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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와이어 소인정 주부기자] 지난 7월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괴롭힘’ 혹은 ‘갑(甲)질’. 직장 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근원은 대부분 “업무”보다 “인간관계”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관리가 어렵다. 물론 직장 내 ‘갑(甲)질’ 행위 중 단순한 무례함 정도는 그저 ‘거친 인간관계’ 혹은 ‘월급에 포함된 정신노동’ 정도로 도(道) 닦는 셈치고 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엔 배제와 왕따를 일삼는 무뢰배 같은, 영혼을 파괴하고 생업을 위협하는 ‘범죄자 상사’들도 존재한다. 이건 사내 권력관계에서 이루어지면서 도처에서 훅훅 들어오다 보니 평소 관리도 힘들고, 퇴로를 찾을 길이 없는 경우도 많다. 직장들은 이런 참을 수 없는 것들을 참으라고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론 이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거는 기대가 솔직히 컸다.

직장 내 우월적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업무 범위를 넘어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취지 하에 만들어진 이 법이, 아직까지 직접적 처벌 규정도 명확하지 않고 범위도 모호해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발표에 앞서 매뉴얼을 배포하고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미리 준비를 해 왔던 대기업들도 솔직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알 수 없어 긴장감은 한껏 고조되고, 특히 관리 시스템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선 불안감만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처음 시행 발표 때 중소기업의 현장에서는, 한정된 인력으로 기업을 운영하려면 소속 부서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시켜야 할 때도 있는데 이런 업무 지시조차 괴롭힘으로 몰릴까 봐 걱정 했었고, 또 행복해야 할 일터가 서로 갈등을 일으켜 분위기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어쨌거나 누구든 ‘(법을 어겨서 처벌받는) 첫 번째 타자’만은 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과연 어떤 행위가 `괴롭힘`인지 판단을 둘러싸고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 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막겠다는 취지로 지난해 말 개정된 근로기준법 조항에 따라 근로자 10명 이상인 기업은 괴롭힘 금지와 관련된 내용을 `취업규칙`에 반영해야 한다. 또 괴롭힘 피해 신고가 접수되면 반드시 조사하고 취업규칙에 따른 징계 또는 근무지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떤 행위가 괴롭힘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보니 직원들이 서로 소통을 꺼리는 부작용도 발생되고 있고,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부하 직원을 혼내며 가르친 상사를 `법 위반`으로 몰아 괴롭힐 것이라는 걱정도 제기된다.

지난 7월 17일부터 시행된 `채용절차 공정화 법률`과 더불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과잉입법으로 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이 문제는 법률보다는 직장 내 문화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적용범위가 넓고 모호한 규제가 새로 만들어지면 현장에서는 솔직히 혼란을 피하기 힘들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으로 인한 혼란을 조속히 해소하려면 정부는 수시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사례집을 발간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천국 같은 직장생활은 없다. 

문제는 적잖은 직장 내 괴롭힘이 단순 스트레스를 넘어 깊은 인격적 상처와 자존감의 훼손을 가져오고 있어 문제인 것이다. 해당 금지법의 기준이 모호하고 강제처벌 규정이 없는 등 한계가 있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이미 시행되었고. 기본도 모르고 법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기업, 그리고 구성원들의 직장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절실하고 본다.

 
현실적으로 기존 관행에서는 별로 문제 삼지 않았던 부분들이 법 개정 이후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많아질 것인데 처벌은 실무적 상황, 행위 정도 등 여러 가지 정황을 파악 한 후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합리적인 해결이라 할 것이다. 상사나 선배 입장에서 업무 향상을 위해 해야 하는 충고나 업무 지시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오해할까 봐 이런 과정까지 생략하려 든다면 이것은 회사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통념상 이해가 되는 선”에서 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참…. 한국말이 어렵다.

관행처럼 내려왔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로웠던 여러 가지 행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합당한 업무 지시와 괴롭힘의 경계선을 선명하게 하는 디테일한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괴롭힘이라는 것은 당하는 입장에서의 주관성이 포함될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 경계선을 구분 짓는 데는 많은 의견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직장에서는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오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기도 하다. 동료 모두 감시자가 되는 조직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는지. 폭력·욕설 같은 물리적 괴롭힘은 없어지고 긴장과 불안 같은 정신적 문제가 더 커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되는 대목이 많다. 이제는 기업도 정부도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관리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번 계기를 통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직장인 서로가 서로를 인격체로 인식하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판단한다. 자신과 다른 상대를 틀리다고 생각하는데 이처럼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는 순간 갈등은 고조되는 것이다. 

배려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총에 맞은 상처는 치료될 수 있어도 언어로 받은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는 페르시아 속담이 있다. 우선 내가 직장 내에서 또는 가정에서라도 상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는 ‘말의 결’을 아름답게 만들어보는 노력을 해보았으면 한다. 

비록 내가 언어의 연금술사는 아닐지라도, 나의 작은 변화가 상대를 바꾸고 우리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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