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저녁 서울시내 중국대사관 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중관계 입장문을 읽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제공)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저녁 서울시내 중국대사관 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중관계 입장문을 읽고 있다 (사진,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제공)

서울 한복판 중국 대사관에서 지난 8일 저녁 매우 비상식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국장급에 불과한 주한 중국대사가 압도적 다수로 국회를 쥐락펴락하는 대한민국 거대 야당 대표를 옆에 앉혀놓고 비외교적이고, 안하무인적이며, 대한민국 정부를 깔아뭉개는 언사를 A4용지에 빼곡히 써서 15분간 우리말로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중한 관계가 어려움에 처한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확대는 탈중국화가 주요 원인이다", "일각에선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 베팅하는데 이는 시진핑 주석님의 지도하에 중국몽이란 위대한 꿈을이루려는 의지를 모르는 탁상공론이다",  "단언컨대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

하나같이 '가치외교'를 내세우며 미국, 일본과 밀착한 윤석열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단순한 불만이나 비판을 넘어 '저주'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절대권력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아부하려는 게 아니냐고 해석하지만 이는 싱하이밍의 개인 견해가 아니다. 이날 자리는 비공개 친교가 아닌 언론에 공개된 공식 행사였다. 시진핑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방문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외신인터뷰에서 대만문제와 관련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중국 외교부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 핵심인 대만문제를 놓고 불장난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협박했는데 싱하이밍의 발언은 이와 맥을 같이한다. 중국의 늑대 외교가 어떤 것인지를 싱하이밍이 화끈하게 보여줬다.

싱하이밍의 언동은 민주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됐다. 결과적으로 이재명 대표는 싱하이밍의  '윤석열 정부 때리기 원맨쇼'에 들러리가 됐다. 애초 이 대표는 싱하이밍을 만나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를 위한 공조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돼있었는데 뒤통수를 맞은 꼴이다. 싱하이밍의 오만방자에 대한 여론의 공분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가 중국 대사가 부른다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게 '격'에 맞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싱하이밍의 입이 '폭탄'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21년  7월 당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언론인터뷰에서 "중국이 사드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자국 국경 인근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더를 먼저 철수해야 한다"고 한 말에 대해 중국의 안보이익을 훼손해선 안된다고 비판한 뒤 뜬금없이 "천하의 대세는 따라야 창성한다는 말이 있다. 중국은 향후 10년간 22조 달러 규모의 상품을 수입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중국 말을 듣지않으면 상품 수입에서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명백한 협박이었다. 이미 중국은 2016년 사드 사태 당시 경제보복으로 한국에 15조원의 피해를 입힌 전력이 있다. 

싱하이밍이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를 안다면 이재명 대표는 중국 대사관 방문이 싱하이밍에게 이용당할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었다. 싱하이밍이 '판결문'을 낭독하듯  작심 발언을 쏟아내는 동안 이를 제지할수는 없었다해도 사후에라도 그의 망발에 대해 지적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도 민주당도 정부의 '편중외교' 비판에만 열을 올렸을뿐 싱하이밍 발언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중국은 한반도의 안보에 중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우리 수출의 20%를 의존하는 경제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 이웃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미국과 일본에 경사된 현 정부의 균형을 잃은 외교를 문제삼는 것은 일리가 있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도 물밑에서는 국익 차원에서 베이징과의 대화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마당에 한국만 중뿔나게 '탈중국'을 외치며 미중 갈등의 창 끝에 몸을 던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을 문제삼으려면 설득력 있고 균형잡힌 외교전략이 있어야한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는 몸을 낮추면서 미국과의 동맹외교나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소홀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국민감정에 편승한 반일외교는 한일 관계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과학적 사실을 도외시한 채 감성적,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이재명 대표의 최근의 행태를 보면 민주당의 외교노선에 믿음이 가지않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중국 대사관 방문이 경색된 한중 관계를 풀어보자는 것이었다고 하지만 싱하이밍의 이간책에 놀아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중관계를 더 꼬이게 만들고 말았다. 싱하이밍의 행태가 구한말 한양에 상주하면서 조선을 속국으로 다뤘던 청나라의 위안스카이를 연상케 한다는 여당 의원의 말이 전혀 엉뚱하게 들리지 않는다. 

'외교관'의 상식을 벗어난 싱하이밍의 언동에서는 한국을 쉽게 요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국론을 둘로 쪼개려는 불순한 의도가 감지된다. 사자가 들소나 톰슨가젤 등 먹잇감 무리를 사냥할때 왜 먼저 갈라치기를 하겠는가. 친(親) 러시아파와 친 유럽파가 갈려 극심한 국론분열을 빚었던 우크라이나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직시해야한다. 세계 7위 국력의 대한민국 정치권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외세에 갈대처럼 흔들려선 곤란하다. 특히 중국에 이용당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김종현 본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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