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조원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새해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엔비디아 주가는 질주했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시장을 80%가량 점유하고 있다. 그만큼 AI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엔비디아의 H100과 A100 칩은 범용 AI 프로세서 역할을 한다. 엔비디아가 맞춤형 AI 칩 시장 공략에 나서며 성장성이 돋보이자 주가가 질주했다.

주가상승 면에서 형보다 나은 아우들도 있다. 그린 컴퓨팅(Green Computing)에 초점을 맞춰 전력 소비를 줄이는 토털 IT 솔루션의 글로벌 리더 슈퍼마이크로컴퓨터 주가를 보면 뜀박질하려고 환장한 느낌이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음 주자로 ARM(암)이 2월 들어 주가가 두 배 올랐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반도체로 엮을 수 있다.

◆AI 삼총사가 미국 시가 총액을 올리고 있다

문득 2020년 엔비디아가 반도체 업체를 대표하는 인텔의 시가총액을 추월한 시기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엔비디아는 400억달러에 ARM을 인수하고자 했다. AI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알고 있는 사건으로 엔비디아는 명실공히 AI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엔비디아 AI 제국을 만들려 했다.

요즘 챗GPT가 화제이나 엔비디아는 대화형 AI 서비스의 주인공이고자 했다. 챗봇, 지능형 개인 비서, 검색엔진 서비스가 사람의 말을 100% 알아듣지 못하고 지원하는 언어 모델도 많지 않았던 시기로 가보자. 2019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엔비디아가 찾아냈다. 당시 엔비디아의 슬로건은 왜 이 회사가 이토록 위대하게 됐는지 알게 한다. 

“지난 20년이 놀라웠나요. 앞으로의 20년은 SF나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엔비디아는 그렇게 실시간 대화형 AI로 기업이 고객과 더 자연스럽게 소통할 언어 이해 모델을 출시했다. 요즈음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발돋움한 챗GPT 투자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는 초기부터 엔비디아 언어모델을 채택해 성능향상을 확인한 바 있다.

비록 무산됐지만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고자 했던 이유는 데이터센터 서버용 칩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엔비디아는 이 특성을 활용해 절대강자인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GPU를 범용화하고자 전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쿠다(CUDA)를 개발했다. 엔지니어가 엔비디아 GPU를 활용해 AI 모델을 더 수월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 서버용 칩 시장까지 장악했다고 생각해 보자. AI 시장 생태계 전반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어 독점 우려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당시 엔비디아는 GPU 절대강자였으나 중앙처리장치(CPU)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엔비디아 GPU는 연산을 담당하는 ‘코어’라는 부품을 대량으로 탑재해서 계산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엔비디아가 잘하는 GPU만으로는 AI 계산이 완결되지 않아 CPU와의 조합이 중요했다. ARM을 인수하려고 한 것은 인텔, AMD에서 개발한 프로세서인 x86에 맞설 수 있는 프로세서 아키텍처를 손에 넣고 CPU 기술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ARM 아키텍처는 x86 아키텍처에 비해 프로세서의 소비전력과 발열을 낮출 수 있다.

ARM은 반도체 설계회로를 파는 회사로, 2019년 출하된 전체 반도체의 34%인 228억개가 ARM 설계 기반이다. ARM은 반도체 아키텍처를 설계한 후에 라이선스를 판매해 수익을 내는 기업이다. ARM은 생산라인을 갖지 않고 반도체 설계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언뜻 보면 팹리스 같아 보이나 팹리스는 자사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한다. 이에 반해 ARM은 자사 이름의 칩을 판매하지 않는다. ARM 같은 기업을 칩리스(Chipless)라고 부른다. ARM 아키텍처 기반이라는 말이 그래서 등장한다.

이러한 반도체는 ARM에 라이선스 비용을 주고 아키텍처를 개별사와 만든 반도체라고 보면 된다. ARM 아키텍처는 당시 주로 모바일 칩에 적용했다. 퀄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 등도 자사 모바일 칩에 ARM 아키텍처를 적용한 사례였다. 이후 ARM 아키텍처 성능이 기존에 비해 대폭 향상돼 모바일뿐만 아니라 PC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부분의 모바일 칩은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다. ARM 아키텍처 기반으로 PC 칩을 만들면 PC와 모바일 호환성이 좋아진다.

ARM은 영국에 본사를 뒀지만, 2016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인수했다. 이후 약 4년 만에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하기로 했으나 무산됐다. 규제당국은 독점 금지법을 이유로 엔비디아의 ARM 인수합병(M&A)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얽힌 주요 경쟁 기업 의사가 반영됐다는 게 당시 분석이었다.

2020년 무산된 엔비디아의 ARM 인수 발표 과정.
2020년 무산된 엔비디아의 ARM 인수 발표 과정.

2023년 9월 ARM은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으나 첫 분기 실적을 발표한 뒤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ARM 인수에 실패하면서 서버용 칩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했고 관련 연구 인력도 따로 채용해야 했다. 데이터 센터뿐만 아니라 서버용 칩도 장악해 지속해서 AI 시장 강자로 남고자 엔비디아는 큰 그림을 그렸고 그렇게 성공가도를 달렸다.

◆AI 삼총사가 미국 시가 총액을 올리고 있다

2016년 소프트뱅크는 ARM을 인수하며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ARM의 경쟁력과 무관하게 소프트뱅크는 2020년 7월 최악의 적자를 봤다. 자금 유동성을 확보를 위해 ARM 매각을 결정했고 2020년 9월 공식적으로 ARM을 엔비디아에 매각할 계획을 밝혔다. 그런 ARM이 최근 AI 락스타로 불린다.

ARM의 4분기 실적 보고서는 놀라웠다. 온디바이스 AI 시대의 도래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며 이 회사의 라이선스와 로열티 수익이 증가했다. 올해 1분기 실적 전망치도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는 회사가 지금까지 엔비디아와 슈퍼마이크로 컴퓨터과 같은 주식을 엄청난 수익률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었고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형만큼 주가 면에서 그만 못했다는 한풀이를 한 것일까.

지난 12일 ARM은 전 거래일 대비 29.30% 오른 148.97에 거래를 마쳤다. 8일 47.89% 급등한 데 이어 이날도 30% 가까운 상승률을 보였다. 3거래일 만에 주가가 두 배 이상 치솟았으니 록스타라 할만하다. 삼성전자나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기업은 칩을 판매할 때마다 ARM에 일정 수준의 로열티를 준다. 스마트폰과 AI 서버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요가 늘며 ARM의 로열티 매출이 늘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글로벌 AI 열풍으로 기업들이 AI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ARM CPU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가 급등으로 PSR(Price to Sales Ratio, 주가매출비율)이 50에 가까워졌다. 수익성이 높기 때문에 높은 PSR도 허용가능한 것일까. 주식 투자자들은 월스트리트의 추정치가 회사의 미래 성장을 상당히 과소평가한다고 보며 베팅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엔비디아, 슈퍼마이크로 컴퓨터, ARM의 조합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AI 부품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ARM은 사업의 상당 부분이 성장이 더딘 시장인 스마트폰에 집중됐다. 엔비디아와 슈퍼마이크로가 가진 세 자릿수의 매출 성장을 경험할 가능성은 낮다. 순수한 AI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AI관련 부서가 있다. AI 관련 실적 호조 기대가 가격 상승을 주도한다. 여하간 AI 수요는 ARM의 수익성을 크게 높일 것 같다.

ARM의 주가 급등 속 대주주인 소프트뱅크의 주가도 급등세다. 소프트뱅크는 ARM의 지분을 90% 이상 보유했다. 다음 달 중순까지는 주식을 매각할 수 없는 보호예수 조항에 따라 이익을 현금화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동사의 주가 폭등이 공매도 투자자들의 '쇼트 스퀴즈 '물량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음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그래서였나. 지난 13일 ARM 홀딩스의 주가는 20% 가까이 다시 폭락했다. 주식 유통 물량이 지나치게 적긴 하다. 여하튼 AI가 전기 먹는 하마라면 전력을 줄여주는 ARM의 역할은 너무 중요하다고 하겠다.

저작권자 © 서울와이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