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잇단 사퇴, SK 등 ‘이사회 중심 경영’…그러나 총수 영향력 계속될 듯

(왼쪽부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서울와이어 송정훈 기자] 최근 국내 유력 그룹의 총수들이 잇따라 물러나면서 제왕적 재벌문화가 변화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영상 책임, 갑질 논란, 성추행 의혹 등으로 불명예 퇴진한 총수들도 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후진에 길을 열어주기 위한 자발적 퇴진도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 재벌개혁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성향을 반영한 자회사 독립경영, 이사회 중심 의사결정 구조 확립 등을 위해 이사회 의장에서 총수가 물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룹 경영과 의사결정에 여전히 총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어서 쉽사리 제왕적 총수 권력이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60대 대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 중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이사회 의장에서 사퇴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이날 재계 서열 45위인 동원그룹의 김재철 회장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전격적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국내 재계에서 거의 사라진 그룹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김 회장은 ‘후배들이 일할 수 있도록 물러서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 아래 퇴진 의사를 밝혔으며 향후 재계 원로로서의 역할만 할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재계 31위 코오롱그룹의 이웅열 회장이 경영상의 큰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를 선언해 재계를 놀라게 했다.

최근 잇따라 일어난 총수 퇴진은 경영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사례가 많았다.
 
재계 25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감사보고서 문제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달 전격적으로 용퇴 결단을 발표했다.

재계 서열 14위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되면서 대표이사로서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최근 몇 년간 ‘갑질 논란’ 등 갖가지 악재에 시달려온 조 회장은 지난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병원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앞서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지난 2017년 9월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조석래 전 효성 회장도 같은 해 7월 그룹 지주사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하면서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조 전 회장은 지난 2014년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으며 변호인단 수임료 수억원을 회삿돈으로 처리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경영 일선 퇴진은 아니지만 총수들이 이사회 독립성 강화 등을 취지로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는 사례도 최근 이어졌다.

 

서열 3위인 SK그룹은 최근 지주사인 SK㈜의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도록 한 정관을 변경해 최태원 회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재계 26위인 효성의 조현준 회장도 지난해 지주사의 이사회 의장에서 사퇴했다.

 

또 서열 1위인 삼성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면서 그룹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사실상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LG그룹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계열사 최고경영진의 역할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관심은 이런 총수 퇴진이 제왕적 재벌 문화의 해소로 이어지느냐다. 이에 대해 재계 안팎에서는 ‘한국형 재벌 문화’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개별 그룹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데다 총수가 퇴진한 그룹의 경우도 상당수는 일정 기간 과도기를 거쳐 자신의 2세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에서다.

 

삼성 이재용, 현대차 정몽구, SK 최태원, LG 구광모, 롯데 신동빈 등 총수의 결단이 그룹의 중요 의사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여전하다.

 

재계 관계자는 “총수 혼자 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고 봐야한다”면서도 “그러나 기업 경영에서 총수의 영향력을 여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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