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서울와이어 편집국 ]국내 조선업체들이 앞으로 3~4년치의 일감을 확보해 둔 상태에서 신조선가지수가 지속 상승하고 있다. 신조선가지수는 조선사가 새로 선박을 건조할 때 가격의 향방을 알려주는 지표다.

대표적 해상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3월 현재 1770대를 오르내리며 1년 전보다 95% 상승했다. 벌크선운임지수(BDI)도 2370으로 지난해 3월보다 47.8% 올랐다.

◆클락슨 신조선가지수, 15년 만에 최고

조선해운업 리서치 기관인 클락슨이 매주 발표하는 신조선가지수로 시장은 시황의 부침을 가늠한다. 1988년 1월의 선가지수 100이 기준점이며 이달 1일 181.45를 기록했다. 180을 넘은 것은 2008년 이후 15년 만의 일로 2008년 최고점을 경신할지 세계가 주목한다. 중고선가도 ‘홍해 사태’ 등으로 해상 운임이 오르자 배를 더 구하려는 선사가 늘어 동반상승하고 있다.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와 중국 신조선가 지수 추이.
클락슨 신조선가 지수와 중국 신조선가 지수 추이.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지난달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340만CGT로 1년 전에 비해 18% 증가한 것으로 발표했다. 한국은 이 중 50%인 170만CGT를 수주해 41%의 중국을 제치고 1위를 탈환했다. 국가별 수주 잔량은 중국이 6200만CGT로 전체의 50%를 차지했으며 한국은 3800만CGT로 점유율 31%를 보였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만 하더라도 조선업 피크 아웃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조선업황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밝아졌다. 그간 조선 3사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등을 배제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고부가 선박 위주로 선별 수주를 진행해왔다.

무분별한 수주 경쟁을 통해 도크를 저렴한 선박으로 채우기보다는 고부가 선박 비중을 높여 내실을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업체들이 고부가 선박에 집중하는 이유엔 중국 업체들의 수주 물량이 늘어난 탓도 있다. 중국 조선사들은 저가 전략을 바탕으로 수주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 LNG 운반선, 하이브리드선 등 고부가시장에선 국내 업체들의 입지가 탄탄한 상태다.

◆조선산업과 미·중 패권 전쟁

조선산업이 미·중 갈등의 새로운 전쟁터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보조금과 세제 혜택으로 전 세계 조선시장의 절반 이상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는 우려를 표명한다. 미국이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을 완전히 넘겨주면서 해상 지배권을 중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여론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확산하고 있다.

전미철강노조(United Steelworkers)를 포함한 미국의 5개 노조는 지난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 해양, 물류, 조선 분야에서 이뤄지는 중국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관행을 철저히 조사에 줄 것을 공식적으로 건의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청원서를 보자.

“중국이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 정책, 관행을 통해 해양, 물류, 조선부문에서 세계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조선 산업에 수십억달러를 쓰면서 국내 철강 생산업체에 원자재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조선 산업에 대한 적절하고 실행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

노조는 중국이 지난 20년간 다양한 반(反)시장 정책을 도입해 글로벌 운송·물류 네트워크를 장악한 반면 미국의 선박 건조 능력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이러한 청원은 외국 정부가 미국에 차별적인 무역 정책을 펼 경우 USTR이 청원을 접수한 날로부터 45일 이내에 이를 즉각 조사할 수 있도록 한 무역법 301조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중국과 철강 무역 전쟁을 시작할 때 인용한 조항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98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옥포조선소와 대우자동차 군산공장 등을 둘러봤다. 옥포조선소를 둘러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발언을 했다.

“구축함의 내부와 외부를 개조하면 훌륭한 요트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축함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없겠느냐.”

미국 내 조선업이 몰락한 지는 오래됐다. 미 해군 정보국(ONI)에 따르면 중국 조선소의 생산 능력은 약 2325만GT(총톤수)인 반면 미국은 10만GT가 안 된다. 배를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과 공급망이 없으면 해양 지배권을 내줄 수 있다.

최근 선박이 단순 물류 운송 수단을 넘어 항구, 화주, 해운사와 같은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데이터를 다루는 글로벌 플랫폼이 될 전망에 중국 견제 의견이 강해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하면 미·중 무역 갈등은 더욱 격화하고 한국 조선 3사가 반사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이 중국으로 제재를 가하면 중국 조선사가 그동안 향유한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 국내 조선사에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선박 발주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점을 들어 실제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 한국 수주잔량 가운데 2%만 미국 선주와의 계약 건이고 현재 중국에 선박을 발주하는 미국 회사는 거의 없다. 여하간 미국의 조선업 쇠퇴가 미국 해군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론이 어떻게 펼쳐질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1998년 6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1998년 6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올해도 조선 3사 수주 증가 전망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조선 3사는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에서 모두 전년 대비 개선된 실적을 시현했다. 매출액을 보면 HD한국조선해양은 전년 대비 23.1% 증가한 21억2962억원, 삼성중공업은 34.7% 늘어난 8조94억원, 한화오션은 52.4% 성장한 7조4083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수익성 측면에서 개선세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823억 원으로 전년 대비 흑자전환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조선 부문 수주 잔량은 총 436척이다. 이 중에서 고가 선박인 LNG와 액화석유가스(LPG) 선박이 179척이다. 컨테이너선 142척을 넘어선다.

삼성중공업도 선별수주와 저가수주 해소 영향으로 지난해 영업이익 2333억원을 기록하며 2014년 이후 9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한화오션만 영업손실 1965억원으로 적자가 지속됐으나 손실 폭이 전년 대비 1조4171억원 줄었다.

올해 HD한국조선해양은 수주 목표를 전년 대비 14.2% 적은 약 135억달러로 공시했다. 반면 삼성중공업은 올해 수주 목표를 전년 대비 2.1% 오른 97억달러, 영업이익 목표는 두 배 오른 4000억원으로 잡고 선별수주 전략을 이어간다. 삼성중공업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위 그래프는 KDB 산업은행이 바라본 올해 세계 조선 산업 동향과 전망이다. 경기불확실성에도 신조선가는 높아지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탱커선, 벌크선의 노후선 교체와 미국의 LNG선 발주 기대로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2023년 대비 5.9% 증가할 전망이다.

우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해 보호무역주의를 더욱 강화할 경우 조선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2017년에는 미국발(發) 보호무역주의로 축소된 물동량으로 선박 수요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트럼프의 화석 연료 예찬에 따른 국제유가 하락 가능성이 조선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물론 세상은 바뀌었다. 트럼프이건 바이든이건 LNG가 중요한 세상이 되고 있다. 여하튼 한·미 관계 강화로 미국과 K조선과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방향성을 모색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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