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프로모션 영상 中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프로모션 영상 中

게임산업이 또다시 젠더 이슈에 휘말렸다. 대형 게임사 넥슨과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뿌리 사이에 벌어진 사건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하청업체인 스튜디오 뿌리가 여성 우월주의의 상징인 ‘집게손’ 사인을 수년간 프로모션 애니메이션 곳곳에 아주 짧게 숨겨뒀다는 의혹을 받으면서다.

당초 사건은 원청과 하청 사이에 계약 위반으로 비쳤지만, 이내 젠더 갈등으로 변질됐다. 넥슨이 스튜디오 뿌리에 사과문을 강압하고, 여성 근로자를 부당하게 해고하게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스튜디오 뿌리의 공식 사과문도 차츰 변경됐고, 급기야 남성이 만든 결과물에 ‘남혐(남성혐오)’ 프레임을 씌웠다는 주장까지 내세웠다. 이 때문에 여성 단체는 잇따라 넥슨에 비판적인 입장문을 내놨다.

하지만 이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젠더 갈등이 아닌 게임 산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 약속을 깨트렸다.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금기시되는 ‘숨겨진 기능’과 원청·하청 간의 ‘계약 신뢰’, 그리고 ‘보편적 가치’ 추구다. 물론 담당자가 과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글도 주요 고객층에 공분을 일으키며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첫 번째 국내 게임 산업은 이스터에그(Easter Egg·개발자가 몰래 숨겨둔 메시지 또는 기능)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서구권에서는 개발자가 제공하는 하나의 재미 요소로 보지만, 국내에서는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이러한 숨겨둔 기능에 대해 심각히 경계한다. 당시 바다이야기는 법률이 정한 최고 당첨금이 2만원인데, 몰래 특정한 기능(연타)을 넣어 법의 허점을 파고들며 사회적으로 파장을 몰고 왔다.

이 때문에 게임 산업의 대표적인 규제 기관인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등급 분류를 매길 때 숨겨둔 기능이 있는지 찾는다. 게임사들은 등급 분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숨겨둔 기능을 최대한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제공한 것과 다른 숨겨둔 기능이 발견되면 일단 ‘등급 분류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집게손 사건은 소스코드가 영상 프레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두 번째는 원청과 하청 간의 계약 신뢰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애니메이션제작업종 표준하도급계약서 상 손해배상(제46조) 항목에 따르면 실제로 스튜디오 뿌리가 ‘집게손’ 이미지를 고의적으로 넣었다면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넥슨은 수년간 서비스하는 게임의 프로모션 영상을 스튜디오 뿌리에 맡겨왔으며, 스튜디오 뿌리는 지난해 넥슨과 네오플 매출 비중이 67%에 달할 정도로 신뢰 관계를 구축해왔다. ‘집게손’ 사건은 이러한 양사의 다년간 쌓아온 신뢰를 깨트린 것이다.

세 번째는 보편적 가치다. 이번 사건과 반대로 게임업계에서 남성우월주의 성향이 강한 일베(일간베스트) 콘텐츠를 넣으면 그대로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실제 지난 2015년 12월 31일에 출시한 ‘이터널 클래시’가 그것을 증명했다. 당시 게임성이 상당히 뛰어났던 이터널 클래시는 콘텐츠 곳곳에 일베식 용어를 숨겨뒀고, 게이머들에게 발각돼 순위가 수직으로 추락, 서비스 종료 수순을 밟았다. 남성과 여성 사이 차별을 떠나 보편적 가치에 맞지 않아서다.

집게손 사건은 단지 게이머 성비가 남성이 많아서 억지성 ‘남혐’ 프레임을 씌우고 여성 근로자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업계가 함께 정한 약속을 어기고, 기업 간의 신뢰를 깨트리고, 게이머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보편적 가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황대영 산업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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