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신세철 경제 칼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2012년 초 미연준이 고용안정과 물가안정을 동시 달성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물가안정목표(inflation targeting)를 2.0%로 정하자 각국이 뒤따랐다. 당시 미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 중반이었다.

적정물가상승률을 0%가 아닌 2.0%로 산정한 까닭은 상품이 유통하면서 이익이 나야 상품이동이 순조롭고 경제순환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 소비자물가가 크게 오르고 근원물가상승률도 4~5%를 넘나들자 물가안정목표치를 2.0%보다 높이자는 논의가 월스트리트에서 일어났다. 낡은 목표치에 집착하다가는 경제상황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저변에는 금리상승을 억제해 위축된 증권시장을 활성화시키자는 뜻이 담겨있다.

각국 중앙은행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적정수준으로 유도하기 위해 금리를 조정한다.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물가상승률은 각국이 정한 물가안정목표 수준으로 수렴시키려 한다. 실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으면 경기가 과열됐다며 기준금리를 올려 경기를 진정시키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금리를 내려 경기를 진작시키려한다.

물가가 물가안정목표를 넘어서면 물가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그보다 낮으면 금리하락을 유도하겠다는 뜻이다. 물가안정목표 설정은 중앙은행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물가수준을 관찰하고 금리변동을 합리적으로 예측하도록 해 정책과 시장 간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효과를 가진다.

20세기 말 이후 코로나19 유행 이전까지는 전 세계 물가가 안정되자 대다수 경제선진국은 물가안정보다는 되레 소비수요 기반 확충을 도모했다. 재정적자와 통화량을 방만하게 팽창시킨 포퓰리즘 국가를 제외하고는 물가가 안정되어 일부 선진국들은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예컨대, 일본이 엔화가치 추락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까닭은 급격한 고령화로 도대체 물가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수입을 예상하지 못하는 노인들이 연금을 다 소비하지 않고 저축에 힘을 기울였다. 지난해 말 들어 일본 물가가 모처럼 4.0%까지 치솟자 기준금리 상승을 기대해 엔화가치가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경제성장률보다 물가상승률이 높은 비정상 환경이 이어질 경우,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도 돈을 번 것 같지가 않게 느껴져 경제성장 동력이 되는 근로의욕, 기업가정신이 위축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플레이션은 단기로는 화폐환상을 초래해 사람들을 들뜨게 하지만 중장기로는 일할 동기를 빼앗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래지향적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면 화폐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1.6~1.7%로 예상되는데 물가안정목표를 2.0%보다 높게 해 물가상승을 방치할 경우 그 후유증이 장기화될 우려가 커진다. 생각건대, 물가안정목표를 높이자는 주장은 중장기 폐해를 생각지 못한 근시안으로 판단된다.

수년 전에는 부동산경기를 잡기 위하여 금리인상 당위론이 정치권에서 비롯돼 폴리페서들이 너도나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금통위 의장은 기준금리를 올리려는 제스처를 취하다가 명분이 없자 “물가가 오르지 않아 금리를 올리지 못한다”고 독백(?)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주식, 부동산가격 상승은 금리가 낮아서가 아니라 재정적자 등으로 넘치는 유동성이 생산부문이 아닌 자산시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물가안정을 통해 국민경제 성장과 발전에 기여해야한다. 기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경제활동의 기회비용으로 작용하는 금리를 조정하려다가는 부작용만 커진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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