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이대로면 호모사피엔스 최초로 대한민국 '멸종'
이미 교육, 국방, 제조업, 복지에 파괴적 인구재앙 현실화

 여의주를 문 두마리의 청룡 사이로 태양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김제 벽골제, 2024)
 여의주를 문 두마리의 청룡 사이로 태양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김제 벽골제, 2024)

상서로운 힘을 지닌 푸른 용(靑龍)이 새해의 출발을 알리며 구름을 뚫고 힘차게 날아올랐다. 

우리 민속 전통에서 용은 생명의 근원인 비와 구름을 몰고 다니는 영험한 상징이다.  용은 승천하는 희망의 절대 영물이다.  패배, 슬픔, 불행과는 거리가 멀다.  새해가 삶의 무게에 지친 국민들에게 위안과 행복의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속의 동물에게 새해의 기원을 싣는 것은 현실이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 나라의 안과 밖을 둘러보면 감당이 쉽지 않은 난제가 산적해 있다. 

나라 밖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계속되면서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이 안보, 외교, 경제 등 전방위로 가열하면서 글로벌 신냉전의 골은 깊어만 간다. 이런 흐름이 리스크를 키우면서 세계경제의 역동성을 갉아먹고 있다.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신냉전의 양극화 속에 미국, 일본 등과 밀착하면서 한국과 북중러의 대치는 첨예해지고 있다. 특히 북한과의 적대관계 심화는 언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지경이 됐다. 

국민의 삶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이끌어야할 정치는 여야의 진영대결이 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국민의 불안을 증폭하고 있다. 경제는 성장률(한국은행 전망)이 지난해 1.4%에서 올해엔 2.1%로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의미있는 반등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기초체력이 취약하다. 

이런 가운데 소리없이 광속으로 진행되는 인구 기반 붕괴는 대한민국의 소멸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화급한 국가적 화두가 됐다. 최근의 인구 통계들은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0'순위는 북한의 핵무기가 아니라 인구임을 보여준다.  그만큼 상황이 절망적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평균  출생아 수)은 2022년 0.78명에서 작년엔 0.72명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는 0.68명으로 더 낮아질 전망이다. 한국에 이어 OECD 2위인 이탈리아의 합계출산율이 1.23명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합계출산율은 지난 1983년 인구유지선(2.1명)이 무너진 이후 19년만인 2002년 초저출산(1.3명) 국가에 진입했고, 그로부터 16년 후인  2018년엔 1.0명대가 깨졌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 질병, 기근이 아닌 상태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출산율이 떨어진 사례는 없다. 대한민국을 하나의 생물학적 종으로 볼 경우 호모 사피엔스 최초의 '멸종 위기종'임이 분명해졌다. 

통계청이 작년 12월 내놓은 향후 50년간의 장래인구추계(2022~2072년)는 대한민국의  충격적 미래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총인구(중위추계 기준)는 2022년 현재 5167만명에서 2072년엔 3622만명으로 줄어든다.  100년후인 2122년엔 1935만명으로 쪼그라든다.  최악(저위추계)의 경우 100년후 인구는 1084만명으로 줄어 지금의 서울인구 정도만 남는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는 인구 5000만명대의 대한민국이 1000만명대의 도시국가로 전락하는 모습을 리얼하게 목도할 것이다.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향후 50년간 3674만명에서 1657만명으로 반토막 이하로 감소한다. 같은 기간 고령인구(65세 이상)는 898만명에서 1727만명으로 배가 늘어나고,  0~14세의 유소년 인구는 595만명에서 238만명으로 절반가까이 줄어든다. 유소년 인구 1명당 고령인구 7명꼴이다.  이쯤되면 거리에서 아동은 찾기 힘들고 온통 세상은 노인천지가 될 것이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고령화는 생산과 소비 등 경제와 공동체의 존속 기반을 잠식해 국가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한다. 벌써 교육과 국방, 제조, 복지 현장에서 파괴적 인구재앙은 현실화했다. 정원을 못채우는 대학이 속출하고, 초중고교 폐교로 교원 수급시스템이 붕괴했다. 징집 대상 감소로 50만 대군은 커녕 30만명 유지도 어렵게 됐고, 농수산 서비스업, 제조업, 요양의료업은 인력난으로 외국인을 쓰지않고는 존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지금의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하면 멀지않아  젊은층은 노인을 부양하느라 소득 대부분을 세금으로 바쳐야할 것이고, 국가재정은 파탄날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문제의 파멸적 상황에 대한 우려는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세계적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수퍼드대 교수는 지난 2006년 유엔인구포럼에서 한국이 지구상 최초의 '인구소멸국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해 합계출산율은 1.13명이었다. 지난 2017년 9월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였던 크린스틴 라가르드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언급하며 "집단 자살사회"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12월초 칼럼에서 우리나라의 인구문제를 최악의 인구격감을 몰고왔던 14세기 유럽의 흑사병보다 더하다고 진단했다. 

상황 반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의 사회동향 조사(2023년)를 보면 젊은층의 결혼 기피는 심각하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20대 여성의 경우 27.5%에 불과했다. 30대 여성은 이 비율이 31.8%였다. 출산의 주체인  20~30대 여성의 70~80%가 결혼에 유보적인 셈이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풍조는 이제 자연스럽다.  20~30대의 44.1%가 무자녀를 '긍정적'이라고 했다.  

결혼을 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20~30대의 32~33%는 '결혼자금부족'을 꼽았고, 11%는 '출산과 양육 부담', 9~10%는 '직업과 고용상태 불안정'을 들었다. 결혼자금이란 주택이나 전세자금을 뜻한다. 결국 주거공간 확보와 일·가정의 양립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정부는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정책적으로 '저출산 고령화' 개선에 나서 작년까지 380조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을 뿐 출산율의 급전직하를 막는데 실패했다. 역대 어느 정권도 인구문제를 국가의 사활적 현안으로 다루지 않았다. 당장 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놓은 대책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파편적, 피상적. 포퓰리즘적이었다. 

우선 압축성장 과정에서 우리사회가 강요한 '경쟁과 성공의 방식'이 초래한 젊은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읽지못했다. '서울', '강남', '똘똘한 한채',  'SKY', '대기업', '의사'가 성공의 척도가 됐다. 그 반대편에 '지방', '지방대', '중소기업', '비정규직', '무주택자'가 있다. 이런 협소한 계급의 사다리와 경쟁 구도는 젊은층의 재생산을 극도로 억제한다. 생존 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제 몸 하나도 추스르기 힘든 터에 자녀를 가진다는 건  사치일지 모른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이런 사회문화의 구조적 환경을 뒤집는데 국가의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2차적으로는 당연히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싶은데 경제적 환경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즉, 주거와 보육, 일과 가정의 양립을  국가가 보장해야한다. 

이는 간단한 과업이 아니다. 서울과 강남공화국이라는 단극 시스템 탈피는 시급하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터를 잡을 수 있는 지방 거점도시를 성공적으로 육성해야한다. 국가의 인재들이 의사만이 아닌 다양한 직종과 직역으로 분산되도록 유도해야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젊은층의 주거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춰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인구문제에  온 나라가 혼연일체로 달려들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인식과 사회적 관행, 법과 제도, 재정 투입에서 국가 개조 수준의 혁명적 '뉴딜'을 요구한다.  필요하다면 국가부채가 치솟는한이 있어도 나라 곳간을 허물어야한다. 인구컨트롤타워로 부총리급의 '인구부'를 제안한다. 대통령 집무실 머리맡에 인구문제 상황판을 걸고, 대통령과 모든 내각 구성원이 참석하는  '비상국가인구안보회의'를 최소한 분기별로 정례화하라. 

통계청의 인구추계를 보면 6년 후인 2030년까지 총인구는  2022년 대비 116만명이 줄지만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보다 257만명이 감소하고, 고령인구는 400만명이 증가한다.  이후엔 이런 추세가 걷잡을 수 없이 가팔라진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아무리 애를 써도 합계출산율을 인구 유지수준(2.1명)으로 끌어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초저출산율(1.3명) 이상으로 회복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출산율 추락에 브레이크를 걸어 괴멸적 인구파탄을 막을 시간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절망의 나락에서 역사상 최단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기적의 민족이다. 그 기적의 DNA를 살려 '청룡'의 해인 올해를 인구재앙 극복의 원년으로 만들어보자.    

김종현 본사 편집인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