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새해가 한 달가량 지나고 있다. 주식시장이 달아오르고 있으나 실물시장의 모습은 그다지 좋지 않다.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거대 위협(mega threats)’이 전례 없고 비정상적이며 예상치 못한 수준의 불확실성을 규정하고 있다.

콜린스 사전이 뽑은 2022년 올해의 단어와 빼닮은 모습이다. 영구적 위기를 뜻하는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가 바로 그 단어다. 이는 permanent(영구적인)와 crisis(위기)의 합성어다. 이 단어를 통해 마치 우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인플레이션 같은 불안과 불안정이 지속되는 시대상을 더욱 이해할 것 같다.

인플레이션은 ‘세금도둑’, ‘잔인한 세금’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그래서였나? 올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우리 눈앞에 닥친 최대 위험요인으로 ‘생계비 위기’를 꼽았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점증하는 경기하강 우려가 생계비 위기를 부추겨 앞으로 2년간 세계 경제 전반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소득1분위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113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처분가능소득은 90만2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9% 감소)했다. 반면 소득5분위 가구의 월평균소득은 1041만3000원으로 3.7% 증가(처분가능소득은 807만1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했다. 평균 소비성향을 감안할 때 저소득층의 아픔이 배가 된 느낌이다.

2022년 3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 자료=통계청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난방비

지난해 영국에서 서민들이 추위를 피할 곳으로 ‘난방 은행(warm bank)’이 수천곳이나 생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가스요금이 폭등하자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지역사회가 난방비를 낼 수 없는 시민들을 위해 교회·도서관 같은 공간을 내주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이런 ‘웜 웰컴(Warm welcome)’ 프로젝트로 서민에 대한 포용적 지원을 하고 있다.

웜 웰컴 홈페이지에 따르면 영국에는 2022년 12월 현재 3723개의 난방 은행이 등록돼 있다. 이 캠페인으로 각 지역의 교회, 도서관, 커뮤니티센터에서 시민들은 몸을 녹일 수 있다. 주거지에서 난방을 이용하는 게 어려운 시민은 난방 은행을 찾아 차와 다과를 이용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영국 사태는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지구촌의 모습과 같다.

우리나라도 난방비가 급등했다. 도시가스 요금에 연동되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의하면 지난해 LNG 가격은 MMBtu(열량 단위)당 34.24달러로 전년(15.04달러) 대비 128% 올랐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수입 물량은 고작 1% 늘었는데 지불한 돈은 거의 2배 수준이다.

정부는 물가상승을 우려해 올 1분기 가스요금을 동결했다. 하지만 지난해 주택용과 산업용 요금 기준으로 메가줄(MJ·가스사용 열량 단위)당 5.47원을 올린 여파가 컸다.  문제는 올 1분기 동결된 가스요금의 추가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LNG 수입액이 크게 늘면서 가스공사는 이미 대형 손실을 입었다. 2분기 이후 인상 여부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치솟는 식료품비와 외식비

총가계지출액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지수를 보자. 흔히 소득이 적은 가정일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고, 소득이 높은 가정일수록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다고 한다. 이를 ‘엥겔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엥겔의 법칙이 최근에 와서 들어맞지 않고 있다.

2021년 국내 엥겔지수가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가계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필수 소비 비중을 높였기 때문이다. 부유층은 인플레를 견딜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반면 저소득층은 소득의 대부분을 물가가 비싸진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 지출에 써야 하니 삶이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내내 정부가 시장 영향력이 큰 식품 제조사들의 연쇄적인 가격 인상 자제를 거듭 요청했지만 막지 못했다. 물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는 공개적으로 8차례에 걸쳐 물가 안정을 위한 기업의 협조를 요청했으나 해당기업은 국제곡물가의 인상률을 감내하며 인상폭을 최소화했다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우리나라 통계청의 2022년 3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전년 동기에 비해서 외식은 21% 늘어난 반면 집에서의 식비는 5.4% 줄어들었다. 위드 코로나 현상이 집과 외식비 간의 상대적 비용 차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3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2022.11). 자료=통계청
2022년 3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2022.11). 자료=통계청
2022년 3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 자료=통계청
2022년 3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 자료=통계청

모건 스탠리는 2021~2022년 2년간 식료품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65% 오르겠으나 올해는 인상 속도가 완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농무부는 높은 가뭄, 전쟁, 인플레이션에 따라 지난해 식품 가격 상승률이 2020년과 2021년을 상회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에는 모든 식료품 가격이 9.5~10.5%, 가정식 식료품 가격(food-at-home)이 11.0~12.0%, 외식이나 학교급식처럼 집 외에서 먹는 비가정식 식료품(food-away-from-home) 가격이 7.0~8.0%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식품 가격은 지난해보다 완만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전히 역사적인 평균보다 높게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는 식료품 전체는 3.5~4.5%, 가정식은 3.0~4.0%, 비가정식은 4.0~5.0%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2022년 하반기 들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 지수가 떨어지고 있으니 다행이다. FAO 식량가격지수는 1990년 이후 24개 품목에 대한 국제가격동향(95개)을 모니터링하고 5개 품목군(곡물, 유지류, 육류, 유제품, 설탕)별로 매월 작성해 발표한다.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본다. 정부는 주요 품목의 수급 동향을 지속 점검하면서 업체와 소비자의 부담 완화를 위한 조치를 추진 중이다.

자료=FAO
자료=FAO

◆슈바베 지수와 주택문제

슈바베 지수는 1868년 독일 통계학자 슈바베가 베를린의 가계조사를 진행하며 발견한 법칙을 지수화 한 것이다. 고소득층일수록 가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반대로 저소득층일수록 가계 대비 주거비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을 담고 있다.

주거비용은 집세와 냉난방비, 상하수도비, 관리비 등 주택에서 사용되는 직·간접적인 모든 소비항목을 포괄하는 금액이다. 슈바베 지수가 25%가 넘으면 빈곤층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으로 분류한 뒤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2021년은 엥겔지수와 슈바베지수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 해다.

엥겔지수와 함께 빈곤의 척도를 나타내는 슈바베지수는 2021년 17.94%로 2020년(18.56%)에 이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주택매매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전월세 비용 상승이 원인이었다. 최근 주택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전세의 월세 전환과 전세대출 상승으로 서민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생계비 위기는 고금리 때문에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당 기간 고물가가 이어지는 데다 경기하강이 본격화하면서 명목임금 상승도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재정을 통해 충분한 완충 역할을 해줘야 한다. 신 성장 동력 발굴과 함께 인플레에 취약한 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방안을 짜내는 게 포용적 성장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식주가 불안하다면 사회 이동성을 차치하더라도 사회 안정성이 위협받는다. 이에 대한 정부의 각별한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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