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저자).

[서울와이어 편집국 ]고성장시대에는 생산성 증대로 유동성을 웬만큼 풀어도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만 저성장시대에는 통화량 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빠르다. 저성장기에 섣부른 경기부양 기대효과는 작은 데다 인플레이션 해악은 커지기 쉽다. 생산성 침체기에 재정적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면서 현물선호 현상까지 벌어지기 쉽다.

부가가치 창출과 관계가 없거나 심지어 배치되는 분야에 대한 과다 정부지출은 시차를 두고 악성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고 다시 성장잠재력을 저해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저성장기일수록 선심성 정책을 반복하다가 만성인플레이션 나아가 포퓰리즘 길목으로 접어들어 되돌리기 어렵게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포퓰리즘 국가들 대부분이 기초경제력 확충보다 민심 달래기에 급급해 돈을 풀다가 어느결에 만성인플레이션이 덮쳐 경제순환 틀을 왜곡시켰다. 경기침체 또는 저성장 기조에서 선심성 돈 풀기로 말미암은 재정적자는 인플레이션과 그 기대심리까지 부추겨 걷잡을 수 없는 악성 인플레이션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생산성 향상이 정체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통화 공급을 확대하다 보면 화폐가치를 점점 더 타락시켜 끝내 민생을 도탄에 빠트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우려가 있다. 저성장 기조로 가는 과도기 상황에서는 재정팽창보다는 재정안전성 확보가 오히려 물가안정을 통하여 민생안정으로 성장잠재력을 키워가는 길이다.

한국경제는 인플레이션이 쉽게 수그러들 거라는 일각의 기대와 달리, 조금 멀리 생각하면 공급과 수요 양쪽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번질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한다. 기초체력 약화로 생산성 (상대적) 정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데다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후유증으로 상당 기간 시달려야 할 형편이다.

이 같은 국면에서 저성장 탈출을 위한 경기부양 유혹을 받기 쉬워 물가상승 압력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인플레이션과 생산성 침체는 톱니바퀴같이 맞물려 돌아가는 경향이 있어 허튼 경기부양은 물가불안만 부추기며 경제를 무기력 증상에 빠트릴 우려가 크다.

대중영합주의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략적으로 선심성 정책을 표방하다가 나라 경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선심과 선동으로 국민을 바보로 만들면서 지지를 이끌려는 수작이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표면적 명분으로 선심성 지출이 계속되면 나라 살림을 파탄 내어 사회적 약자를 더 어려운 국면으로 이끈다. 과거의 경험을 보더라도 일단 포퓰리즘에 물들기 시작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 아르헨티나는 페로니즘(Peronism)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며 대중인기에 영합하다 여러 차례 모라토리엄 사태를 겪어 시민들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이 계속 잠식돼 2023년 현재 1%대로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확충보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성장률을 높이겠다고 돈을 풀다 보면 돈이 생산부문으로 흐르지 못하는 유동성 범람을 초래한다.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선심성 예산을 낭비하다 만성 물가불안을 유발하면 빈익빈을 심화시켜 경제적 약자를 더 고달프게 하기 마련이다.

한국경제는 저성장 국면에서 세계 경제패권 경쟁이 거세지는 가운데 경기부양 욕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칫 악성 인플레이션에 휩싸이는 포퓰리즘 갈림길에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우물쭈물하다 포퓰리즘 심리가 자리 잡으면 대가를 크게 치러야 함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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