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청년, 무한한 꿈 꾸고 도전한다

[편집자주] 내 나이 마흔여섯, 100세 시대로 따지면 딱 절반을 살았다. 유엔(UN)은 18세에서 65세까지를 청년이라고 재정립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학교 조사 결과에서도 40대에서 60대 지능이 인생에서 최고조에 달한다고 나왔다.

목표의식을 갖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다. 앞으로를 잘 살기 위해선 바둑에서 복기(復棋) 하듯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 사람의 등이 ‘그 사람의 과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몸 중 가장 정직한 곳이 등이기 때문이다. 배는 힘을 줘서 뱃살을 감출 수도 있으련만 등은 그럴 수 없다. 거울을 봐도 앞태만 신경 쓸 뿐 뒷전이었던 ‘나의 등’, 그래서 한 번도 내 눈으로 보지 못했던 등을 찍어보고 싶었다. 

 

국회 도서관 앞 연못. 점심 먹기전엔 촬영이 끝날 거라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무려 3500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다양한 포즈를 취할 수 없어 난감했다. 사진 찍히는 것도 연습을 많이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진=한동수 작가)

[서울와이어 민경미 기자] 직장생활하면서 처세술에 능하지 못해 등에 칼도 많이 맞았다. 서러움이 켜켜이 쌓인 상처 많은 내 과거를, 한번쯤은 어루만지고 싶어 용기를 냈다. 바로 ‘등 화보’ 도전이다.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등 화보냐고 어리둥절해하는 지인들도 있었다. 반면 재밌는 도전이라고 용기를 준 친구들도 있었다. 일종의 대리만족 같다.
 

사진으로 행복 기부하는 한동수 작가 "남이 행복해하면 제가 더 행복해요" 

 

사진 봉사로 행복을 전달하는 25년차 사진작가 한동수씨 (사진=한동수 작가)

친구 소개로 사진작가를 만났다. 25년 전 카메라를 접하고 사진에 푹 빠져서 살고 있는 한동수 작가다.

“어릴 때 사진이 별로 없었어요. 어른이 되고 보니 그게 한이 돼서 사진을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남에게 찍어달라는 것에 한계를 느꼈어요, 그때부터 다른 이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한 작가는 다른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하기 때문이란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기 전에는 ‘봉사’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이해가 돼요. 남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제가 더 행복하죠”

 

그는 전문 사진작가가 아니다. 취미로 사람을 찍는다. 재능기부이자 봉사다.

“자연스런 인물사진을 찍으면 오랜 시간을 두고 봐도 식상하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촌스런 사진도 많은데 인위적이라서 그래요. 연출이나 보정 보다는 일상이 묻어나는 사진을 찍는데 시간을 투자합니다”

 

화보를 찍겠다고 결심했지만 막상 작가를 만나니 겁이 났다. 아침마다 운동은 하고 있었지만 ‘살을 더 빼고 찍어야할까’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사진보정 잘하는 작가를 소개시켜주겠다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의 의도가 내 과거를, 내 현재를 돌아보는 것이기에 거절했다. 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모습이면 됐다.

 

작가는 정직한 등의 모습에서 40대의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사진=한동수 작가)

 

작가는 가을 단풍이 남아있을 때 찍자고 했다. 더 추워지면 야외촬영이 힘들 거라고.
11월의 첫 주말, 아침 일찍 국회의사당 사랑재로 향했다. 가을이라 그런지 야외결혼식이 예약돼 있었다. 신랑신부에겐 미안하지만 그들을 위해 마련한 꽃장식에서 첫 사진을 찍었다. 신랑신부가 사진 속에서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하게 잘 살라고 마음 속으로 인사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진을 찍었다. 가져간 의상도 여러 벌인데 한 벌 빼고 다 입었다. 연예인들이 사진 한 장 건지기 위해 1000장을 찍는다고 하던데 나는 이날 3500장의 사진을 찍었다.

오후로 접어들자 한 작가는 손가락이 아프단다. 돈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닌데 미안해졌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국회를 나와 한강으로 장소를 옮겼다. 요트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함께 간 친구가 지인에게 요트를 빌렸다. 나를 위한 ‘깜짝 선물’이라면서 잘 찍으라고 한다.
 

11월 속에서 8월을 느꼈다. 살사 리듬을 타면서 보는 한강의 정취는 황홀했다. 추위도 잊을만큼 (사진=한동수 작가)

요트에서 살사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췄다. 늦가을 한강에서 바람을 맞으며 낭만에 잠겼다. 얼마 만에 느끼는 여유인지 모른다. 늘 앞만 보고 달려왔다. 때론 ‘쉼’이라는 것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한강 스카이라인과 한강 다리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 작가는 이런 사진은 배에서밖에 안 나온다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멀리 유람선이 보인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했던가. 한강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면서 아쉬움이 남는다. 외국에 나가보면 한강보다 훨씬 작은 강들도 관광인프라를 잘 갖췄던데 한강은 아파트 일색이다. 네모반듯한 회색건물이 개성이 없다. 어릴 적부터 교육받았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개성 있는 건물들과 광관지가 개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한강의 스카이라인을 홍콩 느낌이 나도록 살렸다. 자유로움과 쇼핑으로 대변되던 홍콩이 진짜 자유로워지길 기도해본다. (사진=한동수 작가)

기자는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직업이다. 그러기에 주체가 아니라 늘 객체다.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산다. 다른 이의 말을 듣고 기사를 쓰고 그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화보 촬영하는 동안은 내가 주인공이 됐다. 누군가를 취재하다 내가 취재 대상이 된 셈이다.

한 작가가 나의 모습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내가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했다. 그가 내게 어떤 스토리를 입힐지도 기대됐다. 나도 타인의 이야기를 쓸 때 그 설레임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 화보를 찍으면서 인생은 늘 새로운 도전의 연속임을 깨달았다. 두렵다고 해서 도전하지 않을 수도 없고 상처를 입는다고 해서 멈출 수도 없다. 오늘 아침에 지인에게서 카톡을 받았다. ‘상처 없는 새는 태어나자마자 바로 죽은 새’라고...

 

겉으로 드러난 의상에 담긴 엄숙함과 마음 속의 자유로운 아이를 담았다. 인생의 반을 살았어도 여전히 우리 마음속엔 어린아이같은 천진난만함이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사진=한동수 작가)

사진은 만족스럽게 잘 나왔다. 내 안의 두려움을 살살 달래주면서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가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나의 또 다른 도전은 100권 읽기 프로젝트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도전하길 잘했다. 요즘 유행한다는 도장깨기처럼 나를 가뒀던 틀을 하나씩 깨는 것이 재미있다. ‘청년’이기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고 실천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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