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주식투자가라면 삼성물산과 SK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 UBS는 포스코, SK, 대림산업, 호남석유를 적대적 인수합병(M&A) 노출 가능 기업으로 제시했다. 이를 떠나 그간 헤지펀드들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관련 이야기를 회상해 보기로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적대적 M&A 대상

2019년 국민연금공단이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현대자동차그룹 고배당 요구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미국 최대 규모의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변호사 출신인 폴 엘리엇 싱어가 1977년 설립한 헤지펀드계의 거물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요구한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배당 수준이 과도하다고 본 것이다. 당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현대자동차에 주당 2만1967원의 현금 배당을, 현대모비스에는 주당 2만6399원의 배당을 제안했다.

그로부터 5년 후 현대차를 둘러싼 싼 배당금은 과거가 됐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주주에게 5조원이 넘는 돈을 돌려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대차는 보통주 1주당 8400원을 배당한다고 지난달 25일 공시했다. 지난해 2·3분기 배당금(3000원)을 합하면 1만1400원을 배당한 셈이다. 전년 대비 63% 증가한 역대 최고 수준이다. 현대차가 지난해 주주에게 돌려준 배당금 총액은 2조9000억원이다.

현대차는 앞으로 배당성향을 25% 이상 유지할 계획이다. 당기순이익의 4분의 1 이상을 주주에게 돌려주고 자사주도 소각할 의사를 피력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팔을 걷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매년 전체 발행 주식의 1%(210만 주)를 소각하겠다는 현대차의 소식은 청산가치에도 못 미치는 주식을 그저 자식에게 배당으로 물려주려는 일부 몰지각한 경영인에게 경고장으로 들린다. 기아도 2조2000억원을 들여 1주당 5600원을 배당금으로 주기로 했다. 기아의 배당성향은 25% 수준이다.

2015년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으로 하여금 기업가치제고 요구를 했다. 지금까지도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갈등이 봉합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삼성물산을 둘러싼 헤지펀드의 입김은 거세지고 있다.

영국계 행동주의펀드 팰리서캐피탈(Palliser Capital)도 그 전선에서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기업가치가 매우 저평가돼 주주환원을 확대하고,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를 개선해 가치를 끌어올리란 제안을 했다.

팰리서캐피탈은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5.01%)에도 못 미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주식을 투자한 이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삼성물산이 주주환원정책에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오는 15일 이사회를 연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자사주로 보통주 2471만899주(13.2%)와 우선주 15만9835주(9.8%)를 향후 5년 내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매년 소각하는 자사주 규모와 시기는 그해 이사회에서 별도로 정한다. 2025년까지 3년간 매년 관계사 배당수익의 60~70%를 현금 배당 방식으로 주주들에게 환원할 계획이다. 

1월 주식시장이 좋지 않았지만 이러한 주주환원 덕에 현대차, 삼성물산, SK의 주가는 폭등했다. 물론 이는 정부가 한국 증시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차원에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방침이 한몫했다.

증권가에서 ‘저PBR주’를 주목하자 관련 주식이 급등했으나 단기적으로 지속성이 얼마나 오래갈 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정부의 방침이 일본의 주가부양 정책을 벤치마킹하였던 간에 저PBR주 관련 기업들은 주주가치 제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 사건 1심 재판 선고가 2월로 연기됐다.

◆고령화 세대와 주주가치 제고의 중요성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배당 기업 투자를 배당시즌에 높은 배당기업에 단기 투자하는 개념으로 인식해 왔다. 하긴 배당수익률이라고 해봐야 전체는 1% 미만이고 고배당주식이라고 해야 2%정도인데 지금 현대차, 기아차, 포스코홀딩스 등 한국의 대표기업은 배당성향도 높고 분기배당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배당률이 낮았던 이유는 고성장, 고금리, 기업 지배구조의 낙후성이 과거부터 지적돼 왔다. 오랜 저금리 시절에도 배당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오너지배기업은 현금을 사내 유보하려는 경향이 높은데 어떤 기업의 경우 영업이익이 시가총액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고성장 시기에 기업은 투자 수익률이 높아 이익을 재투자하기 위해 배당을 줄이고 고금리 하에서는 투자자들은 채권과 같은 고금리 상품에 투자를 해서 배당에 큰 관심을 갖지 않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저성장 시대에는 주주는 기업의 재투자수익이 낮기에 경영진에게 배당을 늘리도록 압박하고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도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고령자에게는 현금 흐름의 안정이 중요하다. 기관 투자가가 기업이 배당을 제대로 하도록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해 주식의 간접투자 활성화를 요구할 것이 오랜 기간 요구돼 왔다.

저금리 기조와 고령화 현상으로 개인들의 자산운용 패턴에도 일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초 간접투자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실물경제와 주식시장, 금융산업의 성장이 동시에 가속화되는 선순환구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현실을 보자.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가의 비중이 64% 수준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증시 개인 투자자는 502만명에서 1424만명으로 3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만 해도 개인은 500만~600만명 수준이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폭증해 지난해 1400만명을 돌파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다.

개인 투자자가 많아지자 시장의 쏠림이 심해져 거품이 끼는 등 가격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발생한다. 펀드가 ‘직접투자’ 보다 좋은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우리나라에서 기관투자가에 대한 신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1월 국내 시장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정부가 주식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기업의 역할도 고령화 시대에 반길 이야기이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처방을 해야 할 것이라 본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주식투자를 하면 망한다는 말은 사실에 가깝다. 개인투자자 중 주식시장에서 꾸준히 수익을 내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유례없는 공매도 ‘기습 전면 금지’도 주가하락을 막지 못했다.

우리나라 증시 하루 거래 대금을 보자. 금지 이전에 공매도 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은 경우 5% 수준이었다. 40%대에 달하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 자본시장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공매도 거래가 외국보다 활발하지 않은데도 개인들이 공매도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내 증시에서 개미들의 외국인과 국내 기관투자가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신뢰의 적자(赤子) 속에서 무엇보다도 국민연금을 비롯하여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가간의 신뢰 회복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 무척 중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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