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2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다둥이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이 2월 5일 오전 서울 중구 부영빌딩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다둥이 가족에게 출산장려금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독특하고 투박한 부(富)의 사회 환원으로 화제를 모으는 이중근(83) 부영그룹 회장이 이번엔 대한민국의 고질인 저출산문제에 '단순 명쾌한' 해법을 들고나왔다.

이 회장은 최근 회사 시무식에서 지난 3년내에 태어난 직원 자녀 70명에게 '출산장려금' 명목으로 1인당 1억원의 현금을 쐈다. 연년생, 쌍둥이 자녀 직원은 2억원을 받았다. 

이 회장은 국가로부터 토지가 제공되는 것을 전제로  셋째까지 출산하는 임직원에게는 출생아 3명분의 출산장려금 3억원이나 국민주택 규모의 영구임대주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돈을 받은 한 직원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믿어지지가 않는다. 외벌이로 아이를 키우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정말 피부에 와닿는 도움이 됐다"고 감격했다.

이 회장의 행보는 충격적이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인구유지선(합계출산율 2.1명)이 무너진 지난 1983년 이후 40여년만에 나온 정부와 민간을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저출산 대책이라는 점이다. 정부도 기업도 그동안 이처럼 본심으로 인구문제에 접근하지 않았다.   

이 회장이 저출산의 심각성에 주목한 논리는 단순했다. 지금처럼 아이를 낳지 않으면 향후 20년후 군대와 경찰을 유지하지 못해 국가안보가 어려워지고 그렇게되면 국가존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작년 합계출산율은 0.7명선이다. 올해는 0.6명대로 떨어진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나 기근, 페스트 등의 대재앙이 아닌 평화의 시기에 이처럼 출산율이 낮은 국가는 없었다.  출산 통계는 과학이다. 대한민국의 소멸은 이미 정해진 미래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변죽만 울리고 있다. 젊은층이 '이 정도면 아이를 낳고싶다'라고 할만한 주거, 보육, 고용 대책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있을때마다 저출산 문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라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실천하는지 묻고싶다. 

최근 KBS와 대담에서 윤 대통령은 저출산 정책을 얘기하면서 '우리사회의 과도하고 불필요한 경쟁' , '가정을 중시하고 휴머니즘에 입각한 가치', '지방균형발전'을 거론했다. 너무 한가하고 뜬구름 잡는 레토릭이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종잡을수가 없다. 

여야당의 대책도 핵심을 찌르지 못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올 봄 총선 1호 공약으로 부총리급의 인구부 신설, 아빠휴가 1개월(유급) 의무화, 육아휴직급여 인상 등을 내놨다. 이 정도로 출산율을 높일수 있을까. 그나마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달 페이스북에 헝가리식 모델을 다시 언급하면서 "결혼 시 2억원을 20년 동안 연 1% 수준 초저리로 대출해주고, 자녀를 1명 낳을 때마다 3분의 1씩 원금을 탕감해주자"고 했지만 국민의힘이나 정부에서 아무런 메아리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모든 신혼부부에게 10년 만기로 가구당 1억원을 대출해주고 첫째를 낳으면 무이자, 둘째를 낳으면 원금 50% 감면, 셋째를 낳으면 전액을 감면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표는 여기에 더해 대학 학비까지 전액 국가가 책임지는 것을 포함하는 '출생기본소득'도 제시했다. 국민의힘보다는 훨씬 앞서보이지만 재원 조달방안은 없다. 

표를 사기 위해  가덕신공항(13조7000억원)과 달빛철도( 9조원)에 천문학적인 국민혈세를 투입하는데는 의기 투합한 거대 양당이 국가의 명운이 달린 저출산 극복에 쓸 구체적인 예산 조달책은 내놓지 않았다. 경제성이 의심되는 사업엔 빚이라도 내겠다는 사람들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국채를 찍겠다는 발상은 왜 못하나. 

작년 출생아수는 약 23만명선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1인당 1억원씩 준다면 연간 23조원, 2억원씩 주면 46조원이 필요하다. 인구와 학생수 감소분만큼 공무원·교사수를 줄이고, 가덕신공항, 달빛철도 같은 포퓰리즘 사업을 폐기하고, 하는일 없이 고연봉을 챙기는 국회의원 세비를 3분의 1 정도로 줄이고, 순수 저출산관련 예산(올해 약 17조6000억원) 등 복지예산을 잘 아우르면 이 정도 예산 확보는 가능하다고 본다. 

예산을 쥐어짜도 모자란다면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하라.  인구절벽으로 나라가 없어질 판에 건전재정 운운할 것인가. 국가 세수의 기반인 적정 인구 유지를 위해 국가부채를 늘려야 한다면 이는 투자이지 낭비가 아니다. 반도체나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미래산업에 투자하듯 인구에 투자해야한다. 

이중근 회장은 경영인의 본능적 감각으로 출산 대책은 이렇게 해야 약발이 듣는다고 '시범'을 보였다. 이 회장의 바람대로 삼성 이재용 회장이나, 현대차 정의선 회장, SK 최태원 회장, LG 구광모 회장과 같은 굴지의 대기업 총수들도  동참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책임질 일이지 기업이 떠안아야할 사안은 아니다.

물론 이중근식 해법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정답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여전히 높은 집값, 보육과 사교육비 등의 과도한 경제적 부담,  취업 지옥 등을 고려할 때 현찰 1억원 정도로 출산을 유인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정부가 수십년간 지속했던 '언발에 오줌누기'식의  별볼일 없는 대책과는 궤를 달리하는 '쇼크요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 접근 방식도 부영그룹처럼 파격적이고 감동적이어야한다. 출산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가져볼까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수 있을 정도의 '먹음직한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 신혼부부의 주거부담을 해소하고, 출생부터 대학졸업까지 보육 부담에서 해방하며, 여성의 양육 독박을 없애고, 새로 태어날 아이의 20~30년후 일자리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토털 서비스'만이 이 망국적 인구 재앙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책이다.

김종현 본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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