 능력이 필요한 AI를 위해 설계된 반도체로 범용 반도체보다 최소 10배 이상 높은 성능을 발휘한다.

삼성전자가 해외 AI 반도체 스타트업 제품을 수주한 것은 큰 의미다. AI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고, 훗날 이들 스타트업이 성장해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좋은 고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이종(異種)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한 칩처럼 작동하게 하고 AI 반도체에 적용하는 ‘3차원(3D) 패키징’ 사업을 내년부터 본격화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자료=삼성전자
자료=삼성전자

모처럼 자동차만 바라보던 우리 수출 전선에 단비가 내릴 전망이다. 초격차 기술개발은 물론  인재 양성, 혁신 생태계 구축으로 미중 패권 전쟁과 반도체 동맹을 잘 활용해 새로운 K-반도체 생태계를 굳건히 다져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