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정국 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1952년 철강산업 국유화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대법원의 판결로 무효화한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사진 우측)의 전례가 주목받고 있다.

[서울와이어 이동화 기자] ‘국경의 위기’를 주장하며 57억 달러의 멕시코 국경장벽 예산을 요구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국 국민의 약 70%는 비상상태 선포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국경장벽 자금 조달 필요성을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정당성을 주장해 거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동한 국가비상사태법(NEA)은 대통령이 국가의 위기라는 특정 상황에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 것으로 관계 법률에 의거해 계엄령 포고, 민간인 자유 제한, 군사 확충, 재산 몰수, 무역·통신·금융거래 제한 등 다수의 비상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의회의 동의나 승인 없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배정된 연방정부 예산을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여야가 합의한 13억7500만 달러의 국경장벽 예산에 국방부·재무부 등에 할당된 예산 66억 달러를 끌어와 총 80억 달러를 장벽건설에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AFP통신은 몇 달 전부터 국경의 위기 사태를 언급하며 국가비상사태 선포 의사를 내비쳐 온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또 다른 문제점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은 이번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고 배치할 인원을 늘리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사유지인 국경장벽 건설부지 소유자들과 오랜 법정 다툼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연방의회나 법원에서 비상권한이 저지될 가능성도 있다. 1952년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철강 노동자들의 전국적으로 파업에 돌입하자 철강산업 국유화를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철강회사들이 연방대법원에 제소, 대법원이 파업회피 목적의 비상권한이라는 원고측 주장을 지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뜻을 거뒀다.

미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최근 미 전 대통령들은 전원 NEA를 발동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1년 9·11 사태 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신종플루 확산 우려로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빠른 대처를 위해 당국과 병원의 권한을 확대했다.

대이란 제재를 위한 국가비상사태는 1979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벨라루스 민주주의에 역행할 가능성이 있다며 2006년 발동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등 지도부 인사들에 대한 제재도 현재 진행 중이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관련 미국 국민의 3분의 2는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CNN은 17일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지지하는 미국민은 30%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CNN은 여론조사기관 SSRS과 2월 초 1011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 과반이 장벽건설과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민주당 지지자의 96%는 물론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31%가 반대 의견을 보였다는 것은 비상사태 선포가 광범위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백악관과 공화당의 입장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송전을 각오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상하원의 동의로 의회 차원에서 비상사태를 종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와 관련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고문은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의회에서 거부당해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지켜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2020년 대선 전까지 200마일(322㎞) 정도의 국경장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이 된 국경장벽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민주당은 위헌 소송 등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청문회 개최 예정을 밝힌 하원 법사위원회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관련된 문서를 22일까지 제출한 상태다. 

미 주요 언론은 “하원이 국경장벽 건설 문제가 정말 국가비상사태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놓고 이의제기를 할 것”이라며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종료할 공동 결의안 발의 등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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