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위키피아, 프랑스 ‘생 드니 성당’]

 

[서울와이어] 서양 악기 중 ‘파이프 오르간’은 유독 낯설게 느껴지며 경건해지는 악기이다. 교회나 성당에 주로 보이는 파이프 오르간이 교회용 음악으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회, 성당, 선교 센터와 관계없는 세종 문화 회관, 한국 종합 예술 학교 음악원, 롯데 콘서트 홀 등의 연주 홀이나 심지어 호텔 인터불고에서도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곳을 본다. 이는 교회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교회용 악기가 연주회용 음악으로, 클래식 음악으로도 대중화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르간의 역사는 기원 몇 세기 전부터 찾을 만큼 오래된 시조를 가지고 있으나, 바로크 시대의 바흐가 많은 오르간 음악을 작곡함으로써 마치 바로크 시대에 생겨난 교회 음악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만큼 오르간 음악은 바로크시대에 많이 성행했던 악기로 교회 음악의 코랄을 이용한 여러 장르와 오르간 즉흥 음악도 등장했다. 그러나 고전시대를 맞이하면서 거의 오르간 음악은 사장 될 정도로 묻혔다. 오르간은 크고 작은 전쟁으로 사라졌으며 대중들은 점차 살롱 음악을 즐기며 오페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사라져 가던 오르간 음악이 급성장을 했다. 더욱이 교회 음악뿐 아니라 연주회 음악으로 연주 홀에서도 연주할 수 있는 발전된 오르간이 생겨난 것이다. 

그 뒷면에는 남의 말을 잘 경청한 사람이 있었다. 《윌리엄 텔》, 《세비야의 이발사》로 잘 알려진 로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가 젊은 오르간 제작가인 카바이예-꼴(Aristide Cavaillé-Coll, 1811-1899)에게 생 드니 성당(Basilique de Saint-Denis) 오르간 제작 경합에 응시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프랑스에 있는 생 드니 성당은 역대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묻혀 있으며 ‘부르봉 가문’의 후손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태양의 왕인 루이 14세는 물론 루이 15,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루이 17세는 심장이 안치되어있는 곳이다. 그러한 성당에 젊은 오르간 제작자를 추천한 것이다.

 

카바이예-꼴도 흘려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로시니의 말을 받아들였으며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연소로 오르간 제작에 합격한다. 오르간과 과학을 접목으로 만든 생 드니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은 수년간 설계를 통해 완성되었다. 이후 카바이예-꼴은 생 슐피스 성당, 생 클리틸드 성당 등에 오르간을 설치하게 되었다. 프랑크, 길망, 비도르 등의 프랑스 오르가니스트들은 카바이예-꼴이 제작한 오르간에 연주회용 오르간으로 새롭게 작곡하고 즉흥 연주하며 오르간 음악을 발전시켰다. 

 

[카바이예-꼴이 1890년에 제작한 오르간 St. Ouen 성당- 비도르 《토카타 5번》]

 

<글 : 김유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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