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업계는 인터넷 세계가 크게 세 가지 층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그 중 일반 검색 엔진으로는 검색 자체가 불가능한 '다크웹'이 사이버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곳이다./사진=김용지 기자
보안업계는 인터넷 세계가 크게 세 가지 층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그 중 일반 검색 엔진으로는 검색 자체가 불가능한 '다크웹'이 사이버 범죄가 일어나기 쉬운 곳이다./사진=김용지 기자

 

[서울와이어 전지수 기자]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관련자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텔레그램과 ‘다크웹(dark web)’등이 재조명되고 있다.

 

보안업계는 인터넷 세계가 크게 세 가지 층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층은 흔히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WWW)으로 알려진 표면웹(surface web)이다. 그 아래 두 번째 층은 텔레그램 대화나 비공개 카페, 금융·의료 정보 등 일반 검색으로는 표출되지 않는 정보들이 유통·축적되는 ‘딥웹(deep web)’이다. 바로 그 밑에 전용 브라우저를 통한 암호화 접속을 거쳐 익명화하는 ‘다크웹’이 있다.

 

딥웹이나 다크웹은 1999년 생겨나 회원 수만 해도 백만 명이 넘었던 국내 최대 음란 포털 ‘소라넷’처럼 폐쇄 집단 커뮤니티 게시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익명 거래가 가능한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등장하면서 불법 거래가 이뤄지고 그 규모도 커졌다. 다크웹과 비트코인이 결합한 첫 사례는 2009년부터 비트코인으로 마약과 총기를 거래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적발돼 2013년 폐쇄된 다크웹 사이트 ‘실크로드’다.

 

‘텔레그램’은 익명성을 강조하며 등장한 메신저 서비스다. 텔레그램은 이용자에게 휴대폰 번호 외 다른 정보를 요구하지 않는다. 발신자와 수신자만 메시지 내용을 공유해 '비밀 채팅'을 하는 방식이다. 사용자가 읽은 메시지는 일정 시간 이후 발신자와 수신자 기기에서 자동으로 삭제돼 서버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찍은 뒤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 25일 오전 8시께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사진=YTN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찍은 뒤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 25일 오전 8시께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사진=YTN

 

이 익명성과 정보의 휘발성을 악용해 벌어진 범죄가 바로 ‘n번방’ 사건이었다. 이는 n번방 잠입취재를 시도한 매체도 사건을 본 그대로 담을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잔혹하고 은밀하게 저질러진 범죄다.

 

텔레그램에 ‘n번방’을 처음 만든 일명 ‘갓갓’은 미성년자가 다수 포함된 피해자들을 협박·학대해 성착취 동영상을 촬영, 이용자들에게 가상화폐 등을 받고 팔았다. 이후 ‘갓갓’은 잠적했고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25)의 신상이 공개됐다. 해당 사건에서 유포된 동영상을 소지하거나 시청한 사람이 26만여 명인 것으로 드러나 경찰 측은 관련자를 모두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렇게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다크웹과 텔레그램을 통한 범죄가 일어났을 경우 범죄자를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까. 사용자 신원을 보호하는 서비스 특성 때문에 범죄가 일어나도 수사가 어렵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다크웹, 텔레그램 등 익명 서비스 사용자를 추적하는 것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아예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텔레그램은 사용자가 휴대폰 번호를 비공개로 설정했더라도 대화방 참여자가 이 사용자의 번호를 휴대폰 연락처에 등록해둔 상태라면 휴대폰 정보가 연동된다. 대화방에 들어가 전화번호 목록을 휴대폰에 등록하면 대화방 참여자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낼 수도 있다. 다만 추적을 피해 우회적으로 ‘대포폰(도용한 다른 사람의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 등을 사용했을 경우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는 ‘디지털 포렌식’을 활용할 수도 있다. 디지털 포렌식이란 PC나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매체 또는 인터넷상에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휴대폰, PC 등 대화방 운영자의 기기를 중심으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수행하면 기기에 삭제되지 않고 남아 있는 대화방 기록이나 입금 내역 등을 확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해당 기기가 운영자의 것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증거 확보와 용의자 검거가 우선돼야 한다.

 

다크웹도 음란물, 해킹 도구, 개인정보 거래 등 불법 행위가 이뤄지는 사이버 공간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텔레그램과 마찬가지로, 접근하는 모든 이용자들을 완벽히 추적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정보들과의 연계 분석하면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이론상으로 없지는 않다.

 

해외 수사당국에서 다크웹 상에 악성코드를 심어 범죄자를 찾아내는 것처럼 다크웹 설정상의 허점을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 다크웹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단 다크웹에 접근하기 위한 별도의 다크웹 검색 기술이 필요하다. 다크웹으로써 다크웹을 분석하는 셈이다.

 

다크웹은 일반적인 검색 엔진이 아닌 전용 브라우저 등을 사용해야 접근 가능하다. 접근 수단 중 '토르'가 대표적이다. 토르는 암호화 접속으로 여러 네트워크를 거쳐 사용자의 IP 주소가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따라서 다크웹을 통해 IP 주소를 완벽히 특정하기 위해서는 토르를 무력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3월 27일 오후 2시 14분 기준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의 동의자 수가 명으로 194만 6000명을 넘어섰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3월 27일 오후 2시 14분 기준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의 동의자 수가 명으로 194만 6000명을 넘어섰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현재 범죄에 가담한 자들은 ‘n번방 규탄’이 목적이라고 위장하는 등 텔레그램 내에 잔존해있어 다른 방으로 옮긴 후 범죄를 이어갈 우려가 있다. 또한 이들은 소위 ‘대피소’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홍보하는 등 수사망을 피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한 보도매체에 따르면 텔레그램에서 연예인을 소재로 한 4개의 '성인 딥페이크물' 전용방이 추가로 확인됐다. 특히 여성 아이돌 가수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전용 방에는 최대 2000명이 넘은 회원들이 딥페이크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공유하고 있었다. '딥페이크'는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특정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로 음란물에 유명인이나 일반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사례가 많아 디지털 성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있다.

 

이처럼 ‘n번방’ 사건으로 다크웹이나 텔레그램의 악용 가능성이 주목받는 한편 성착취 범죄는 더욱 음지화돼 지속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n번방’ 사건에 가담한 관전자 모두를 처벌하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현행법상 공백이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되면서 성범죄 관련법과 양형 기준 등을 보완·정비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성범죄 형태처럼 기존 법도 그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를 비롯해 수사당국과 관련 기관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범죄 가담·방조자까지 모두 추적 검거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치며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층 발전된 수사기술과 관련법으로 디지털 성착취 범죄가 뿌리뽑힐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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