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미국 시장조사업체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는 정보기술(IT) 및 통신, 소비자 기술 부문 세계 최고의 시장 분석 및 컨설팅 기관이다.

IDC가 며칠 전 낸 보고서가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 주가를 활활 타게 했다. 미국 반도체주 강세에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사상 최고치 경신을 거듭하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액이 내년에 반등하고 2025년에는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반도체 장비 매출이 내년 반등에 이어 2025년에는 전공정과 후공정 모두 성장해 1240억달러로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에는 생산능력 증대와 신규 팹, 전공정·후공정 부문 투자 강세로 반도체 장비 시장의 강력한 반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자료=Market Watch
자료=Market Watch

◆내년 반도체 활황은 빅사이클의 전초전

돌이켜 보면 올해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과 고성능 컴퓨팅(HPC, high-performance computing)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현상은 내년에도 이어져 스마트폰, 개인용 컴퓨터, 데이터 센터 같은 인프라와 자동차 부문의 탄력적인 성장과 맞물려 반도체 산업이 새로운 성장의 흐름을 탈 것으로 보인다. IDC 보고서를 참조해 향후 트렌드를 예상하며 반도체 시장의 키포인트를 다시 점검해 보기로 한다.

특히 우리 시장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가 그간 엄격한 공급과 생산량 통제 실시 결과로 반도체 가격 상승을 이끌어 낸 것은 반도체 산업 활성화에 주효했다고 보았다. 11월 초부터 D랩 가격 상승이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IDC는 주요 애플리케이션 전반에 걸친 AI 수요 확대가 전체 반도체 매출을 견인할 것으로 본다. 설계, 제조, 패키징, 테스트와 같은 여러 공정에 걸쳐서 활황이 가능해 올해 침체 국면과는 작별할 것이라고 봤다.

우선 내년에는 반도체 판매 시장이 연평균 20%의 성장률로 회복할 것이다. 스마트폰 수요의 점진적인 회복과 AI 칩 수요 호조에 따른 것이다. 그간 시장 수요 위축에도 공급망 재고 소진 과정이 지속돼 왔다.

올해는 전반적으로 12%대의 역성장이 불가피하나 이제 상황이 반전했다. 2023년 40% 이상의 메모리 시장 침체 이후 2024년에는 고가 고대역 메모리 (HBM, High Bandwidth Memory) 보급 확대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한 감산 효과가 가시화 해 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반도체 활황은 ADAS와 인포테인먼트가 이끌어

주목할 것은 AI보다도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과 인포테인먼트의 성장이다.

자동차 시장의 성장이 회복세인 가운데, 자동차 지능화 및 전기·전장화 추세는 분명하다. 이는 미래 반도체 시장의 중요한 성장 동인이다. 일반적으로 레벨2 자율주행 기술을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ADAS는 2027년까지 연간 성장률(CAGR) 19.8%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3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에도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현재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레벨2 자율주행 기술이 칩 수요를 이끈다고 전망했다.

2019년 자동차 반도체 매출의 40%를 담당했던 레벨2 자율주행 칩 매출이 2030년까지 85%로 두 배 이상 증가한다고 본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따라 2025년부터는 레벨3와 레벨4 자율주행 칩 매출도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특히 레벨4 자율주행 칩 매출은 연간 45.1% 성장률을 보인다고 전망했다. 차량용 반도체는 자동차의 센서, 엔진, 제어장치 및 구동장치 등 핵심 부품에 사용되어 ADAS와 같은 시스템을 구성한다. 사용자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산업용 반도체나 컴퓨터 및 스마트폰 반도체보다 높은 수준의 안정성과 내구성이 요구돼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에 해당한다.

완성차 업계가 요구하는 성능과 신뢰성은 물론, 충분한 납품 실적도 있어야 한다. 프리미엄 차량에만 있던 ADAS 기능이 중저가 자동차로 확산하며 기회가 늘고 있다. 자율주행 이전에 ADAS로 반도체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인포테인먼트는 2027년까지 CAGR이 14.6%이다. 반도체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엄청난 성장이다. 자동차 지능화와 연결성에 힘입어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포테인먼트란, 정보를 의미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오락적인 요소를 말하는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의 합성어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는 차 안에 설치된 장비들이 차량 상태와 길 안내 등 운행과 관련된 정보는 물론이고, 사용자를 위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를 지칭한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된 차량은 내비게이션을 통해 도로 정보를 안내해줄 뿐 아니라 운행 중인 지역 인근의 최근 맛집 정보를 공유하고 식당을 예약하는 등 IT 기술이 접목된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필요한 반도체는 빠른 연산속도, 그래픽 성능뿐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높은 신뢰성을 요구한다. 전반적으로 칩에 의존하는 자동차 전자 제품이 점점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번 반도체 사이클에서 반도체 수요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적인 투자회사 모건스탠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율주행차의 등장으로 2030년까지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약 25%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2040년에는 2배 정도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2040년에는 12개월 중 1달 이상을 차에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 스터디 리포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250억 달러(약 29조7000억 원)였던 전 세계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장 규모는 2027년까지 연평균 8%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428억5000만달러(약 50조90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개인용 기기 확산과 파운드리 반도체 수요

반도체 AI 애플리케이션이 데이터 센터에서 개인용 기기로 확산할 것이다. 데이터 센터는 더 높은 컴퓨팅 파워, 데이터 처리, 복잡한 대형 언어 모델 및 빅 데이터 분석을 요구하기 때문에 AI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의 발전으로 내년부터 더 많은 AI 기능이 개인용 기기에 통합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스마트폰, AI PC 및 AI 웨어러블 기기가 점차 시장에 출시될 것이다. AI 도입 이후 개인용 기기에 대한 애플리케이션이 증가해 반도체 수요 증가와 패키징 고도화를 자극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4년부터 삼성전자, 애플을 비롯한 주요 스마트폰 업체들이 제품 내부에서 AI를 구현하는 ’온디바이스 AI‘를 전격 지원하기로 하면서 반도체 업계에 따뜻한 바람이 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새로운 핵심 기능을 품으면서 스마트폰 자체 수요가 살아나고 스마트폰 내부에 들어가는 반도체 용량도 커질 수 있다. 팹리스기업 제주반도체, 칩스앤미디어, 퀄리타스반도체 등 온디바이스 AI 관련 반도체 주식이 11월 이후 크게 오른 이유이다. 온디바이스 AI는 외부 서버나 클라우드에 연결되지 않고 AI가 작동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존 반도체보다 성능이 뛰어나고 전력을 적게 쓰는 칩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파운드리 업계의 첨단 공정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파운드리 업계는 2023년 용량 가동률이 크게 하락하면서 재고 조정과 수요 위축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다만 일부 가전제품 수요 반등과 AI 수요로 인해 2023년 하반기 12인치 팹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며 첨단 공정의 회복이 가장 확실시되고 있다. TSMC와 삼성·인텔의 노력, 최종 사용자 수요의 점진적인 안정화가 예상된다. 내년 글로벌 반도체 파운드리 업계의 여하간 두 자릿수 성장이 예상된다.

자료=IDC
자료=IDC

파운드리 업계는 2024년과 2025년을 더욱 기대한다. 올 하반기가 실적 개선 가능성을 점치는 시기라면, 내년부턴 본격적인 실적 반등이 이뤄질 수 있다. IDC는 내년 파운드리 시장 규모가 1245억달러로 올해보다 18.2% 급증한다고 봤다. 2025년 역시 2024년보다 19.7% 늘어난 1490억달러 규모로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첨단 반도체가 필요한 AI 등의 응용처 수요가 늘면서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들의 생산능력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2026년까지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12인치(300㎜) 파운드리 생산능력 증가율이 연평균 13%에 이를 것으로 봤다. 삼성전자 역시 첨단 공정 중심으로 파운드리 시설투자(CAPEX)를 늘리겠단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물론 중국의 생산 능력 성장과 성숙 공정으로 가격 경쟁 심화가 예상되는 대목이 있긴 하다. 중국은 미국의 생산 금지 조치 영향으로 생산 능력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산업계는 용량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특혜를 주고 있어 비중국 파운드리에 대한 압박이 예상된다. 이는 공급업체와 협상력 회복을 위한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국내 반도체 관련 주가에 훈풍이 불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8만 전자를 눈앞에 뒀다. 9만 전자, 10만 전자까지 갈지 주목된다. 글로벌 금리 전망과 반도체 업황 등 우호적인 거시 경제 환경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하고 있어서다.

이달 중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언급으로 증시에 유동성이 늘어나리란 기대가 형성된 데 이어, 생성형 인공지능(AI) 수요 증가로 삼성전자가 강점을 가진 HBM(고대역폭메모리) 실적 반등도 예상된다.

미국의 메모리반도체 제조사 마이크론이 지난 21일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한 게 반도체 업황 개선을 기대하는 근거가 됐다. 마이크론의 2024회계연도 1분기(2023년 9~11월) 매출액은 47억3000만달러(6조1200억원)로 한 해 전 같은 기간보다 18% 증가했다.

여기에 다음 분기 매출액 전망치(가이던스)도 53억달러에 달해 시장 예상치(51억달러)를 웃돈다. 마이크론 훈풍과 함께 반도체 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가를 견인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시장 전반으로 확산돼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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